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플랫폼 패권 전쟁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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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한 목소리로 상생 외치지만 다른 속내를 가진 주요국
지난해 미국 정부는 구글이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와 통신사에 불법적으로 매년 수십억 달러를 지불하고 자사 검색엔진을 스마트폰에 선탑재하여 경쟁사들의 시장 진입을 차단했다는 이유로 반독점법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 달에는 애플이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폐쇄적인 생태계를 구축해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고 제품의 가격을 부풀렸으며,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개발자들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함으로써 잠재적 혁신 기업의 시장 진입을 차단했다는 이유로 반독점법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던 19세기 후반 석유, 철도 등 주요 산업의 소수 대자본가들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연합체를 결성하자, 미국 정부는 연합체에 의한 독과점 폐해를 최소화 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자 반독점법울 제정한다. 그리고 반독점법은 지난 백 수십 년간 시장의 혁신을 견인하며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되었다. 미국 정부는 반독점법을 통해 저물어가는 시대를 지배하는 기업에게는 제재를 가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기업에게는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기술의 진보가 견인하는 새로운 시대를 경쟁국에 앞서서 준비할 수 있었다.
최근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규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모순적이지만,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자국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애플도 구글도 1990년대 후반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던 MS가 미국 정부에 의해 반독접법 위반 협의로 피소되면서 생겨난 공백을 메워가며 성장했다. 인터넷이 상용화되던 시점에서, PC시대의 강자였던 MS에 대한 규제는 다가오는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게임에서 글로벌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선수를 교체하고자 했던 미국 정부의 포석이었을 지도 모른다. 최근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도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의 또다른 게임에서 글로벌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선수를 교체하고자 하는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EU와 중국도 최근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속내는 달라 보인다. EU는 역내에 경쟁력 있는 플랫폼 사업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의 빅테크 기업으로부터 시장을 지키고 공정한 거래를 통해 역내 소비자들의 편익을 보호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중국은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의 빅테크 기업으로부터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또한 정부의 지원 아래 성장한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정부의 통제 아래 두면서 체제를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표만을 의식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한국
최근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 대한 주요국의 제재가 이어지면서, 국내에서도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으로 사전 지정하고 자사 제품을 우대하는 행위와 문어발식 기업 합병 등을 규제하기 위해 입법 추진 중인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세계경제포럼은 2025년 전체 글로벌 기업 매출의 30%가 플랫폼 비즈니스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은 산업의 경계, 기업의 개념, 비즈니스 관행까지도 바꾸어 가면서 시장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견인하고 있다. 현재 논의 중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제의 방향성은 향후 국가 경제의 존망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지엽적인 시장의 목소리만을 반영해 단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의 갈등을 해결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관련 법제도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 초대되는 대부분 발제자는 관련 EU 법을 사례로 소개하면서 EU 법의 일부를 수정하고 보완해서 관련 법제도가 담아야 할 내용을 제시한다. 관련 부처의 공무원들도 EU 법을 관련 법 제정을 위한 중요한 자료로 삼고 있다. 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과 공무원들이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이 네거티브 규제 중심의 미국 법에는 사안별로 담겨 있지 않지만, 포지티브 규제 중심의 EU 법에는 자세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 있는 플랫폼 기업이 역내에 부재한 상황에서 미국 빅테크 기업들로부터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플랫폼 기업을 강하게 규제해야 하는 EU와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북한을 제외하면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빅테크 기업으로부터 자국 기업들이 자국 시장을 지켜내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의 출현을 기대하면서 EU의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제도를 벤치마킹하는 접근은 모순이다. 기업의 창의적 혁신에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플랫폼 경제의 새로운 틀을 제시해야
또한 디지털 플랫폼이 견인하는 새로운 시장의 틀을 마련하는 입법 과정에서 소비자의 관점을 배제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아마존이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지배력을 강화했음에도 지난해까지 반독점법 관련 소송을 피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소비자들에게 보다 많은 편익을 제공하기 위해 수익을 포기하고 투자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약탈적 가격 정책때문에 경쟁사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공급자들의 이윤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결국 반독점법 소송의 칼날을 아마존에 겨누었지만, 독점의 폐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시각은 소비자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타다금지법 이후 플랫폼 관련 국내 입법 사례를 살펴보면, 소비자의 후생은 입법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 플랫폼은 양면시장이다. 낮은 비용으로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면서 시장을 확대하려는 공급자의 욕구뿐만 아니라 하나의 접점을 통해 낮은 비용으로 맞춤식 제품과 서비스를 경험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도 균형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독점의 개념도 재정의해야 할 지 모른다. 플랫폼은 참여자 수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 효과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서너 개의 기업이 시장을 적절히 나누어 점유하는 전통적인 산업의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다. 즉 플랫폼의 특성 상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랫폼 기업들은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소비자 후생을 위한 막대한 투자를 이어간다. 애초에 독점적 이익에 대한 기대 없이는 불가능한 투자가 대부분이다. 결국, 플랫폼 기업들의 혁신은 결국 독점적 이익에 대한 기대에서 출발한다.
또한 이종 간의 융복합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플랫폼 시대의 특성 상 독점은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며, 독점적 기업도 잠재적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막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경계할 것은 독점 기업의 시장 지배력 그 자체가 아니라 독점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이다. 기업의 시장집중도를 규제하기 보다는 플랫폼 사업자와 참여자간의 불공정한 거래를 규제하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 간 경쟁이 국가 간 경쟁의 축소판이자 대리전이 된 상황 또한 독점 불가피론의 힘을 실어주고 있다. 초국가적 기업이 전 세계를 휘젓는 글로벌 시대에 압도적 토종 기업이 없으면 국내 시장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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