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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의 사이버보안 이야기 <40> 디지털 사회, 신뢰의 위기와 개인정보보호 인프라의 필요성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5월05일 17시01분
  • 최종수정 2025년05월04일 11시29분

작성자

  • 이준호
  • 시그넷파트너스(주) 부사장,제주특별자치도 정책자문위원,서강대 겸임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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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디지털 편리함 이면의 신뢰 균열과 개인정보 유출 불안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로 은행 업무부터 대중교통 이용, 친구와의 소통까지 해결한다.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이 디지털 기술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함은 극대화되었다. 그러나 이 편리함의 이면에서 디지털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 각종 서비스 장애나 개인정보 유출 소식이 들릴 때마다 사용자들은 불안을 느낀다. 실제로 최근 한 이동통신사의 해킹 사건 이후 수많은 이용자가 자신의 유심(USIM)을 서둘러 교체하려고 몰렸다. 디지털 일상이 익숙해진 만큼, “내 정보는 안전한가?”라는 의문과 불안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과 사회에 돌아온다. 소셜미디어나 메신저에 장애가 생기면 소통이 끊기고, 전자결제 시스템 오류 시 경제 활동이 마비된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는 이용자들로 하여금 서비스를 꺼리게 만들고, 이는 결국 디지털 경제의 활성화를 저해한다. 다시 말해 디지털 신뢰는 편리함을 넘어 디지털 사회가 지속되기 위한 토대이며, 이 토대가 균열될 때 우리 일상의 안정도 위협받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제 개인정보보호를 단순한 규제가 아닌 ‘디지털 사회의 필수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

65044f78156f02013eeee090d20ef4d8_1746325< Trust is Built Below the Surface – 자체제작(챗GPT4o)>


반복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현황과 구조적 원인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크고 작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반복적으로 겪어왔다. 2014년에는 카드사 세 곳에서 무려 2천만 명의 고객 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한 신용정보회사 직원이 내부 정보를 무단으로 빼내어 판매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2011년에는 국내 소셜미디어인 싸이월드 이용자 3천5백만 명의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털렸고, 같은 해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 이용자 1천3백만 명의 정보도 유출됐다. 2012년에는 통신사 해킹으로 870만 명의 가입자 정보가 새어나가는 등, 대기업부터 게임사, 통신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고객 정보 유출이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사고가 반복된 데에는 몇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있다. 첫째, 기업들이 방대한 개인정보를 수집·보관하면서도 보안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2014년 카드사 사건의 경우를 보면, 파견 직원이 USB로 수억 건의 고객 정보를 복사해 갈 정도로 내부 통제가 부실했다. 둘째, 개인정보보호를 ‘규제’로 인식해 서류상 절차에 집중하고 실질적인 보호 조치는 미흡했던 경향이 있다. 이용자 동의를 받는 형식적인 절차는 갖추었지만, 정작 데이터 암호화나 접근 권한 관리 같은 기본 안전장치는 부족했던 것이다. 셋째, 사고가 나도 처벌이나 제재 수준이 낮아 기업 입장에서 개인정보보호가 최우선 과제가 되기 어려웠다. 과거에는 대규모 유출이 발생해도 과징금이나 몇 명의 문책으로 마무리되곤 했고, 이는 근본적인 개선보다는 소나기만 피하자는 식의 대응을 낳았다. 마지막으로, 데이터가 소수의 중앙 서버에 집중되는 구조적 취약성도 지적된다. 한 곳의 보안이 뚫리면 수십만~수천만 명의 정보가 한꺼번에 유출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사고 한 번이 곧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뢰 붕괴를 보여준 주요 사건들: SKT 유심 유출, 카카오 대형 장애, 행정망 마비

 

