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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존재하는 한 규제개혁은 영원한 숙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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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11월23일 19시0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8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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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존재하는 한 규제개혁은 영원한 숙제다

 

  지난 11월 6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를 눈여겨보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몇 가지의 차이가 발견된다. 회의를 거듭할수록 규제를 인식하거나 다루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인증규제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동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중복 인증과 과잉 인증의 문제들을 수없이 제기했지만, 실제 개선된 것은 별로 없었다. 몇몇 사례를 들어 개선해 나가겠다고 공언하곤 그만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라 보인다. 중복되거나 유사한 인증규제 가운데 72개를 폐지하고, 77개 규제는 요건을 개선하겠다는 보고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부처가 만든 인증 수가 203개인데, 이 가운데 149개가 규제개혁의 대상이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똑같은 재질의 화장지를 50미터 롤과 70미터 롤을 각각 구분하여 별도의 인증을 받도록 했다는 대목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고,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목전에 앞둔 국가의 정부가 운영하는 규제라고는 도저히 믿기질 않는가. 우리 정부의 규제 수준이 이 정도이고 이만큼 규제개혁 수요가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면 규제개혁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필자가 눈여겨 본 것은 문제의 규제들을 발굴하기 위해 정부가 운영 중인 203개 인증 모두에 대해 일괄적으로 존치 필요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폐지할 것과 개선해 나갈 것을 추려낸 것은 의미가 있다. 몇몇 건의 사례를 들고 나와 규제개혁 하는 척하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던 과거와는 달라 보인 것이다. 

  진정 규제개혁에 나서려면 때로 개별접근 방식보다 일괄접근 방식이 더 효과적일 경우가 있다. 특히 진입규제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한데, 아직까지는 그런 시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MB 정부 시절에 전문 직종의 진입규제 개혁 작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를 보지 못하였다. 특정 직종만을 타깃으로 하여 개개 사안 별로 진입규제 개혁을 추진하면 시장에 이미 진입해 있는 기득권자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매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진입규제 전반에 대해 보편적인 원칙하에 예외를 두지 않고 포괄적 방식으로 접근하여 정밀점검(overhaul)을 실시하는 방안이 더 효과적이다. 단순한 규제개혁 차원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제고하고 새로운 시장경쟁 질서를 정립한다는 차원에서 진입규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만하다. 이를 위해서는 진입규제 전체를 대상으로 각각의 규제별로 공공성 명분과 경쟁체제 도입 가능성, 규제의 합목적성과 정책 우선순위 변화, 산업정책 및 경제상황 변화, 기득권 보호 여부 등을 재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융합 신산업의 창출을 위한 규제개혁에 이전보다 좀 더 능동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정부 부처간 협업이 조금씩 이루어지는 모습도 이제 시작단계이긴 하지만 고무적이다. 산업과 기술의 융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대에는 시장에서 창의성 및 자율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정부의 규제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술과 산업의 융합이 활성화되면 시장 외부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경쟁자들(Potential Competitors)의 입장에서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이전에 시장창출 자체가 차단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산업융합의 영역을 포괄적으로 관할하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시장의 경합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과 산업의 융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장에서는 단일 기술과 단일 산업이 지배하는 시장보다 시장경합성(Market Contestability) 개념이 더 유력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진입을 저해하는 진입규제의 개혁을 통해 융합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시장경합성을 높여 나가려면  진입규제의 전면적인 재정비, 현존하는 시장에서의 경쟁촉진 못지않게 잠재적인 시장진입 가능성을 제고하는 환경의 조성이 중요하다. 산업화 시절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입 과정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인터넷 검색엔진으로 정평이 난 구글이 무인자동차 사업에 뛰어드는 모습은 금석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구글은 또한 암세포를 찾아내는 알약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하니 조만간 의약업계에도 진출할 전망이다. 모두 다 검색의 힘을 십분 발휘한 융합능력의 성과로, 그 덕분에 업종 간에 설정된 전통적인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미국은 시장경합성이 높은 사회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규율되던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해 나가자는 접근 방식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회의에 눈여겨 볼 대목 가운데 또 하나는 제품과 서비스의 출시 단계부터 엄격하게 규제하는 사전규제 방식에서 벗어나 출시 이후 사후 관리를 철저하게 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제까지 우리 정부의 규제 방식이 사전 규제에 익숙한 탓에 보고 내용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시행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거듭되어 어느 정도 정착이 된다면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진일보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과거의 예를 보면,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여객선의 운용 시한(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준 탓이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철저한 선박유지관리와 선원의 안전교육 등과 같은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참사라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또다시 논의된 푸드 트럭의 경우에도 이를 허가해주느냐 마느냐의 문제 못지않게 허가받은 푸드 트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푸드 트럭이 식당보다 위생적이거나 최소한 식당만큼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공익법무법인 정의연구소(the Institute for Justice)가 보스턴, 라스베이거스,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시애틀, 워싱턴DC, 루이빌 등 7개 도시에서 작성된 식품검사보고서 26만 건을 살핀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처럼 네거티브 시스템을 채택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시장진입을 자유롭게 허용하되 시장에서의 사후감독이 철저하다. 이를 위해 상당한 수준의 행정력이 추가로 뒷받침되고, 이에 따른 추가비용도 당연히 지출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규제를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한다. 규제는 단순한 암 덩어리가 아니다. 단칼에 도려내면 그만인 것도 아니고, 그렇게 도려낼 수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규제단두대론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냥 내려칠 수도 없는 일이다. 규제 마다 설정 당시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도 있고, 논리적인 배경이 깔려있기도 하다. 규제자들의 신념과 확신이 반영된 규제는 정책을 구현하는 수단이다. 이러한 속성을 지닌 규제들을 개혁해 나가려면 그냥 채근만 한다고 개혁이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규제자들을 설득을 해 나가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고, 상황이 바뀌었고,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부단하게 논리적으로 설득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집권 3년차를 맞는 박근혜 정부가 네 차례에 걸쳐 대규모 규제개혁 회의를 개최하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논조로 토의가 이루어진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에서도 암덩어리니 규제단두대니 하는 용어는 없었다. 그 대신 ‘규제는 잡초같이 내버려두면 무성하게 계속 자라나는 것’이라거나, 규제개혁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되겠느냐’ 하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비로소 규제당국과 정부규제의 속성을 파악한 게 아닌가 하는 점에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규제개혁은 몇 차례의 이벤트성 행사를 통하거나 강력한 경고를 통해서 성사될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정부가 존속하는 한 규제는 필수적이고, 따라서 규제개혁 작업도 영원히 뒤따라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규제개혁 그 자체보다 규제에 대한 인식, 규제개혁의 과정과 접근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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