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협의 박물관 이야기 <25> 에르미타주 국립박물관[The State Hermitage Museum,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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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4월11일 09시00분
  • 최종수정 2021년04월09일 15시19분

작성자

  • 최협
  •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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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文化 紀行(문화 기행)은 아무래도 모스크바보다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제격이다.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Пётр I Великий)1703년 설립한 이 도시는 1713년부터 1918년까지 200년 동안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기에 러시아 문예 부흥의 자취를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18세기 당시 유럽 변방의 슬라브국가였던 러시아를 유럽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표트르 1세는 선진 유럽의 기독교 문명수용에 적극적이었고, 그러한 배경하에 그는 사도 베드로(Saint Peter)의 이름을 따서 새로운 도시(Санкт-Петербург, Saint Petersburg,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

내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 최고의 문화도시로 꼽는 이유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UNESCO) 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역사 문화적 자산이 풍부하기도 하지만, 오직 하나의 이유를 들라 한다면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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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년 독일태생 예카테리나 대제(Catherine the Great, Екатерина II Великая)는 당시 영국과 프랑스 등 선진 유럽의 귀족 사회에서는 미술품을 수집하여 전시 보관하는 것이 보편화한 데 반해 러시아에는 박물관은커녕 개인 화랑조차 없는 사정을 개선하고자 유럽으로부터 다양한 미술품을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예카테리나 대제가 미술관 컬렉션의 기초를 마련하면서 시작된 에르미타주 화랑은 그 후 꾸준히 미술품의 구매가 이루어져 1852년부터는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했으며, 191710월 혁명 후, 귀족들로부터 몰수된 수많은 미술품이 유입되어 컬렉션의 규모가 세계 최대를 자랑하게 되었다. 1922년부터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명명된 이곳은 역대 황제의 거처이자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러시아 건축물인 <겨울 궁전>((Winter Palace, Зимний дворец)을 본관으로 하고, 이어서 소 에르미타주, 구 에르미타주, 신 에르미타주, 에르미타주 극장, 예비 보관소(Reserve House) 6개의 건물이 통로로 연결된 거대한 박물관으로 발전하여 이제는 1,050개의 전시실과 300만 점의 소장품을 보유한 세계 최대 박물관 중 하나이다. 소장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고갱, 고흐, 르누아르, 피카소, 마티스 등의 명화에서부터, 이탈리아 등지에서 들여온 조각품들과 이집트의 미라, 그리스, 인도, 중국, 스키타이 유물, 근대의 병기에 이르는 고고학적 역사적 유물, 그리고 제정러시아의 왕관, 보석, 화폐와 메달, 장신구, 의상 등을 망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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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마티스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 ~ 1669)의 컬렉션은 서른아홉 점에 달해 그의 조국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규모와 수준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렘브란트의 작품 중에는 <돌아온 탕자>, <이삭의 희생>,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와 같은 불후의 명작들이 포함되어있고, 그에 더해 렘브란트의 작품이 있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전시실에는 카라바조, 무리요, 엘그레코, 루벤스, 반다이크 등의 작품들을 함께 만나는 기쁨이 기다린다.

내가 다니는 교회 본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벽에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의 그림이 걸려있다. 나는 일요일 아침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마주하게 되는 탕자의 귀환을 응시할때마다 내가 바로 그 탕자일지 모른다고 생각을 하곤했다. 누가복음 15장의 이야기를 담은 렘브란트의 이 그림은 방탕한 아들이 집에 돌아와 무릎을 꿇는 순간, 아버지가 아들의 잘못을 묻지 않고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방황하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표현되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한 장의 화폭에 담아낸 렘브란트의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한다. 아마도 여러 시련을 겪으며 힘든 말년을 보낸 렘브란트가 죽음을 앞두고 사랑과 용서가 기다리는 그의 <정신적 집으로 돌아가는 염원>을 성경의 이야기를 빌려 말하려 했던 게 아닌가 추측을 해 본다. 그러한 그림을... 매주 일요일 교회에서 마주치게 되면서 나의 무의식 안에 자리를 잡게 된 <탕자의 귀환>, 그래서, 에르미타주를 내가 꼭 가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그림을 보러 가는 것이 나에게도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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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주박물관의 작품들을 음미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을 할 수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름 여러 시간 둘러보면서 반드시 다시 한번 시간을 내어 오리라는 다짐을 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중 바닥에 쪼그려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귀여운 아이를 만났다. 문득... 아마도 오늘 본 작품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 이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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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협은 누구?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미국 켄터키 대학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다민족 국가의 민족문제와 한인사회>(공저), <호남사회의 이해>(편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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