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진해의 주유천하> 밥은 영혼보다 위대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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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2월19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20년12월17일 17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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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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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 동쪽에 해비치 리조트가 있다. 그 초입에 표선 해수욕장이 있다. 그날따라 바람이 무척 강했다. 제주하면 ‘바람의 섬’ 인줄은 알지만 그 실체를 몸으로 직접 확인하고 체험했다. 연인의 머플러는 두르기만 하면 바람이 서너 바퀴를 휘감아 모양을 잡아주었다. 하늘은 너무 맑아 초록 바다와 맞닿아 한 폭의 그림이다. 금빛 모래는 바람이 수 만개의 작은 동산을 만든다. 고비사막의 사구를 연상시킨다. 아름다운 백사장을 크고 작은 발자국들이 각자의 도장을 찍는다. 풍경이 너무 고혹적이라 바다에 깊이 빠져 잠들고 싶은 기분이다. 갯내음이 후각을 자극한다. 아찔함에 풀썩 주저앉을 판이다. 완벽한 풍경에 감각이 압도당한다. 이런 맛에 여행을 하는 모양이다.

 

풍광을 구경했으면 식도락이다. 출출해진 배를 채우려면 식당을 찾아야 한다. 요즘 식당 검색은 주로 네이버 선생님께 의존한다. 위치를 찾고 평점을 검색하고 음식의 종류를 살핀다. 가격도 묻는다. 그리고 방문자들의 후기를 읽어본다. 음식점의 외관과 인테리어도 관찰한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무엇보다 동네 주민들이 들락거리는 지가 판단 기준이다. 근처 K회집, P횟집 등 외관이 번듯한 식당들이 있었다. 하나 같이 평점이 4.5를 넘었다. 들락거리는 현지인이 보이질 않는다. 30분을 관찰을 하니 어느 횟집에 주민들이 2~3인 씩 들어간다. 그들을 따라 들어가니 해녀가 운영하는 바닷가 횟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10여 개의 테이블이 있는 홀 안은 손님이 반 이상 들어차 있다.

 

다금바리, 참돔, 능성어, 갓돔 등 고급 어종의 횟감이 보인다. 옆 테이블을 살피니 회에 초밥에 탕에 구이에 튀김이 놓인 식탁을 발견했다. ‘사장님 우리도 저것 주세요’. 깔린 음식들은 탕이나 지리를 시키면 따라 나오는 것들이었다. 붉은 색이 감도는 도미 회는 아주 싱싱하다. 찰기와 굳기가 적당하다. 회는 물러서도 안 되고 너무 딱딱해도 제 맛이 나질 않는다. 스시는 광어를 이용해  네 점을 놓았다. 샤리가 찰지고 풍미까지 감돈다. 서울 미들급 스시집의 그것보다도 훨씬 네타가 크고 와사비의 양도 적당하다. 그 뿐이 아니다. 나물 여섯 접시가 깔리고 노릇노릇 잘 구운 고등어가 통째로 나온다. 단돈 1만 5천원에 이렇게 푸짐하다니. 주문 받는 주인장의 얼굴은 투명하고 미소가 가득하다. 

 

성산 어느 식당은 모 대통령이 왔다갔다니 유명 배우가 왔다니 해서 시끌벅적하다. 고등어조림과 갈치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 가격은 인당 2만~3만원이다. 값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맛이 그다지 좋지가 않다. 갈치는 생선의 굵기와 신선도가 중요하다. 굽는 갈치는 살이 통통히 오르고 잘 구워야 맛인데 불 맛이 시원치가 않다. 고등어조림도 무 맛과 양념 맛이 와 닿질 않는다. 식당을 둘러보니 죄다 관광객인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와 두리번거리니 양 옆으로 같은 메뉴의 식당이 두 세 곳이 더 있다. 한 집은 파리 날리고 두 곳은 아예 문을 닫았다. 식당도 부익부 빈익빈이다. 잘되는 곳은 번호표를 받고 대기해서 밥을 먹고 이웃 식당은 가뭄에 콩 나듯 손님이 없다. 잘되는 이 식당의 평점이 4.7이다. 네이버의 힘인가. 평점을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다.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영혼은 위(胃)에 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어느 방송사가 만든 프로그램 중 <최후의 만찬>이란 코너가 있었다. 초대된 유명 인사들이 그들이 정한 음식이나 요리를 미리 준비해서 진행자와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식이었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고른 음식이 호텔 음식이나 진기한 요리,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어릴 적 먹었던 하얀 쌀밥과 우메보시를 꼽았다. 이런 걸 보면 아무래도 음식은 어릴 적 정서와 무의식 깊은 저 편의 DNA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우리의 정서는 아득한 기억 속 어머니의 반찬, 할머니의 가마솥 밥에 닿아있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그런 프로그램에 나오면 된장찌개와 김치국밥을 들고 나올 것이다. 표선 식당에서의 식사 한 끼에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걸 보면 밥은 영혼보다 더 위대하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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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2월19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20년12월17일 17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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