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택정책> (3) 부동산경기 변화의 대세 형성 요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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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 시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필요성
전 편에서 최근의 부동산 시장 동향과 대책을 살펴보았다.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현재 정책의 배경이 되는 관점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제까지의 부동산 대책에서 목표로 삼은 부동산 시장의 현상(예건대 가격 변동)과는 다른 형태의 현상이나 기저적 흐름(underlying trends)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앞에서 사용한 대세적 흐름과 같은 개념이다. 이제부터 주택시장의 대세적 흐름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2017년 8.2대책이든, 2018년 9.13 대책이든, 나아가 최근의 6.17 대책 및 7.10 대책 등은 주택시장의 기저적 흐름을 바꾸지 못하였다. 달리 말하면 세금 인상, 대출규제, 기타 규제강화 등은 몇 개월 동안 주택가격 변동률을 낮추었을지언정 장기적인 차원에서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요인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주택보유자에 대한 세금 중과 등은 지방 소재 주택을 매도하고 소위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는 경향이 심화되어 오히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사실 과거 대부분의 부동산 대책은 현 정부의 대책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택시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과거 부동산 정책의 결과를 생각해보면 성공적이라고 평가될 만한 것이 많지 않다. 비단 현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부가 같은 과오를 범하였다. 이제는 이러한 과오에서 탈피하여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정책은 주로 주택의 수요와 공급에 관하여 초점을 맞추었다. 주택시장의 가격을 움직이는 요소에는 주택 수급 상황, 주택 관련 세금의 수준 및 주택 구입자금의 존재 여부 등이라고 생각해온 것이다. 새로운 관점이라 함은 이 요소들 이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주택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세금이나 자금이 주택 가격에 미치는 영향력보다 압도적일 수 있다는 점이 최근 동향에서 확인되었다. 따라서 주택 시장의 흐름을 읽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하고 주목하지 못했던 요소를 찾아내야 한다.
달리 말하면 부동산시장의 흐름을 좌우하는 기저 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잠재적인 가설로서 “주택시장에서 주택가격 상승 기대감이 형성되는 메커니즘, 그 배경이나 원인 등이 무엇인가”를 규명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지금 주택 가격 상승 원인으로 주택공급 부족을 꼽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수급상황은 많은 요인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주택공급을 대폭 확대하더라도 주택 가격은 상승할지도 모른다. 주택가격 상승 기대가 강한 경우에는 주택 공급이 늘어나더라도 가격은 오를 수 있다.
이는 마치 Case and Shiller(2003)주1)가 부동산 가격 결정 요인은 심리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과 유사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심리적 요소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려는 게 아니다. 주택시장에서는 가격에 대한 기대가 한 번 형성되고 나면 오랫동안 지속되는 속성이 있는데 그러한 기대를 형성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논의의 요체라고 생각된다.
※주1) Case, Karl E., and Robert J. Shiller. 2003. “Is There a Bubble in the Housing Market?” Brookings Papers on Economic Activity 2:299-342.
◈ 우리나라의 주택시장 경기 ;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을 중심으로
주택시장의 기저적 흐름을 파악하기 위하여 주택시장 경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하에서는 KB국민은행의 통계 중에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를 기준으로 주택시장 경기의 주기를 파악할 것이다.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를 실질화 하여, 즉 서울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를 소비자물가지수로 나누고 2019년 1월을 기준으로 지수화 하였다. 참고로 서울아파트 매매가격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도 같이 표시하여 부동산 경기를 파악하는 데 활용하였다. 아래 그림으로 그 결과를 나타내었다.
이 그림을 통하면 복잡한 통계기법을 활용하지 않고 육안으로도 주택경기를 파악할 수 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실질)는 통계가 편제되기 시작한 1986년 이후 그 추세가 2~3번 정도 바뀌었다. 즉 주택시장 경기는 그 주기가 10년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매매가격지수의 흐름과 전년 동기대비 증가율로 파악한 경기와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다만 주택가격 변동률은 단기간에 큰 기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변동률 오르내리더라도 매매가격지수의 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변동률은 0을 기준으로 장기간 플러스 혹은 마이너스를 보이는데 그 변화가 지수의 흐름과 일치하고 있다. 즉 변동률의 대체적인 추세가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변하거나 반대로 변하는 경우에는 주택경기에서 대세적 흐름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세적 흐름을 주택시장 경기로 인기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간단한 통계를 통해 주택시장 경기 주기는 매우 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86년 이후 현재까지 34년 동안 그 주기는 2번 반 정도만 형성되었다. 같은 기간 중 일반 경기는 약 7번의 주기가 형성되었다.주2)
※주2) 1986년은 일반 경기순환주기로는 제4순환에 해당(일반 경기는 1970년부터 파악 가능)하고 제11 순환의 정점이 2017년 9월에 형성되었고 현재는 제11 순환의 하강기에 있다.