반복되는 사고 중에서도 일부 사건들은 디지털 신뢰 붕괴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표적으로 최근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 사건은 사상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불린다. 2025년 4월 SK텔레콤 내부망이 악성코드에 뚫리면서 최대 2,300만 명 가입자의 유심 관련 정보가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유심 칩에는 가입자의 식별정보와 인증키 등이 들어있는데, 만약 해커가 이를 이용해 유심을 복제할 경우 문자메시지 가로채기나 금융인증 탈취가 가능해진다. 소식이 알려지자 이용자들은 큰 불안에 떨었고, SK텔레콤은 부랴부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료 유심 교체를 실시했다. 전국 대리점에서 유심 칩 재고가 동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며, 실제로 사건 직후 “유심 재고 없음”을 알리는 공지가 매장 앞에 붙을 정도로 혼란이 컸다. 회사 측은 전례 없는 대규모 해킹에 책임을 지겠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이미 신뢰에 큰 상처를 입은 후였다. 투자자들 역시 불안해하며 SK텔레콤 주가가 한때 8% 넘게 급락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 사고가 기업 평판과 국민 신뢰, 나아가 경제적 영향까지 미치는 예를 보여준다.

 

두 번째 사례는 2022년 10월 발생한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이다. 카카오는 국민 대부분이 사용하는 메신저(카카오톡)부터 결제, 택시, 음악, 게임까지 아우르는 생활 플랫폼이다. 2022년 당시 카카오톡의 국내 활성 이용자는 4,700만 명에 달해 사실상 전 국민의 필수 소통 수단이었다. 그런데 성남시 판교에 있는 SK C&C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이곳에 입주해 있던 카카오와 네이버의 서버 상당수가 정지되었다. 그 결과 토요일 오후부터 카카오톡을 비롯한 카카오의 주요 서비스들이 순식간에 먹통이 되었고, 최대 127시간(약 5일) 동안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졌다. 그 여파로 소셜미디어에는 “카카오톡 없이는 약속도 못 잡는다”는 농담 섞인 푸념이 나왔지만, 현실은 농담이 아니었다. 카카오톡으로 주문을 받고 결제를 처리하던 자영업자들은 영업에 차질을 빚었고, 카카오T로 콜을 받던 택시 기사들은 승객을 놓쳤다. 나아가 은행 인증서나 공공기관 로그인에 카카오 서비스를 연계했던 수많은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국민 생활 전반이 마비된 초유의 사태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카카오가 국가 기반 인프라 수준이 됐다면, 국민을 위해 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한 민간 기업의 서비스 장애가 국가적 위기로 인식된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디지털 서비스의 집중 의존 위험을 일깨우며, 한편으로는 민간 디지털 플랫폼을 공공 인프라로 간주해야 한다는 논의를 촉발했다. 이후 카카오는 이러한 장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자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등 기술적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남긴 신뢰 상실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65044f78156f02013eeee090d20ef4d8_1746324< When Privacy Breaks, Everything Shakes – 자체제작(챗GPT4o)>

 

마지막으로, 2023년 말 발생한 정부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는 디지털 신뢰 위기가 비단 민간기업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줬다. 2023년 11월 17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행정기관을 연결하는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이 갑작스런 장애를 보이더니 완전히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동사무소·주민센터 등의 창구에서는 주민등록등본 발급 같은 기본 행정서비스조차 중단되어 국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정부는 “정부24” 온라인 민원 서비스로 업무를 보라고 안내했지만, 당일 오후에는 그 정부24마저 먹통이 되며 행정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밤새 복구 작업을 벌여 이튿날 일부 서비스는 돌아왔으나 완전 정상화 선언까지 3일이 걸렸고, 정작 왜 이런 장애가 촉발됐는지는 즉시 밝히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이후였다. 불과 며칠 만인 11월 22일에는 주민등록시스템에 또 장애가 발생했고, 다음 날에는 국가 종합 전자조달 시스템(나라장터)이 1시간 넘게 다운되어 국가 입찰 업무가 마비되었다. 이어서 24일에는 모바일 운전면허증 등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까지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일주일 새 정부가 관리하는 주요 전산망에서 4건의 연쇄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국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이제 문제 없다”고 장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장애가 재발하면서, 디지털 행정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세계 최고 수준 전자정부’라 홍보해온 명성에 큰 오점이 남은 것은 물론이다 이번 사태는 디지털 정부의 기반 시스템 역시 민간 못지않게 취약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행정전산망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공공 시스템이 멈춘다면 그것 자체로 사회적 재난임을 모두가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실제로 정부도 사고 후 비판을 받아들여 관련 법령을 손봐 향후 이러한 전산망 마비를 ‘사회재난’으로 분류해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통제와 사후대응에 치중한 기존 대응의 한계

