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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협의 박물관 이야기 <34>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영국박물관에는 영국이 없다. 그 대신 세계가 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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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6월13일 09시00분
  • 최종수정 2021년06월13일 08시39분

작성자

  • 최협
  •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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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영국 The Guardian()Jonathan Jones라는 기자가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은 농담(old joke)을 보았다.

“British Museum is that it doesn’t have much that is British in it.”

영국박물관에는 영국이 없다.”라는 농담은 영국박물관에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大英帝國, British Empire) 시절, 세계 각지에서 가져다 놓은 소장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 두고 나온 말이다.

 

세계 양대 박물관인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과 루브르박물관(Le musée du Louvre)을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등장하는 주제가 식민주의와 문화재 약탈이다. 이 쟁점이 중요한 만큼 그동안 탈식민주의 인류학이나 탈식민주의 박물관학에서 충분히 비판적으로 다루어져 왔다. 그래서 여기서는 영국박물관이 간직한 또 다른 측면을 들여다보려 한다.

 

<영국박물관>이라는 장소는 대학 시절 내가 읽던 마르크스의 이야기에 묻혀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마르크스는 그의 영국 망명 시절 40년 동안 거의 매일 영국박물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박물관 문이 열리기 전에 미리 와서 기다리다 첫 번째로 입장하는 사람이었고, 문을 닫을 때까지 가장 늦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때때로 도서관 측은 마르크스를 강제로 쫓아내야 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영국박물관이 곧 <자본론>의 구상과 집필이 이루어진 장소라는 말이 된다.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매일 똑같은 좌석에 앉아 집필했다는데, 좌석 번호가 G7이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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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박물관 도서관(British Museum Library)을 드나든 고정 멤버들의 면면을 보면 실로 영국 역사와 세계사에 빛나는 인사들로 가득 차 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는 그 명단의 일부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박물관의 도서관은 갈 곳 없던 해외 망명객들이나 가난한 학자와 학생, 작가 지망생들에게 천국 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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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 있는 이용자 카드 기록에는 레닌, 간디, 버나드 쇼, T.S. 엘리엇의 이름이 포함되어있다. 러시아의 혁명가, 가난한 식민지 인도의 유학생, 16세 이후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일랜드의 작가 지망생, 그리고 하버드에서 옥스퍼드로 유학을 온 미국의 수재 등 다양한 이방인들과 수많은 영국인이 모두 이곳에서 꿈을 키웠고, 결국 세상을 바꿔 놓았다.

 

영국박물관이 여느 박물관과 달리 대단한 박물관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설립 초기부터 지적(知的) 호기심에 가득 찬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도서관조직>을 매우 비중 있게 발전시켜왔다는 점이다. 영국박물관의 설립은 1753년이지만, 소장품이 공공에 개방된 해로 잡으면 1759년이 된다. 어찌하든 세계 최초의 공공박물관이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박물관의 90%1945년 이후에 건립되었다 한다. 그렇다면 남보다 거의 3백여 년을 앞선 박물관이다. 이 이른 시기에 영국박물관은 도서관 기능을 포함한 조직을 만들어 출범했다. 1753년 창립되었을 당시에 만들어진 인쇄과라는 명칭의 부서가 도서관 기능을 담당한 것이다.

 

이 부서가 차츰 체계적인 도서관으로 성장을 거듭하였고, 20세기에 들어, 박물관의 체제 안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로 진행된 도서관의 양적 팽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서관법의 제정을 통하여 1973년 영국도서관(British Library, 국립도서관)으로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하였고, 1997년에 드디어 박물관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유스턴가()(Euston Street)에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했다.