주택시장 경기의 주기가 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택가격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추세에 접어들면 그 추세가 장기간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주택시장에서 형성되는 큰 흐름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경제 변수와는 다른 기저 요인이나 힘(underlying forces)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단기적인 부동산의 가격 변동을 부동산경기로 파악하지 말아야 한다. 일시적인 주택가격 안정을 두고 주택시장이 안정되었다느니 주택정책의 효과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부동산 경기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야 하고 기저의 큰 흐름과 결부하여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라 하겠다.
그리고 부동산 경기를 일반 경기를 다루듯 하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조절을 통해 경제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하고 실제로도 이러한 접근법에 의해 정책을 수행하여 왔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의 주기가 매우 길다는 사실은 부동산시장에 대해서 단기 경기조절의 사고방식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부동산 경기를 움직이는 기저의 힘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과거 주택경기의 대세적 흐름에서 그 변화의 배경이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보기로 하자.
◈ 주택경기 주기별 특징적 변화와 대세 형성 요인
< 제1주기 >
제1주기는 1986년 7월을 기점으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4년 6개월 동안 상승 기조를 이어갔다. 3저(저금리, 저유가, 저환율) 현상으로 인해 경기가 호황을 보인 데다 국제수지가 흑자로 전환하면서 유동성 사정도 호전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인 데 이어 부동산 시장으로도 그 여파가 밀려왔다. 전국적으로 토지 가격과 함께 주택 가격이 대폭 오르는 등 전반적인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었다. 부동산 경기의 전환을 가져온 요인은 전반적인 경제 상황의 호전과 이를 배경으로 한 긍정적 기대 심리 등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1주기의 대세 하락기는 1991년 4월 이후이다.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계기로 주택가격이 안정 내지는 하락세로 전환한 것이다. 이후 9년 9개월(혹은 7년 7개월) 동안 주택경기는 침체기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는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저조하였다. 정책적으로도 부동산경기 활성화 등을 공공연하게 거론하지 않았다. 특히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주택가격은 한 단계 더 폭락하였다. 기업들이 보유 부동산을 매각하는 가운데 중소기업 등의 파산과 일반 직장인의 해고 등이 이어지면서 주택을 처분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제1주기에서 전반적인 부동산 경기하락기로 접어든 데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급이 가격 안정에 도움을 주는 것은 어느 정도 확인되었다. 하지만 예상을 넘는 대규모 주택 공급은 주택시장의 침체를 장기화시키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제도적 요인도 가세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토지초과이득세법,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법 발효 등 토지 공개념이 도입됨으로써 부동산 매입 의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중에서 토지초과 이득세는 1991년 8월 5일 실제로 부과되었다. 이외에도 일반 경제상황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중동전 발발 등으로 세계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국내 경기도 종전에 비해 위축되었다. 종전의 주택가격 상승이 가팔랐다는 점에서 경계심도 작용하였다. 그리고 금융실명제 추진으로 부동산에서도 실명 거래가 시행됨으로써 자금력을 가진 계층의 무분별한 부동산 보유 동기를 억제하게 되었다.
< 제2주기 >
외환위기 와중이었던 1998년 11월 서울 부동산 경기는 명목상 저점이 형성되었다. 당시 부동산경기의 회복세는 초기에는 인식하지 못할 수준이었으나 2001년을 기점으로 완연한 상승세가 나타났다. 이 상승세는 2008년 5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시화되는 시점까지 지속되었다. 이 기간 중의 상승은 1998년 11월을 기점으로는 9년 6개월, 2001년 1월을 기점으로는 7년 4개월 동안 상승세가 이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큰 사건이 없었다면, 정상적인 대책으로는 막기 어려웠을 정도로 상승세가 폭발적이었다. 각종 대책을 강구하였으나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제2주기에서 대세적 상승 전환에도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의 파격적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꿈적이지 않던 주택시장이 경기가 회복되고 금리가 인하되면서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에 더하여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주거래 대상으로 기업에서 가계로 전환한 것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기업들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차입을 극력 억제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해 가계대출의 경우 부동산 담보에 기초한 안정적인 대출선이 되었기 때문에 은행 등 금융기관이 적극적으로 확대하고자 하였다. 2001년에 이르러서 IT버블 붕괴와 경기하강 등에 대응하여 금리가가 인하되고 본격적인 유동성 공급이 이루어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일반 경기 혹은 주식시장 등 부동산 시장의 대체적인 성격을 지니는 시장이 불경기로 접어들었다.