 

그동안 한국의 개인정보보호 및 디지털 안전 정책은 주로 통제와 사후대응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개인정보 수집·이용 단계에서 각종 규제로 통제하고, 사고가 터지면 사후에 처벌하거나 보상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한계가 뚜렷하다. 우선 사전 예방보다는 사후 약방문 격의 대응이 반복되면서, 사고를 근본적으로 막지 못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 사건에서도, 회사는 사고 발생 나흘이 지나서야 대국민 사과와 유심 교체 등 대책을 내놓았다 법 규정상 24시간 이내에 당국에 보고하도록 돼 있음에도 40시간 넘게 늑장 신고하여 법을 어겼고, 정작 이용자 개개인에게 구체적인 안내가 이뤄진 것은 사건 발생 일주일 뒤였다. 이런 늑장 대응은 초기 통제에 급급하고 정작 피해 최소화 조치는 뒤따르지 못한 것이다.

 

또한 기존에는 개인정보보호를 ‘규제 준수’ 정도로 여겨 형식적 통제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서비스 이용 시 수십 장에 달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서를 받지만, 이는 이용자 입장에선 사실상 읽기 어려운 약관일 뿐이고 기업 입장에서도 면피용 서류에 불과했다. 정작 실질적인 보호 조치, 예를 들어 중요 정보 암호화, 접근기록 상시 모니터링, 이상징후 탐지 시스템에는 투자나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다 사고가 나면 그제야 과징금 부과, 재발방지 대책 요구 등 사후적 처벌과 통제가 이뤄졌지만, 이미 국민 신뢰는 실추되고 피해는 발생한 뒤였다. 이러한 사후처벌 중심의 구조에서는 기업이나 기관이 능동적으로 보안 수준을 높이는 동인이 약하다. 통제 일변도의 정책은 오히려 조직들이 혁신적인 보호 투자를 하기보다는 최소한의 기준만 맞추려는 소극적 태도를 부추길 수 있다.

 

정부 대응 역시 마찬가지 한계를 보여주었다. 행정전산망 마비 당시 초기에 혼란이 컸던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이를 심각한 디지털 재난으로 즉각 인식하지 못한 점에 있다. 정전이나 화재 같은 전통적 재난과 달리, 디지털 시스템 장애에 대해서는 초기 대응이 미흡하여 재난 문자를 보내지 않는 등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여론의 질타를 받고 나서야 뒤늦게 대응 수위를 높이고 제도를 손질하는 등 뒷북 행정이 되었다. 요컨대 현재의 통제·사후대응 중심 프레임으로는 복잡다단한 디지털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고,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를 사회 인프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 (해외 사례: GDPR 등)


이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개인정보보호를 사회 인프라로 인식한다는 것은, 데이터를 지키는 일이 도로·전기·수도 같은 기본 인프라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중요도를 지닌다는 뜻이다. 단순히 규제를 준수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개념이다. 왜 이러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가? 앞서 살펴본 사건들이 보여주듯, 디지털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 전체가 흔들린다. 전 국민이 쓰는 메신저가 멈추거나 행정 서비스가 마비되면 그 피해는 개인 불편을 넘어 국가 경제와 안전에 직결된다. 현대 사회에서 데이터와 디지털 서비스는 혈액과도 같아서, 유출되거나 흐름이 막히면 사회라는 생명체가 병든다. 따라서 개인정보보호와 디지털 시스템의 안정성을 사회의 기반 구조로 격상해 바라봐야, 비로소 “디지털 사회의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할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이러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유럽연합(EU)은 일찍이 개인정보보호를 개인의 기본권으로 격상시켰다. 2018년 시행된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은 “개인정보 처리에 있어 자연인의 보호는 기본권”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시 전 세계 매출의 4% 또는 2천만 유로 중 더 큰 금액까지 부과할 수 있는 강력한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전 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GDPR 준수를 위해 수억 달러를 투자하고 조직을 정비한 것은, 개인정보보호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며 기업 생존을 좌우할 인프라적 요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GDPR 도입 이후 유럽에서는 기업의 개인정보 관리체계에 프라이버시 보호 설계(Privacy by Design)가 뿌리내리고, 이용자들도 자신의 정보 권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 이처럼 강력한 법제는 개인정보보호를 사회 전반의 문화와 구조로 정착시키는 기반이 된다.

