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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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석사학위 논문의 '표절' 논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5월21일 13시30분
  • 최종수정 2021년05월21일 13시20분

작성자

  • 이상돈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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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가끔 논문표절 문제가 불거진다. 기왕에 표절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우리나라 석사학위 논문에 대해 표절이니 뭐니 하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 없다고 본다. 대체로 이야기해서 습작에 불과한 우리나라 석사 논문에 대해 표절이니 뭐니 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기존 연구 결과를 읽고 대충 만들어 내는 게 절대 다수의 석사 논문이다. 정치인, 공무원 등 본업이 있는 사람이 다니는 특수 대학원의 석사 논문은 특히 그러하다.

 

우리나라 교육법이 석사학위에는 논문이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논문을 억지로 써내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의 행정학석사(MPA), 경영학석사(MBA), 법학석사(LL.M.)는 원칙적으로 논문이 없다. 그 대신 코스워크 공부 분량이 엄청나다. 교수를 할 사람은 Ph.D.를 곧장 하는데, 대학을 옮기거나 중도에 박사를 하지 못하게 되면 이수학점을 파악해서 대학은 석사학위를 준다. 드문 경우에는 석사 과정 자체에 논문 요건이 있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는 학위에 논문 석사임을 특별하게 표기한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인구 비례 대학 정원이 제일 많은데, 대학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학원다운 대학원이 있는 대학이 몇 개나 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미국은 명문대학 중에 학부만 있는 대학도 여럿 있다. 칼튼, 스워스모어, 윌리엄스 등 학비가 비싼 작은 사립대학인데, 이런 대학을 나온 부잣집 아이들은 졸업 후 로스쿨, 메디칼스쿨, MBA 또는 Ph.D. 과정에 들어가는 게 보통이다. 우리나라처럼 거의 모든 대학이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너절하게 모두 두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석사학위가 남발되는 것은 이런 구조적 원인 때문이다. 웬만한 대학은 논문석사를 아예 없애고 코스워크나 제대로 하는 석사과정을 두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석사를 하고자 하면 억지로 논문을 만들어야 하니까 대충 베끼고 짜깁기 한 논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런 논문은 아무도 안 읽는다고 보면 된다. 그런 석사학위를 딴 사람이 장관에 지명되면 야당 의원과 그 보좌진이 비로소 그 논문을 훑어보게 되는데. 십중팔구 표절이니 뭐니 해서 청문회장이 시끄럽게 된다.

 

우리나라 교육법이 석사학위에 논문을 요건으로 한 것은 일본의 영향이라고 하겠다. 우리 세대가 대학을 다닐 1970년대 만 해도 서울대에서도 서울대 석사학위만 갖고 전임강사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980년대 초에 전두환이 대학 정원을 화끈하게 늘리고 졸업정원제로 학생을 30% 더 늘였다. 그러자 많은 대학이 서울대 석사학위를 갖고 있고 박사과정 두 학기 이상을 한 사람을 전임교수로 대거 뽑았다. 전두환 덕분에 서울대 석사학위가 행세를 한 셈이다. 

 

 지금은 석사학위 갖고 교수가 된다는 것은 상상이 안 가는 일이다. 이제는 박사. 그것도 유수한 대학의 박사가 아니면 대학에 원서를 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요즘 큰 기업에는 유수한 외국 대학의 석·박사와 MBA가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임에도 낡은 교육법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부실한 논문 석사가 넘쳐 흘러나고 있다.  

  

제일 큰 문제는 박사학위 논문에 표절이 있고, 그 박사학위 논문에 근거해서 대학 교수가 된 경우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그 판단은 대학의 몫이고 외부에서 논하기는 어렵다. 현직 교수가 논문 표절 시비에 걸리는 경우도 어디까지나 대학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문제다.  표절은 개인과 개인의 문제이기에 앞서 그 조직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도무지 해당 조직이 자율적 통제를 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30년 전에 내가 경험했듯이, 공론화가 되곤 한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공부할 때 겪은 일이다. 박사학위를 하기 위해 튤레인에 다시 돌아오고 보니 한사람 밖에 없던 흑인 정교수가 보이지 않았다. 논문 표절 문제가 교수회의에서 제기되자 그 다음 날 짐을 싸서 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자 대학은 그 교수의 흔적을 아예 지워버렸다. 인종차별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교수가 된 것 자체가 소수인종 교수를 채용하라는 사회적 압력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영국과 소련에서 공부한 그는 티칭에 한계가 있자 논문 발표로 자기 업적을 관리하고자 했는데, 논문에 집착하다고 보니 표절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동료 교수들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두말 않고 대학을 나가 버렸다. 얼마 후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인도 출신 교수가 새로 부임했다. 옥스포드 학부를 나오고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한, 누가 보아도 영국법과 유럽 대륙법에 정통한 대단한 학자였다. 

 

이런 것이 대학의 자율적 통제다. 대학은 이래야 한다. 하지만 교수의 논문은 강제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반면에 법관과 헌재 재판관은 강제력 있는 판결문을 쓴다. 법관과 재판관에 대한 기준이 높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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