 

1997년 국립도서관(British Library)의 이전이 이루어질 때까지 영국박물관에서 도서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는 도서관의 위치, 규모, 시설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영국박물관 도서관의 열람실은 사각형으로 이어지는 박물관 건물의 한 중앙을 차지하는 대형 공간으로 모든 전시실에 연결되며, 런던에서 가장 크다는 푸른색의 돔(rotunda) 천장은 그 지름이 43에 달해 참으로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방이었다. 이 원형 열람실은 시드니 스머크(Sydney Smirke)의 설계로 1854년에 공사를 시작해 3년 후에 완공되었는데, 1997년 도서관이 독립된 건물로 떠난 뒤에는 지금도 박물관 내부의 중심 공간으로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박물관의 특별 행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국박물관에는 일찍부터 도서관과 연계되는 <인쇄, 그림 전시관>을 별도로 마련하여 운영하여왔다. <인쇄, 그림 전시관>에는 서구에서 제작된 국가적인 수준의 인쇄물, 간행물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 예르미타시 박물관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간행물을 소장하고 있는 장소로 꼽힌다. 따라서 영국박물관 도서관의 소장품에는 세계 유일, 귀중본 등의 수식어가 붙는 역사적 문서나 인쇄물들이 넘쳐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영국박물관 소장 문서나 저작물들은 타 박물관과는 달리 대부분이 열람실에서 일반인들도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연구자들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해왔다.

 

박물관 도서관 소장품 가운데는 그 유명한 앵글로-색슨의 서사시 <베어울프(Beowulf)>의 유일본, 알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 재위: 871~899) 시절에 작성된 <앵글로-색슨 연대기>(Anglo-Saxon Chronicles), 민주주의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서 중의 하나인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원본 등이 있고, 근현대 영국의 경제 발전과 인도 관계 연구에서 필수적인 동인도회사의 1600년 이래의 모든 자료도 보관되어 있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을 불러들인다. 아마 마르크스도 이러한 자료에 푹 빠져들었을 것이다.

 

확실히 영국박물관에는 특수한 그 무엇이 있다. 그냥 유물이나 그림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유명 화가의 그림을 많이 전시하고 있는 루브르박물관과 비교해 보면 영국박물관에는 그림이 별로 없다. 그 대신 전시실이 <이집트-수단 전시관>, <그리스-로마 전시관>, <중동 전시관>, <아시아 전시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전시관>, <영국-유럽전시관>으로 나뉘어 전 세계의 문명을 한 자리에서 비교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인쇄, 그림 전시관><도서관>을 더하면 영국박물관이 세계 문명에 대한 비교연구의 중심을 지향했음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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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리처드 램버트 영국박물관 이사회 의장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 바 있다.

영국박물관은 궁극적으로 문화 간 영향에 대한 담론 형성을 위해 설립됐고, 이 역할을 해내려면 글로벌 컬렉션이 필요하다.”

부연하면, 영국박물관에 영국은 없으나, 그 대신 세계가 있다는 말이다.

 

램버트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사례로 2010년 당시 영국박물관 관장이었던 닐 맥 그리고(Neil MacGregor)BBC방송에서 20주 동안 진행한 <100개의 유물을 통해 보는 세계 역사>(A History of the World in 100 Objects)라는 프로그램을 언급할 수 있겠다. 맥 그리고는 영국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 100점을 선정하여 각각의 주요 유물을 인류 문화의 발전과 교류의 과정에 연결함으로써 여러 문화의 상호연관성을 보여주려 했다.

 

다양한 지역과 시대를 달리해서 등장한 유물들 (도구, 무기, 기계, 예술품, 문서, 등등)이 인류 역사 진행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으며, 또 그것들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어떠한 연관 관계를 갖게 되었는지를 유물을 통해 풀어가는 이 프로그램은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얼마 뒤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어 역시 호평을 받았다. 이러한 노력과 시도가 영국박물관을 세계의 박물관으로 인식시키는 데 작용해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역사를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조망해보기보다는, 우리가 사는 오늘에 대한 의도적 논쟁으로 만드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는 가운데 세계사가 잉태하고 있는 끊임없는 연결의 문제가 실종된다. 우리는 세계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는가? 영국박물관을 나서며 문득 뇌리를 스쳤던 상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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