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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으로 풀어보는 부동산 투자전략 <11> 재건축 분담금 그리고 멈춰선 공급의 대가: 기질여품 기서여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4월30일 18시56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30일 18시55분

작성자

  • 박완희
  • WWG자산운용 대체투자본부 본부장(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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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의 재건축 사업이 시공사 선정에 실패했다. 평당 공사비는 650만 원에서 770만 원으로 인상되었지만,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겉보기엔 한 단지의 사업 좌초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것은 대한민국 정비사업의 구조적 경고로 읽어야 한다. 이 사건을 상징적으로 만드는 것은, ‘사업성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분담금에 세금이 덧씌워지는 구조 때문이다. 이중적 부담은 조합원의 사업 참여 의지를 꺾고, 시공사의 참여 유인을 사라지게 하며, 결과적으로는 주택 공급 자체를 늦추게 만든다.

 

오늘날 재건축 조합원이 부담하는 분담금은 단순한 비용 분담이 아니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조합원이 부담한 사업비의 상당 부분이 자산 가치 증가로 간주되어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재산세의 과세 대상이 된다. 공사비가 오르면 분담금이 늘어나고, 분담금이 늘어나면 조합원의 세금부담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구조다. 이는 일종의 ‘세금이 결박한 사업비 구조’이며, 조합원들은 자발적인 투자를 통한 개발이 아니라, 세무적 부담의 공포 속에서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장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공급’이다

부동산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금리나 수요에 따라 출렁일 수 있다. 최근의 금리 인하 기대나, 수요 위축에 따른 거래 감소는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가격을 결정짓는 유일한 요인은 공급이다. 수요를 억제하고 시장을 통제하는 단기 정책으로는, 시장의 근본적 체질을 바꾸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비사업 규제, 조합원 분담금 세제, 이중과세 구조 등으로 재건축 공급을 옥죄는 방향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마치 물이 부족한데도 수돗물을 잠그고 있는 격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급이라는 원천에 물꼬를 터주는 작업이다.

 

사실 재건축은 다른 개발사업에 비해 속도 면에서 압도적인 장점을 가진다. 기존 입주민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부지를 매입하지 않아도 된다. 토지비가 없다는 것은 곧 사업 수익성의 안정성, 그리고 비용 리스크의 최소화를 뜻한다. 민간 개발이나 공공택지 방식에서는 토지 확보와 보상만으로도 수년이 소요된다. 반면 조합 방식은 이미 토지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빠르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이 근본적인 장점이 지금은 완전히 가려지고 있다. 이유는 바로 경기 활황기에 도입된 고비용 분담금 제도와, 그 위에 얹힌 각종 세금 때문이다. 경기가 과열되던 시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종부세, 양도세 강화 등은 ‘집값 억제’를 위한 방어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이 구조적 공급 부족에 빠진 상황이고, 이 제도들은 오히려 재건축을 고사시키고, 공급 자체를 줄이는 역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손자는『군형편』에서 병사의 움직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其疾如風,其徐如林,其侵掠如火,不動如山”

기질여풍 기서여림 기침략여화 부동여산

“빠를 때는 바람처럼, 느릴 때는 숲처럼, 공격할 땐 불처럼, 멈출 땐 산처럼 행동하라.”

 

정비사업은 지금 ‘산’처럼 멈춰 있다. 시장과 정책의 속도는 완전히 엇박자를 내고 있다. 빠를 수 있는 제도를 느리게 만들고, 전진해야 할 정책은 후퇴하고 있다. 분담금과 세금이라는 바위가, 재건축이라는 흐름을 틀어막고 있는 상황이다.

 

손자는『행군편』에서 말한다.

“不修內政而伐人者 必亡” 

불수내정이벌인자 필망

 

내부를 정비하지 않고 외부를 공격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지금 정부는 수요를 누르고, 금리를 조절한다. 그러나 공급 시스템, 특히 정비사업 구조와 과세 체계의 내부적 모순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외부적 수요 조절에 집중하는 사이, 내부적 공급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시장과 전투하려 하지 말고, 제도와 싸워야 한다. 문제는 시장이 아니라, 제도다.

 

재건축, 빠를 수 있는 무기를 ‘느리게 만든’ 정책에서 벗어나야

조합 방식의 재건축은 본래 빠르고 유연한 공급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담금 제도와 세금 구조로 인해 그 장점이 사라지고, 오히려 시장을 왜곡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손자는 또 말했다.

“將者 國之輔也,輔周則國必強,輔隙則國必弱”

장자 국지보야 보주즉국필강 보극즉국필약

 

장수는 나라의 보좌자요, 보좌가 견고하면 국가는 강해지고, 헐거우면 약해진다.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너무 많은 ‘헐거운 틈’을 품고 있다. 그 틈은 공급의 정체, 정책의 역행, 제도의 불합리함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이 틈을 메워야 할 때다.

 

빠를 수 있는 사업은 빠르게, 시장이 원하는 공급은 원활하게, 정책은 유연하게.

 

이것이 시장을 안정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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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5년04월30일 18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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