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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구도가 유발하는 서스펜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3월10일 20시00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대학 교수, 사회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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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 여당과 야당의 대결, 여당 내 친박과 비박의 대결, 야당 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대결, 같은 당 내 경쟁자들 간의 공천 대결 등, 모든 대결구도는 이를 바라보는 이에게 심리적으로 ‘서스펜스’를 유발시킨다. 서스펜스란 일종의 심리적 긴장 상태로, ‘조마조마함’을 뜻한다. 미디어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이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조마조마한 긴장 상태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싸움 구경’인 셈이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이런 상황을 사람들이 더 잘 ‘즐길’ 수 있도록 ‘관전 포인트’까지 제시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구도에서 선수가 되어 ‘대결하는’ 사람의 마음은 전쟁터에 끌려가는 병사들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살아 돌아오라’ 또는 ‘살아 돌아오겠다’ 등과 같은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선수들도 있다. 물론 이러한 대결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모두에게 칭송받는 영웅이 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중 제1국에서 이세돌의 패배가 확정되자, 인공지능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와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인공지능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 ‘대결구도’에서 사람들이 어떤 심리를 느끼는가를 중심으로 글을 전개해 보려 한다.


인간이 만든 기계와 인간의 대결: 동일시와 백중세

인간과 기계의 대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에게 동일시하여 인간이 이기기를 바란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팀과 관련자들,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직종의 종사자들은 상당수 이세돌보다 알파고와 더 동일시했을 것이고, 알파고의 첫 승리를 함께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일반인들 중에는 알파고보다 이세돌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 이세돌의 첫 패배를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이처럼 대결구도에서는 양자 중 어느 쪽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 대결을 지켜보는 내내 긴장하고 마음 졸이는 서스펜스를 경험한다. 이어 그 서스펜스가 끝난 직후 승리한 쪽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패배한 쪽은 아쉬운 탄식을 하며 후일을 기약한다.

실력이 비슷하여 백중세를 보이는 팀끼리의 대결은 더욱 강한 서스펜스를 유발시킨다. 대결의 결과가 너무 뻔하게 예상되는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서스펜스를 약하게 느껴, 그만큼 그 대결을 지켜보며 즐기는 정도도 약하다.

인간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인간의 한계 능력에까지 도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생각해 왔던 통찰과 직관까지 기계가 모방할 수 있는 단계에 진입한 지금, 흥분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이유다.


편 가르기에서 발언이 험해지는 이유: 강한 외부 공격과 내부 단결?

대결구도에서는 상대를 더 강하게 공격할수록 자기편의 지지가 더 공고해지는 경향이 있다. 즉, 상대를 더 강하게 몰아 부칠수록 자신과 동일시하는 쪽은 더 큰 통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특히 대결구도가 뚜렷해지는 선거와 같은 상황이 되면 상대편을 더 험한 발언으로 공격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처럼 상대를 강하게 공격할 때 자기편의 지지를 얻는 것은 정당성이 전제될 때에만 그렇다. 미디어심리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착한 주인공이 악당에게 당한 후 보복하는 스토리를 보았을 때, 도덕발달 단계상 더 낮은 단계인 ‘보복응징 단계’에 있는 어린이들은 착한 주인공의 보복 강도가 클수록 그 스토리를 더 즐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도덕발달 단계상 더 높은 단계인 ‘형평응보 단계’에 있는 어린이들은 착한 주인공이 악당에게 당한 정도만큼의 보복을 했을 때 그 스토리를 즐기는 정도가 가장 강했고, 보복이 지나칠 때는 그 스토리를 즐기는 정도가 감소했다. 설사 좋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한 행위에 비해 지나친 보복을 당하는 것으로 보이면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특히 선거와 같은 대결구도에서는 대중의 눈에 띄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지배하여, 심지어 노이즈마케팅까지 동원해서라도 인지도를 높이려 안간힘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노이즈는 잡음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시그널, 즉 의미 있는 신호를 던질 줄 아는 후보가 최종적으로 선택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스펜스 이후의 카타르시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서스펜스를 경험하며 진정 바라는 것은 지속적인 서스펜스가 아니라 통쾌하게 해결되는 카타르시스라는 사실이다.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특히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 느끼게 될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기 때문에 서스펜스를 감내하며 지켜보는 것이지, 이 서스펜스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것을 계속 즐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스펜스가 강할수록 이후의 카타르시스도 더 강하게 느낀다. 누가 이길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실력이 비슷한 백중세의 경기를 사람들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바둑 대결이든 선거 대결이든, 대결 국면이 아무쪼록 파괴적 방향이 아닌 건설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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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3월10일 2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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