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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다시 태어난다하여도<그림이 있는 단편소설-제8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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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11월03일 18시06분
  • 최종수정 2019년11월03일 18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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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 다시 태어난다하여도 당신을, Oil on Canvas, 90.9cm X 72.7cm, 2019년 작

 

 

여보, 이번 출장이 몇 년 걸리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하지 말고 마음먹은 일 잘하고 오세요. 저는 태교 열심히 하고 있을게요.”

부인은 현관을 나가려는 남편에게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남편은 신던 신발을 더 이상 신을 수가 없었다.

얼음처럼 굳어진 남편은 부인을 향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남편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말한다.

오늘 하러가는 일은 출장이 아니라 잠시 나갔다 오는 거야. 내 잠시 나갔다 들어오리다.”

남편 창수씨는 아내에게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선다.

창수씨는 슈퍼에 가서 이것저것을 사가지고 돌아오다가 동네 놀이터 벤치에 앉아 멍한 눈으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짓는다.

창수씨의 발 앞으로 공이 굴러온다. 창수씨는 공을 집어 아이들에게 던져주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창수씨는 87세의 노인이다. 그의 아내도 83세이다.

창수씨는 집을 나서기 전 아내의 말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창수씨 부인은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한 아내를 바라본다.

여보 점심 곧 준비되니 마당 화분에 물 좀 주세요.”

창수씨 아내는 조금 전까지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 전혀 기억이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더 가슴이 아팠다. 창수씨는 화분에 물을 주는데 이파리에 부딪쳐 떨어져 나가는 물방울이 자기의 눈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수씨 또한 자기의 마음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부인과 마주하며 식사를 했다.

창수씨와 부인은 식사 후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 꽃을 보고 나무를 보며 아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해 질 수 있도록 그는 최선을 다 했다.

나무 위를 바쁘게 오가는 귀여운 다람쥐의 모습을 발견하면 아내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함께 보기를 권했고 어여쁘게 핀 들꽃을 보면 한 움큼 따서 아내에게 내밀 곤 했다. 딴 꽃을 귀 위로 함께 꽂으며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깔깔 거리기도 했다. 창수씨는 아내를 위해 정성을 쏟았다.

 

산전수전 다 격은 창수씨도 최근 부인에게서 나타나는 증세와 상황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니 괴롭다는 것 보다는 안타깝고 불쌍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창수씨 내외는 자식이 없다. 젊은 날 한국전쟁에서 힘겹게 살아남고 극빈국의 상태에서 살기위해 닥치는 데로 일을 하며 힘겹게 살던 창수씨는 30살이 넘어 뒤 늦게 중매를 통해 결혼하게 되었다. 둘은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였으나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날들이 많았다. 그러던 중 19653월 월남전에 태권도 교관단을 파병 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창수씨는 파병 나가기에 나이가 많았지만 한국전 당시 백병전에서 살아남으려는 생각으로 태권도를 열심히 연마한 실력이 있었다. 창수씨는 월남전이 삶의 전환점이 되는 기회로 느껴졌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창수씨는 아이를 가진 아내를 남겨 놓고 월남으로 향했었다. 창수씨가 월남의 후방에서 태권도 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돌아왔을 때 아이는 없었다. 아이가 돌을 넘긴 시점 쯤에 연탄가스중독으로 사망하였다. 창수씨의 아내도 사경을 헤매다가 어렵게 살아남았다.

창수씨의 아내는 그 일 이 있은 이후로 몸과 마음을 다쳐 쇠약해지다가 골반이완 자궁 탈출증으로 자궁까지 적출 수술을 받아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상태였다.

돈을 벌어왔지만 몹시 망가져 버린 가정을 창수씨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아내는 모든 것이 자기의 실수라는 듯이 창수씨를 바라볼 때 항상 주눅 든 모습을 하였다.

아내의 모습이 안타까워 창수씨는 연애하는 마음으로 살자며 아내를 다독거렸고 그렇게 몇 년은 잘 지냈었다.

 

그런 생활이 지나고 있다가 주변의 지인이나 친구들의 자식들이 자라 학교를 다니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창수씨는 헛헛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우울한 감정까지 생겨 어찌할 바를 모르는 창수씨는 그저 이 현실을 피하고 싶었다. 불안정한 감정이 생길 때면 자기도 모르게 아내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더 창수씨에게 잘해주었고 짜증을 낸 창수씨가 오히려 미안해 질 정도로 아내는 애를 썼다. 그런데 문제는 창수씨가 원하던 가정의 모습이 아님으로 인해 해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창수씨의 이런 불편한 마음이 강해지던 시기에 중동의 건설 붐이 일어났다.