한편 부동산 시장에서는 장기간의 경기 침체로 어느 정도 저점에 이르렀다는 판단과 아울러 외환위기 초기 주택 가격이 지나치게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는 점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택 공급이 수요를 못 따르는 상황이 전개된 것도 대세적 전환을 가져오는 데 중요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주택건설에 나서지 못한 관계로 주택 공급이 위축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요인 이외에도 소문 등도 심리적으로 자극제가 되었다. 화폐개혁 등의 엉뚱한 뉴스가 등장하여 유포됨으로써 부동산 등 실물투기 수요를 자극하였다. 수도권 고교 평준화 정책(안양시, 과천시, 군포시, 의왕시, 부천시, 성남시 (분당구 지역) 등에서 2002년도부터 평준화가 실시)으로 서울 강남으로 이주 열풍이 발생한 것도 서울 주택 가격을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주택시장 경기의 대세적 전환은 한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주택 구입 심리를 자극하거나 가격 상승 기대감을 형성함으로써 대세 전환의 계기가 마련된다는 점이다.
대세전환 이후에는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여러 대책들이 오히려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각종 수요 억제 및 규제는 주택 공급을 위축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가져왔다. 서울의 대체 지역으로 지방을 개발하고자 함으로써 부동산 관련 호재가 지속적으로 공급됨으로써 가격 상승 기대 심리가 진정되지 않았다. 택지 공급을 위한 공공개발 사업으로 토지 보상금이 지속적으로 지급된 것도 부동산 및 주택 가격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2008년 5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하강 국면으로 대세적 전환이 이루어진 서울 주택시장은 2014년 8월까지 6년 3개월 동안 침체되었다. 2009년 말경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았던 강북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하기도 하였지만 2010년 여름 이후 주택 가격이 전반적인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특히 중대형 및 고가 아파트의 가격 하락이 두드러졌다. 주택 매입 수요 자체가 크게 위축된 것이다. 2000년대 서울 주택 가격은 온갖 규제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함으로써 순식간에 대세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수급 관리를 아무리 강력하게 하더라도 시장의 흐름이나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던 데 비해 심리적 충격으로 시장 흐름이 바뀐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서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이 장기 침체로 접어들게 된 데에는 다른 요인들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외환위기 경험에 비추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었다는 점이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예상을 배경으로 주택가격 거품론이 등장하였다. 2000년대 주택가격이 기록적으로 상승한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택 매입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주택의 과잉 공급 현상이 자연적으로 부각되고 부동산 PF대출의 부실이 가시화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2010년대 초기 서울 주택시장은 미분양 주택 축적, 거래량 축소, 가격 하락 등이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전형적 침체 상황에 직면하였다.
2012년 4.11 총선 후 한 달 만에 강남 투기지역해제, 민영주택 전매제한 및 재당첨제한 폐지, 양도세 비과세 기간 조정 등이 포함된 5.10 부동산대책이 나왔고 0.25%P 금리 인하까지 단행되었지만 침체된 부동산시장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다시 취득세 추가감면과 미분양 양도세 감면 등이 포함된 9.10 부동산대책이 나왔지만 국회의 시간 끌기로 그 효과가 사라져버렸고 0.25%P 추가 금리인하가 되었지만 이 역시 효과가 없었다. 각 대책이 나올 때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부동산시장은 더욱 침체되었다.
< 제3주기 >
2014년 8월 다시 대세적 상승기로 전환하여 현재까지 만 6년 이상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다. 지금의 주택시장 대세 상승 시점은 박근혜 정부에서 소위 ‘초이노믹스’를 통해 대출규제를 완화한 시점과 일치한다. 하지만 최근의 서울 주택시장 동향에서 살펴보았듯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현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상승하였다.
현행 주기의 대세 전환 요인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시기적으로 서울 도심지역의 주택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귀촌하려는 경향을 보이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도심에서 계속 살기를 원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주택시장 여건이 크게 개선됨으로써 대세 전환의 계기가 축적되고 있었다. 전세가격 상승(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 등), 유동성 사정 호전과 금융시장 상황 등으로 볼 때 잠재적 수요는 충분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금리 정책이 지속된 것을 들 수 있다. 금융상품의 수익률이 낮아짐에 따라 실물자산에 대한 관심이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장기 저성장의 문제를 실물적 대책이 아닌 통화금융으로 해소하려는 정책의 폐해가 누적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여건에 더하여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를 고착시키는 일련의 정책들이 연달아 시행되었다. 과거 실효성이 없었던 정책을 재차 동원한 것이 시장에서 가격 상승 기대감 형성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공급 확대나 보유세 강화 등 주택 수급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줄 정책수단을 적극적으로 강구하지 않고 단기 수요 억제 정책 위주로 대책을 마련한 것도 문제였다.