 

다른 나라들도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통합법은 없지만 금융·의료 등 민감 정보 분야별로 엄격한 보안 요건을 부과하고, 주요 IT 기업과 통신망을 국가 핵심 인프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인도 역시 2023년 디지털 개인정보보호법을 통과시켜 데이터 보호를 강화하고, 정부 주도의 디지털 공공 인프라 전략을 추진 중이다. 에스토니아처럼 행정 서비스를 99%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나라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분산 데이터베이스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보안과 무결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은 모두 한 가지 방향을 가리킨다. 개인정보와 디지털 시스템의 보호가 사회 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인프라 요소라는 인식이다. 우리도 더 이상 개인정보보호를 비용이나 규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신뢰를 떠받치는 사회적 자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65044f78156f02013eeee090d20ef4d8_1746324< Build Privacy Like We Build Cities – 자체제작(챗GPT4o)>


디지털 신뢰 회복을 위한 법·기술·거버넌스·시민 인식 통합 전략


그렇다면 개인정보보호를 사회 인프라로 전환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는 법·기술·거버넌스·시민 인식 등 전방위에 걸친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 어느 하나만 잘해서는 디지털 신뢰를 온전히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은 분야별로 연계하여 추진해야 할 핵심 방안들이다.

 

 ​  법·제도 측면: 우선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체계를 정비하고 강화해야 한다. 현재의 「개인정보보호법」을 비롯한 법률들을 선진화하여 사전 예방 중심의 규율로 바꿀 필요가 있다.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 경영진에 대한 징벌적 책임을 묻거나, 집단소송제를 통해 피해 구제를 용이하게 하는 등 강력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카카오 사태나 행정망 마비 사례에서 보듯, 민간 핵심 플랫폼이나 공공 IT 시스템을 국가 중요 기반시설로 지정해 관리·감독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이러한 시스템 운영자들에게 상시적인 보안 점검, 이중화 투자, 비상 대응계획 수립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이다. 더불어 정부는 디지털 재난에 대비한 법적 대응 프레임워크를 갖추어, 행정망 장애 같은 사태 시 신속히 범정부 차원의 비상대응을 발동할 수 있어야 한다. 법과 제도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때, 비로소 개인정보보호 인프라 구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 기술 투자 측면: 기술적 방어력 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와 혁신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최신 보안 기술을 도입하고 지속적으로 시스템 취약점을 점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구간 데이터 암호화, 다중 인증 체계, AI 기반 이상거래 탐지 등의 기술을 적극 활용해 해킹이나 내부유출 시도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 주요 서비스 인프라는 이중화·분산화를 통해 한 곳의 장애가 전체로 번지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카카오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후 자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이중 백업체계를 강화했듯이, 모든 핵심 플랫폼 사업자들이 재해복구 시스템(Disaster Recovery)을 갖추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 역시 공공 시스템에 대해서 노후 장비 교체, 네트워크 다중 경로 확보 등 예방 정비 투자를 늘려야 한다. 아울러 첨단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PET), 예컨대 Differential Privacy나 동형암호와 같은 기술 연구개발을 지원해 데이터 활용과 보호의 균형을 찾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기술은 위협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뢰 확보의 열쇠이기도 하다. 선제적인 기술 투자 없이는 어떠한 규제나 거버넌스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 거버넌스 측면: 개인정보보호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공공과 민간이 함께 움직이는 거버넌스 체계 확립이 필수적이다. 우선 국가 차원에서 사이버 보안과 개인정보보호를 총괄 조정하는 컨트롤타워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과기정통부, KISA(인터넷진흥원) 등으로 나뉜 역할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대형 사고 시에는 곧바로 범정부 대응팀이 가동되도록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주요 기업들과의 공동 대응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정보공유를 활성화해야 한다. 거버넌스에는 민간 전문가와 시민사회 참여도 중요하다. 개인정보보호 정책 수립 과정에 각계 전문가와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멀티스테이크홀더 협의체를 두어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의 정책이 현장에 맞지 않거나 기업의 책임 회피로 흐르는 것을 견제하고, 견제와 균형 속에 모두가 신뢰하는 거버넌스를 형성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 공조 역시 고려해야 한다. 개인정보는 국경을 넘나드는 만큼,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거버넌스를 마련하고 해외 기관들과 협력하여 사이버 범죄나 국제 해킹에 공동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투명하고 참여적인 거버넌스는 사회 전반에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책임의식을 불어넣고 신뢰 문화를 정착시키는 기반이 될 것이다.