 

창수씨가 월남으로 갈 때에는 완전한 가정을 꿈꾸며 갔지만 이번에는 많이 달랐다. 자기가 꿈꾸던 행복한 가정의 모습과 상당히 거리가 먼 이 현실을 조금이라도 잊고 싶은 마음에 1978년 다시 사우디를 향해 날아갔다.

5년간 근무하고 돌아온 후에도 창수씨는 온통 신경을 일에만 썼다. 아내와 떨어져 있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마음도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월남전과 사우디 근무 이후로 외국어에 자신이 붙은 창수씨는 그 이후로도 해외를 드나들며 일을 하여 집에는 거의 없었다. 그런 창수씨를 향해 아내는 한 번도 투정부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창수씨 곁을 지켜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수씨는 가정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겉 돌다가 아내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바쁘게 일에 몰두할 때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체중이나 몸의 변화가 없었는데 은퇴 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예전 외국 생활의 식습관을 유지한 탓에 과체중이 되었다. 또 어느 날부터는 몇 시간씩 이어지는 복통과 오한이 와서 검사를 했더니 담석증이 심각하였다. 결국 창수씨는 담낭절제술을 받았다.

 

창수씨 아내는 늘 창수씨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수술 전후 간호하는 일과 이후 음식을 만드는 것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듯이 최선을 다했다.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창수씨가 좋아하는 고기를 대신하여 콩으로 만든 콩고기 요리를 배우러 다녔으며 식재료를 살 때에도 지방 함유량을 꼼꼼히 체크하는 성의를 보였다. 아내의 정성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창수씨는 자기가 아프고 나서 알게 되었다.

 

뒤 늦게 아내의 사랑을 깨우친 창수씨는 그동안 무심했던 자기를 반성했다. 한결같이 자기를 사랑해주고 위해주며 평생의 동반자였던 아내를 자기는 마치 남처럼 생각했었다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 미안했다. 무엇 때문에 일을 했었나? 왜 살았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창수씨의 생각 변화는 사랑으로 변했고 아내의 모든 일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던 아내에게 치매가 왔다. 창수씨에게 보내준 아내의 사랑을 다 갚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말이다.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창수씨는 낮에 한 아내의 말을 생각해봤다.

여보, 이번 출장이 몇 년 걸리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하지 말고 마음먹은 일 잘하고 오세요. 저는 태교 열심히 하고 있을게요.’

아내는 할머니가 된 지금 아이를 가졌던 그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모든 아픔을 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간절함이 있는 것 같았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창수씨의 눈에는 진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직 아내에게 다 하지 못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저 사람이 행복할 수 있게 하려면 난 무엇을 해야 하나? 창수씨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창수씨는 아내를 데리고 보건소 치매안심센터를 방문하였다. 몇 가지 진단과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창수씨는 아내를 좀 더 전문적으로 간호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센터에서는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수강하면 전문적인 요양법을 배울 수가 있고 가능하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것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창수씨는 아내에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하고 수강 등록하였다. 600페이지가 넘는 기본 교재를 아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공부하였다. 문제지까지 합하면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성의를 다하여 공부해 나갔다.

 

201911

밖에 나갔다 들어 온 창수씨의 손에는 신부 부케가 들려져 있었다.

창수씨는 아내를 소파에 앉히고 나지막이 말을 했다.

사랑하는 여보. 내 오늘 당신에게 고백 할 것이 있소.”

아내는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어리석어서 당신의 한없는 사랑을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소. 나는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데 우리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니 다음 생이 있다면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이 준 사랑을 갚으며 살겠다고 맹세할 참이요. 이 꽃을 받아주면 좋겠소.”

아내는 치매가 진행되어 창수씨의 말을 다 이해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창수씨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에서 많은 부분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잠시 말없이 있던 아내는 창수씨가 내민 꽃다발을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요 여보. 저도 당신을 사랑해요. 이 꽃은 민수 젖 먹이고 조금 후에 꽃병에 꽂을게요. 꽃이 너무 예쁘다.”

창수씨 아내는 신이 나서 꽃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창수씨는 아까 받은 합격증을 주머니에서 꺼내 다시 보며 눈물로 다짐하였다.

나는 아내보다 하루 더 살겠다고, 그녀를 편히 보내준 후에 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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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령화로 치매환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령화 시대 환경 변화에 따라 치매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간호하려는 배후자나 가족이 늘어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완치가 없는 치매환자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가족들의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까지 취득하며 적극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많은 분들을 존경합니다. 이 소식을 소설적 구성으로 만들었습니다.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 기사입력 2019년11월03일 18시06분
  • 최종수정 2019년11월04일 15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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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Kai Jun(전완식) 소개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를 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문재인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운영위원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