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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R의 공포’보다 ‘J의 공포’가 더 무서운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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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10월07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10월07일 14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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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실물경제동향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IHS Markit의 글로벌 제조업구매자지수(PMI)는 9월 5개월 연속 50이하(나쁨)를 지속함으로써 유럽 재정위기직후였던 2012년 이래 세계 제조업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 있음을 보여 주었다. 특히 유로존은 50이하를 8개월 지속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 경제 호전을 주도해 왔던 미국조차도 제조업 PMI(ISM)는 ‘09년 6월 이래 최저수준이며, 서비업 PMI는 ’16년 8월 이래 최저수준을 보이고 있다.

 즉 세계 제조업은 2012년 상황으로 악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의 악화가 서비스업으로 확산하여 동반 침체가 가속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세계 경제 양상은 2016년 하반기부터 미국 주도로 시작된 세계 경제 호전국면이 끝났으며, 이어서 경기후퇴(Recession) 국면이 오고 있음을 시사한다. 

 

돌이켜보면 2016년 하반기부터의 예상치 못한 경기 호전이 있기까지 세계 경제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거의 7년간 장기에 걸친 ‘대불황’의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다시 경기후퇴가 다가오는 오는 징후가 갈수록 강해짐에 따라 ‘R’의 공포를 주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목해야 할 일은 지난 8월부터 세계 주요 언론들이 ‘R의 공포’대신에 ‘J의 공포’또는 ‘Japanification’을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미국 장기국채 금리의 하락으로 역금리(adverse yield curve) 체계가 등장했다는 점에 있다. <그림 1>을 보면, 8월말 기준으로 2019년 수익률 곡선은 2018년 수익률 곡선과 완전히 다르다. 8월말 현재 미국 재무성 3개월 만기 금리는 30년 만기 장기국채 수익률과 같을 뿐만 아니라 10년 만기 국채수익률보다 0.5%포인트가 높았다. 통상적으로 이와 같이 단기 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은 역금리 체계가 나타나는 경우는 연준의 기준금리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탄력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양상이라는 점에서 이번의 경우는 의미가 다르다. 

 

<그림 1> 역(逆) 수익률곡선: 장기침체의 시그널인가?  (2019. 8.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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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금리 현상은 미국의 장기성장률에 대한 시장의 비관적인 전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경제의 심장박동을 상징한다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2018년 8월 2.9%(2.95~2.89)대에서 2019년 1.5%대로 하락했다는 미국의 장기성장률 전망이 대폭 악화되었음을 시사한다. 

 

  장기저성장은 경기후퇴와는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R의 공포’가 경기후퇴의 공포를 의미하는 반면에 ‘J의 공포’는 장기저성장에 대한 공포를 의미한다. ‘J의 공포’는 ‘Japanification’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이 장기 저성장과 장기 디플레이션 및 마이너스 금리의 경제구조로 이행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의미하는 것이다(<그림 2> 참조) 

 

<그림 2> ‘Japanification’ or Secular stag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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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FT, ‘Japanification: investors fear malaise is spreading   globally’, August 27, 2019.   

 

그렇다면 세계경제가 ‘Japanification’을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R의 공포’의 ‘recession’은 경기순환국면에서 경기후퇴를 의미한다. 반면에 ‘J’의 공포에서 ‘J’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구조적인 장기불황을 의미한다.

 

 세계 경제가 경기순환적인 경기후퇴 국면이 아니라 일본 경제가 겪었던 구조적인 장기불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정책대응 수단이 무력하다는 점이다. 세계 금융위기이후 선진국들의 주된 경기부양정책 수단은 금융완화(Quantative Easing) 정책이었다. EU와 일본은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를 2008년 12월 ‘0’ 수준에서 현재까지 인상한 바 없으므로, 금리정책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미국의 연준 기준금리는 1.75~2.0%에 있으므로 향후 최대 2% 포인트 낮출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연준이 대체로 4% 포인트의 금리 인하로 경기침체에 대응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과연 2% 포인트 금리인하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음으로 2016년 하반기부터 경기회복은 주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정책이 주도했다. 감세정책 결과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2018 회기년도 7,790억 달러(대GDP비율 3.9%), 2019 회기년도 9,600억 달러(대GDP 4.2%), 2020 회기년도 10,000억 달러(대GDP비율 4.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재정적자 규모가 급증함에 따라 대규모 감세나 재정지출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둘째,  1990년대 이래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 무역의 틀이었던 ‘세계화’(globalization)가 미·중 무역전쟁을 계기로 해체되고 있다.  미국 국민들이 관세전쟁에 피로감을 보이고 있어 금년 중에도 잠정적 타협(small deal)은 기대할 수 있으나, 미·중 무역전쟁은 패권 전쟁의 양상을 내포하고 있는 만큼 과거의 협력관계로 복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또한 미국 주도로 다자간 무역협약은 중단되고 양자 간 협약이 새로운 대세로 등장하고 있다. 

