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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대통령선거가 외교정책 혁신 기회를 제공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5월07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5월04일 16시57분

작성자

  • 이현주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주오사카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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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당한 윤석열 대통령을 최종 파면함으로써 오는 6월 3일 3년만에 21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1987년 민주화 이래 5년마다 치러지는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외교안보정책에 관한 국가의 최고기밀이 줄줄 새고 전문가들이 줄서기 하는 시기다.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은 경선토론에서 외교공약이라는 형태로 국가안보에 관한 민감한 기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누설한다. 전략핵무기에 관한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의 개념도 무시하며 핵무장 여부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논쟁한다. 후보나 당선자의 외교공약은 곧 다음 정부의 외교정책과 전략을 공개하는 것이다. 미국이라면 대통령 후보나 당선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장래의 참모들이 공개되어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순응하려는 경쟁을 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후보자들이 미리 밝히는 생각은 주변 강대국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다. 또한 외교분야의 학자들이 각 정치진영에 떼지어 줄서는 것도 일반화되었다. 이제는 외교관료들도 줄서기에 나섰다. 미국과 일본, 중국에 대한 정책도 덩달아 친·반으로 양분되어 있으니 50% 성공확률의 줄서기는 가성비도 꽤 괜찮아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조기 대선은 외교안보 분야에 관한 한 행운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 트럼프를 상대할 수 있는 대통령이 없으니 오히려 트럼프가 몰아치는 폭풍을 우선 피하고 일본 등 여타 국가의 대미협상을 참고할 수 있었다. 또한 대통령선거운동 기간도 짧아서 장래의 외교안보정책에 관한 기밀을 누출할만큼의 토론 기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신 정부가 한국의 외교전략을 ‘조용히’ 갱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우선 각 진영의 후보들이 당선 후 외교안보 분야에서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인 절차와 검증과정을 거쳐서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선언이라도 하면 좋겠다. 그것은 국민통합이라는 공약에도 부합한다. 정치권 줄 서기가 계속된다면 한국의 외교전문생태계는 3류 수준으로 추락할 것이다.  

신 정부는 한국의 외교안보의 내부적 기반을 우선 다져야 한다. 
어느 나라나 국내정치의 안정이 외교의 기반이다. 그래서 강대국의 정치지도자들도 국가의 역량을 통합하는 “총체적인(holistic) 외교·안보전략”을 강조한다. 특히 강대국도 아니고 민족의 분단상태에도 대처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외교기반은 결국은 국내의 결속과 외교기술의 전문성뿐이다. 이러한 외교기반이 있어야 신 냉전 시대에 안전한 공급망체인을 확보하는 경제안보외교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EU 등 주요국에 대한 외교와 대북한정책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다.

따라서 우선 첫 번째,외교안보정책에 관한 국민의 통합적지지(컨센서스)를 확보하는 것이 한국외교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마치 병장기를 정비하고 군량미를 비축하여 전쟁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과 같다. 신 정부가 임기 초기에 우선적으로 제1 야당과 외교·안보 문제를 협의하는 공식 채널을 수립해야 해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 한국의 ‘가치외교’란 우리의 헌법적 가치에 입각하여 보편적 가치와 법치를 존중하고 지키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우리의 헌법적 가치를 타국에게 강요하지는 않지만(어차피 강요할 능력이 없으므로), 다만 UN 등 국제사회의 집단적 조치에는 참여한다. 여야는 최소한 자유민주주의, 인권존중, 법치와 같은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외교원칙은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대통령의 역사적 권위를 확립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과거 역사에서 지배 권력이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것’을 사죄하고, 앞으로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정치적 선언이 필요조건이다. 8.15 광복절이나 3.1절 기념사는 좋은 기회다. 그것은 대일외교에서 도덕적 우위를 선점하고 국내의 대응기반을 강화는 길이기도 하다. 

네 번째, 대북정책에서는 북한 김정은이 선언한 ‘남·북이 서로 다른 국가’라는 관점을 잘 활용할 수 있다. 같은 민족의 한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사실상 별개 국가라는 국제법상의 현실을 실용적으로 활용한다. 향후 헌법 개정 논의 때 과거 서독기본법처럼 통일에 관한 임시개념 같은 조항을 포함시켜 법과 현실을 일치시켜야 한다. 북한이 핵폐기 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핵 없는 한국과 협상할 리도 없으니 북핵문제는 우선 핵비확산조약(NPT) 프레임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NPT의 권능을 비판하고, 대책을 요구하여 국제핵안보 이슈로 만들 수도 있다. NPT상 ‘핵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핵비확산에 나서지 않는다면 NPT는 무용지물이다. 또한 북한의 핵에 대한 등가물(quid pro quo)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미국의 민간학계와 연계된 핵무장론이나 전술핵배치나 핵공유협정에 관한 한미간 물밑 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한국의 미사일 능력 등 방위력 증강은 중국이 북한핵을 보다 적극적으로 견제하도록 만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UN안보리제재체제에서 한국의 인도적 지원만은 예외로 하는 ‘민족면책권리(가칭)’를 확보하여 능동적인 대북전략공간을 확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다섯 번째, 대외 프로파간다를 적극 전개해야 한다. 외교 자체가 상징 조작이고, 프로파간다이다. 한국의 주장을 잘 설명하는 내러티브(서사)가 소홀하다. 공공외교 예산만 있고 내용은 없다. 그래서 역대 정부의 외교정책은 거창한 이름만 있고 그 내용 설명이 없어 흔적도 남지 않는다. 

마지막 여섯 번째로,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되는 외교관료와 관련 학자들을 육성하고 애국적인 외교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미국의 키신저’는 다른 약소국의 운명을 재단하지만 ‘한국의 키신저’는 한국 자신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외교는 애국하지 않으면 매국이 된다. 한국외교에 가장 절실한 것은 강대국들의 행태를 잘 읽고 대응하는 ‘애국적인’ 외교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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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5월07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5월04일 16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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