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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의 벽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3월27일 20시3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38분

작성자

  • 김낙회
  • 서강대 초빙교수, 前제일기획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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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의 벽

 

 

  얼마 전 TV방송에서 뉴스를 보다가 차별 냉대에 시달리고 눈물짓는 탈북민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탈북민들의 네 명중 한 명이 차별과 무시를 당했다는 것이다. 최근 남북 하나재단에서 탈북자 18,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응답자가 절반을 넘는 53%였고, 심지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이 21%나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자살률도 일반국민의 3배나 된다고 한다. 식당 종업원을 쓸 때 조선족은 되고 탈북자는 안  된다는 세상, 북한 사투리가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에 비해 더 심한 차별 받는 세태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3만여 명의 탈북민이 남한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 북한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동포도 포용을 못하면서 어떻게 통일 대박의 꿈을 이룰 것인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시선은 또 어떤가?

실제로 결혼 이민자와 2세들 절반 가까이가 차별 경험을 호소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결혼 이주민과 그 아들딸들이 단지 얼굴 색깔이 다르고 언어가 어눌하다는 이유로 편견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결혼하는 10쌍 중 1쌍은 국제결혼을 하고 다문화 가정의 초 중고 학생수만 해도 7만 명이 넘는 우리의 현실을 놓고 보면 그 심각성은 더욱 크다 하겠다.

 

  그러면 정말 우리나라 국민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가? 만일 배타적이라면 그것은 어디서 유래 되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평상시에도 ‘우리’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쓰고 있다. 우리 마누라, 우리 집, 우리 회사, 우리나라, 우리 민족…. 이것은 농경 생활을 하면서 혈연과 지연으로 얽혀진 친족 마을 공동체에서 비롯된 집단 문화의 소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독재 정권과 냉전 이데올로기를 겪으면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에 길들여진 사고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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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세상에서 유태인과 화교가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손꼽히는 나라가 한국이다. LA, 샌프란시스코, 런던, 요코하마 등 세계 큰 도시에는 엄청난 규모의 차이나타운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그나마 서울 북창동 일대와 인천에 있었던 차이나타운도 70년대 외환 거래 규제, 거주 자격 심사 강화 등 각종 제도적 규제 때문에 화교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근에 다시 부산 인천 서울 등지에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니 그나마 다행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소위 텃세문화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독 한국이 인종에 대해 더 차별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미국 심슨 대학교 신은희 교수는 “한국 사람은 백인 중심국가에서 인종 차별을 당하면서도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백인 이상이다. 또한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도 대단히 강하다. 혼혈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거의 병적이다.”라고 지적한 것을 뒷받침하는 조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우리나라는 인종에 따라 고용 차별을 할 수 있다는 응답이 41%로 조사 대상국 전체 평균 19%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다인종, 다문화 시대에 들어와 있다. 외국인 상주인구가 16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를 넘고, 다양한 종류의 가정 형태가 늘어나면서 급속도로 다문화 사회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사회가 변하고 있는데 우리국민의 의식은 그대로 정지되어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탈북민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부정적 편견의 벽을 깨는 것이 시급하다. 우선 “다문화 가정”, “탈북민” 이라는 명칭부터가 듣기에 따라서는 거북스럽다. 그렇게 구분 짓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차별 같아서 말이다. 만일 우리가 일본 며느리, 혹은 미국사위를 얻으면 다문화 가족인가?  “탈북민”, “새터민”으로 편을 갈라놓으면 통일이 되면 또 무어라 부를 것인가? 그냥 우리 국민이고 한국인이다. 되도록 이런 용어는 쓰지 말 일이다. 꼭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를 위해서 담을 허물고 품에 껴안을 수 있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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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들과 탈북 청소년들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도 여러 기관에서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있지만 통합적이고 보다 강화된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탈북 청소년들의 경우 남북언어의 이질성 문제로 남한 말의 절반 정도만 이해한다고 한다.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들도 교과서를 제대로 읽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이 정규학교를 이탈하고 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차별과 집단 왕따, 소외감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이들 청소년을 위해 힘써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들이 커서 군대도 가야 되고 장차 경찰 공무원도 되고 국회의원도 될 것이며, 이들 역시 우리의 가족이고 우리의 국민이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대한민국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결국 오픈 마인드가 전제 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받아 들이는 지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는 자기 나이만큼의 나이를 먹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다고 한다. 바로 편견과 선입견이다. 약자에 대한 편견이나 특정 인종에 대한 멸시는 그 집단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에 기인한다. 탈북민, 다문화 가정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 겨레이고 우리 핏줄이지 않은가?

 

  편견과 고정 관념을 깨는 것이 곧 통일과 사회 통합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새 봄과 함께  마음을 활짝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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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3월27일 20시3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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