 

한편 국제정치측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경찰의 역할을 포기하고 미국의 국익위주의 세계 전략을 추진함에 따라 ‘Pax-Americana’시대가 끝나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대혼란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이란 간의 충돌이 세계 원유 공급망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으며, 북한은 ‘탄도대국’으로서 미국에 도전하고 있을 만큼 국제안보 질서는 극심한 혼란에 직면해 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는 현재 경제측면에서는 세계화의 해체, 국제정치측면에서는 ‘Pax-Americana’시대가 끝난 다음의 ‘틀’과 ‘질서’가 없는 혼란기의 와중에 있으며, 이 혼란이 얼마나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 지는 아직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IMF가 최근 산출한 국제 무역불확실성 지수에 따르면, 2018년 세계 무역불확실성지수는 과거 추세에 대비하여 10배 상승한 것으로 계산되었다(<그림 3> 참조). 이러한 세계 무역의 높은 불확실성 증대로 인하여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위축되고 있으며, 그 결과 세계 무역의 장기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WTO는 최근 세계 무역성장률을 2018년 3%에서 2019년 1.2%로, 2020년 2.7%로 전망한 바 있다. 

 

<그림 3> 세계 무역 불확실성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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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IMF, Blog, ‘New Index Tracks Trade Uncertainty Across the Globe’(September 9, 2019).

 

 셋째, 현재 세계 금융시장은 과잉부채와 증권시장 거품으로 연명하고 있어 세계 경제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중앙은행들의 금융완화 정책은 세계 금융시장에 장기 저금리시대를 가져 왔으며, 그 결과 부채는 급증했다. IIF에 따르면, 2019년 1분기 말 현재 세계 부채는 246.5조 달러로 세계 GDP의 320%에 달한다. 특히 신흥국들의 과다부채로 인한 금융위기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그림4 참조>

 

<그림 4> 세계 부채 추이: 저금리로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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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IF, ‘High and Rising Debt Levels: Should We worry? Global Debt Monitor Skidee DEck’, August 2019. 

 

한편 미국 증권시장은 금융완화의 지원으로 지난 11년간 장기상승국면을 이어 왔다. 다우지수는 2009년 1월에 대비하여 3.59배가 상승했으며, NASDAQ지수는 4.94배 상승했다. 미국 경제가 2020년 침체국면으로 진입할 경우에도 이 상승세가 지속될 수 있을까? 특히 경기 후퇴국면에서 거품이 안전하게 정리될 수 있을까? 큰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증권시장은 혈당치가 하락하면 언제든 당뇨발작이 발생할 수 있는 중증 당뇨환자와 같은 상태에 있어 언제든 ‘단기 발작’이 발생할 수 있으며(<그림 5> 참조), 그 불똥이 어떻게 튀느냐에 따라 세계 금융시장은 위기에 직면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은 세계 경제의 부양을 위한 정책수단의 선택을 제약하거나 효과를 약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림 5> ‘발작’이 잦아지는 미국 다우지수(DJ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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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세계 경제는 장기 구조적인 저성장 침체국면에 직면해 있다. WTO 자료에 따르면, 금년 1~7월간 세계 수출 10대국 중 한국의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8.9% 감소함으로써 가장 높은 감소율을 기록했다. 또한 주요국들 중에서 작년 말 대비 9월 말까지 주가상승률은 가장 낮고, 환율의 평가절하 폭은 가장 크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세계 무역 판도의 변화에 한국이 충격을 가장 크게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하여 ‘J의 공포’를 가장 두려워해야 할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더구나 이미 한국 경제에는 일본형 장기불황이 진행되고 있다고 할 만한 징후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는 ‘R의 공포’보다 ‘J의 공포’를 더 두려워 하지만, 한국은 ‘J의 공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국민 정서로는 ‘J’라면 ‘반일’ 또는 ‘극일(克日)’로 맞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분야에서도 과연 ‘극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R’이든 ‘J’이든 세계 경제에 길고 혹독한 겨울이 다가 오고 있음은 갈수록 분명해 보인다. 

 

이 세계 경제의 ‘긴 겨울’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21세기의 국가 명운이 달려 있다. 세계 경제와 국제정치의 대변혁기에 대한민국은 대내지향적 개혁정책에 몰입해 있다. 더구나 대내지향적 개혁정책의 추진을 둘러싸고 국론은 양분되어 진통을 겪고 있다. 

세계의 세기적인 격동기에 표류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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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9년10월07일 14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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