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과 권력 비대칭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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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듯이 ‘미투 (#Me Too)’ 운동은 2017년 10월 미국의 영화계 거물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용기 있게 폭로한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를 소셜 미디어에 널리 알리며 유사한 경험들을 공유하기 위해 해시태그(#)를 붙이면서 더욱 확산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서지현 검사의 검찰 조직문화 내 성추행 폭로가 ‘미투’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 구조적 권력 비대칭
필자가 2015년 9월에 ‘갑질과 성희롱의 공통점’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갑질’은 권력이 있는 사람이 행하는 부당한 행동이고, 이것을 당하는 사람은 권력이 없는 ‘을’이다. 따라서 성희롱도 큰 범주의 ‘갑질’에 포함되며, 특히 성과 관련된 권력 비대칭형 부당행위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성희롱은 ‘갑질’과 유사한 점을 많이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권력 불평등을 ‘미투’ 운동의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로 본다면, 현재 권력 불평등이 성차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조직문화 안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간의 위력의 차이는 성별을 떠나 곳곳에 편재해 있다. 따라서 ‘미투’ 운동은 성별을 포함하여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운동으로 더욱 확대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미투’ 운동의 저변에는 다른 영역의 권력 불평등이 아닌, 성별 권력 불평등이 뿌리 깊은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지난 몇십 년 간 크게 변화해 남녀평등의식도 눈에 띄게 상승했고 권위주의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리천장 지수’로 본 ‘일하는 한국 여성’의 지위는 OECD 국가들 중 단연 꼴찌다(그림 참조). 유리천장 지수(glass-ceiling index)는 여성 관리직 비율과 남녀 소득 격차를 포함한 10개 항목으로 측정한 것이다. 물론 유리천장 지수가 한국보다 더 나은 나라들에서도 성희롱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남녀 간 권력 불평등이 심할수록 권력형 성폭력이 발생할 확률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 억눌렸던 목소리의 분출
‘나도 당했다’는 뜻을 지닌 ‘미투 (#Me Too)’ 운동의 본질을 논의할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것이 권력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 즉 ‘억눌렸던 커뮤니케이션의 분출’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수면 아래에 있던 권력 불평등에 대한 목소리가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미투’ 운동의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권력이 없던 ‘을’의 입장에서 본인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해 보았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피해자만 더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묻혀 있었다. 그러다가 비로소 ‘침묵을 깨뜨린’ 소수의 촉발로 인해 가해자인 ‘갑’과 이를 용인하는 사회를 향해 평소에는 하기 힘들었던 말을 이제야 비로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여성들을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이라 칭하며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도 이처럼 ‘수면 아래에 있어 조용했던’ 권력 불평등에 대한 목소리가 이제 들리기 시작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한국 속담에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지금도 유효할까? 상황에 따라 유효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투’ 운동에는 이러한 속담이 맞지 않는다. 침묵만으로는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교 문화권의 전통이 아직 남아 있는 한국 사회에서 특히 여성은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을 비롯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든지 심지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의 명시적 또는 암묵적인 사회적 압력을 받아 왔다. 이로 인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여성들의 목소리는 수면 아래에 잠겨있었다.
오랜 커뮤니케이션의 억눌림을 뚫고 한 사람이 침묵을 깨면 그 다음 사람이 이어 발언하기는 조금 더 쉬워진다. 만장일치의 분위기에서 아무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으면, 선뜻 가장 먼저 반대 의견을 내기란 무척 어렵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반대 의견을 내면, 마음속으로 반대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
민주적 소통이 정착되고 건전한 조직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소통의 물꼬를 막아서는 안 된다. 물론 모든 소통에는 진실이 담겨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며, 그 어느 누구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압력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며 더 밝은 사회,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 정파적 대립이나 성별 대결로 폄하되어선 안돼
‘미투 (#Me Too)’ 운동이 정파적 대립으로 변질되거나 성별 대결로 폄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구조적 권력 비대칭을 수정해 가고 억눌리는 목소리가 없도록 배려함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동등한 주체로서 여성과 약자의 인권 존중을 바탕으로 건전한 조직문화와 민주적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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