 

▶ 시민 인식 측면: 아무리 법과 기술을 갖춰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식과 참여 없이는 완전한 신뢰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 디지털 시대의 시민들은 편리함의 이면에 존재하는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교육계가 나서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에 개인정보보호 내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학교 교육부터 성인 대상 캠페인까지, 비밀번호 관리 요령, 피싱 식별법, 프라이버시 설정 방법 등 실생활에 밀접한 내용으로 시민들의 보안 역량을 높여야 한다. 언론과 미디어를 통한 지속적인 사례 소개와 경각심 고취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대규모 해킹 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 예방법을 상세히 안내하거나,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제공하는 식의 공익 홍보를 활성화해야 한다. 한편으로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도 변화의 추동력이 된다. “내 정보는 내 권리”라는 인식 아래 기업과 정부에 더 강한 보호를 요구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집단적으로 대응해 책임을 묻는 시민사회 활동이 커질수록, 정책 입안자와 기업은 더욱 긴장하고 노력하게 된다. 다행히 한국 시민들의 인식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앞서 SK텔레콤 사건 당시 1990백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며칠 새 유심 보안서비스에 가입한 것은, 위험을 인지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보호 조치에 동참한 좋은 사례다. 이러한 긍정적 움직임을 이어가기 위해, 정부는 피해 발생 시 신속한 정보 공개와 대응 안내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기업은 고객과의 신뢰 약속을 최우선 경영원칙으로 삼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궁극적으로 시민이 깨어있는 사회야말로 개인정보보호 인프라의 가장 견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결론: 디지털 신뢰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 이제 행동해야 할 때


오늘날 디지털 신뢰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 차원을 넘어 사회 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와 디지털 인프라의 안정성 없이는 전자상거래도, 온라인 행정도, 스마트시티도 그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더 늦기 전에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개인정보보호를 디지털 사회의 필수 인프라로 인식하고, 이를 구축하기 위한 법·기술·거버넌스·시민의식을 통합적으로 강화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다행히도 변화의 조짐은 보이고 있다. 정부는 행정망 사고를 계기로 디지털 재난 대응체계를 손보고 있고, 주요 기업들도 보안 예산을 늘리며 자체 혁신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제도 선언이나 계획 발표만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이 글에서 제언한 대로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디지털 사회를 지탱하는 신뢰의 둑을 탄탄히 보강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개인정보보호는 모든 시민을 위한 안전망이자, 국가와 기업의 책임 인프라다. 그것은 곧 자유롭고 활력 있는 디지털 사회를 가능케 하는 보이지 않는 기반이다. 이제 우리는 신뢰라는 인프라를 세우고 지키는 일에 모두 함께 나서야 한다. 디지털 신뢰는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명심하고, 한걸음씩 실천해 나갈 때 우리의 디지털 일상은 비로소 안심하고 딛고 설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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