그리고 부동산 정책의 자체적인 모순(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강화, 지방과 서울을 분리하지 않은 문제, 그리고 공급을 가급적 억제하고자 하는 정책)으로 인해 서울 선호지역의 주택 가격은 더욱 상승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부동산 대책을 수시로 발표한 것도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반복적으로 번갈아 발표되는 주택시장 안정 대책은 주택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신호효과(signaling effects)를 준 데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키우고 참여를 유동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주택 부문 이외의 정책들도 주택시장을 자극하는 일이 많았다. 일종의 정책적 부조화가 진행된 것이다. 주식시장 등 주택 대체 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 및 기업규제 정책으로 일반 투자가의 관심을 부동산 시장으로 몰아붙이는 형국이었다. 최저임금인상 등 역효과가 많은 정책을 추진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하여, 그리고 경기 활성화 및 위기관리 등을 목적으로 유동성을 확대 공급하였는데 이러한 정책들은 부동산 시장의 심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전반적인 경기 부진 상황에서 유동성이 풍부해짐에 따라 수익률추구(search for yield) 현상이 촉발되었고 그 대상으로서 특수 지역의 부동산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서울의 일부 지역 주택 가격을 자극하는 사례가 연달아 발생하였다. 광역 교통망(GTX) 구축, 강남 일대의 새로운 개발 계획(GBC 건립과 MICE산업 구축 등)을 발표하였다. 화폐개혁 혹은 화폐단위 변경 등에 관한 논의나 대학입시에서 기준 변경 등도 서울 주택 가격의 대세적 상승을 지속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상을 종합하면 최근 서울 주택시장에서 대세적 상승기를 이어오게 된 것은 경제정책 전반의 부조화와 그로 인한 정책 불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수하게는 부동산 정책의 유효성에 대한 신뢰도가 극히 낮아진 것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일부 지역의 주택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를 불식시키지 못한 것이 대세 전환을 가져온 핵심 요인으로 생각된다.
◈ 요약 및 결론 ; 주택 경기 장기 변동 요인은?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시장 참가자들의 예상과 기대라고 생각된다. 예상과 기대라 함은 특정 요인 그 자체보다 그 요인에 대하여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초의 대규모 주택 공급은 주택 수요를 일시에 충족시킨 것이 아니라 미래 공급 기능성을 염두에 두고 가격 안정 기대가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경우 경제적 충격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종전의 가격 상승이 지나쳤다는 반성이나 경계심, 혹은 장기 침체로 주택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평가 등 참가자들의 판단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러한 심리적 경계심으로 주택 구입을 촉진하는 어떤 유인책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한편 주택시장에서의 기대가 변동하는 데에는 주택시장 여건이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일차적으로는 수급 사정이 중요한데 특히 공급 사정이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주택 공급의 비탄력성으로 인하여 과잉 공급과 공급 부족 현상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한편 수요 측면에서는 거시경제 여건과 유동성 사정, 특히 유동성의 구성 내역 등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세시장의 상황이나 전세가격/매매가격비율 등도 주택시장의 대세적 변환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3)
※주3) 주택가격과 유동성의 관계,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상세히 분석해볼 계획이다.
경제 구조의 변화에도 주목하여야 하겠다. 예를 들면 외환위기 직후 유동성 공급 패턴과 금융부문의 성격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이로 인하여 주택시장은 종전에 비해 훨씬 쉽게 금융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금융부문의 변화가 주택시장이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초이노믹스’가 최근의 대세 상승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판단하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전반적 신뢰도가 중요한 요인이 된다. 특히 주택 가격 상승기의 가격 안정 정책들이 지니는 모순으로 의도와는 달리 가격 상승을 촉발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그리고 여타 부문의 정책, 경제정책 이외에도 사회 교육 정책 등에서도 부동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영향을 미치는 여부를 세심히 살펴야 할지도 모르겠다.
부동산 경기의 진폭이 확대되고 장기화되는 것은 시장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총체적인 정책 난맥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수요 공급에 국한하여서는 안 된다. 사실 역대 정부 모두 이러한 관점을 적용하지 못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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