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法治)규범 훼손으로 난세를 조장(助長)하는 정치 지도자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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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는 청교도 정신으로 건국되었다.
다양한 나라들에서 온 이민자들이 모여 꿈을 이룬 신천지였다. 다양한 인종들이 하나의 규범을 준수했기에 이 나라는 번영했고, 자유가 표출하는 혼란 속에서도 이 나라의 사회질서는 유지되어 왔다.
그것은 법치(法治)라는, 국가 구성원들이 존중하고 준수하는 사회적 규범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라는 정치인이 이런 사회적 규범을 흔들고 있다.
그는 금년 1월 성추문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뉴욬법원으로부터 8,330만 달러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그는 금년 2월에는 기업회계 분식 혐의로 뉴욕법원으로부터 추징금 등 3억 5,500만 달러의 지급 판결을 부과받았다. 이 두건은 민사 재판이다.
물론 두 건에 대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항소했다. 그러나 불륜 상대로 알려진 포르노 배우에게 지급한 입막음 목적의 돈과 관련한 불법 혐의로 형사 재판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범법 혐의로 그가 받고있는 재판은 3건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사회에서 이런 범법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대통령을 지냈고 다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은 미국 사회에서 법치라는 사회적 규범에 구멍이 생겼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대통령직을 원하는 명분으로 “Make America Great Again”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가 미국 사회의 법치 규범을 훼손하여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부채질하고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음은 “MAGA”라는 구호와 정면으로 상충되는 매우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조 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자녀 입시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1심, 2심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정의와 법치를 교육하는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으로, 법치를 바탕으로 정의를 지키는 법무부 장관직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런데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고도 그는 대학입시 기회균등 선발제 등을 주요 정강( 프레시안, 2024.3.5.)으로 내세우며 정당을 만들고, 상당한 정치 세력을 형성하여 세상을 휘젓고 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그가 법치 규범을 초월하는 특권의식에 젖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또 어떤가? 다수의 범법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그 혐의 내용이 너무 다양하고 잘 알려져 있어 더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는 검찰 기소로 판사의 구속적부심이 열리는 순간 그가 대표로 있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 그가 구속되지 않도록 국회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달라는 호소를 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일이 있기 전까지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왔다. 이재명 대표는 그에 관한 형사 재판에 재판부의 사전 허락 없이 불출석하는 상황도 보여주고 있다. 그도 법치 규범을 짓밟는 특권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정치인은 “너희들도 우리처럼 검찰의 집중 조사를 받아봐라. 다 범죄 혐의가 발견될 것이다.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느냐? 이것은 정치 탄압일 뿐이다.”는 의식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과거에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도덕성 수준에 대해서 한 발언들을 되돌아보면 대단한 표리부동이다. 동시에 이들은 법을 지키며 법을 무서워하는 대다수의 국민을 모독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세 유력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어린이들의 의식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어갈까? 내로남불, 표리부동(表裏不同)과 같은 교활한 자기중심주의와 법 규범 회피가 “극히 당연한 사회적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처세술”로 인식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이렇게 정의와 법치 규범이 흐려진 사회를 우리는 난세(亂世)라 불러왔다. 법질서가 훼손되어 사회 구성원들이 준수해야 할 행동규범과 금도(襟度)가 희미해지면서 모두 자기 좋을 대로 행동하게 되면 공동체는 분열과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중심의 특권을 주장하며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과 투쟁하게 되기 때문이다.
법치 규범이 훼손된 난세에서는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자들이나 권력을 조종할 수 있는 부(富)를 가진 자들이 법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위해서 국가공동체와 사회적 약자에게 해로운 일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일들이 난무한다. 서로 다툼이 있을 때 강력한 권력이나 큰 부를 가진 사람이 우위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시민들을 슬프게 한 소위 “50억 대법관”이란 어휘가 의미하는 바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혁명(1789.7.14.-1794.7.28.)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프랑스 국민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러나 이런 국민 의식을 이용하여 자기 개인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려는 정치인 때문에, 그 과정에서 집단적인 테러와 폭력이 난무했다.
“로베스 피에르”가 그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는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우며 혁명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그의 방식에 따르는 사람”에 한해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반혁명 세력으로 몰아 죽음을 강요했다.
프랑스 국민은 왕과 귀족들의 특권과 압제로 상징되는 왕정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시민사회를 꿈꾸며 혁명운동에 동참했으나 로베스 피에르가 휘두르는 국가폭력이라는 다른 형태의 특권과 압제에 직면하여 좌절의 슬픔에 빠졌다. 결국 그에게 속았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시민들의 저항으로 그도 길로틴(단두대)에 의해 처형되었다.
혁명이란 기존 질서와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아직 존속하는, 아직 개정되지 않은 법이 있다면 그 법은 준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회 공동체가 무법천지가 되어 극심한 무질서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급진주의자였던 로베스 피에르는 혁명과정에서 아직 다수의 혁명동지들이 존중하는 법 규범을 경시했고 그 결과 그 자신도 처형당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경제적 양극화, 기득권 세력의 이권카르텔 구축으로 인한 기회의 평등 훼손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취약점 노출 심화로 계층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사회적 평화와 국민 통합을 위해서 이런 취약점들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을 고친다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런데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취약점을 성공적으로 개선하고 극복한 북구 여러 나라들의 경험을 보면 국민 통합의 정신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국민 통합을 위한 법과 제도를 갖추는데 국민과 정치인들이 지혜를 모았다. 이 국가들의 어떤 정치인도 국민 간의 갈등을 조장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법치 규범을 준수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 통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에서 약자를 대변하는 척하는 위에서 거론한 세 명의 정치 지도자들이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고 외치고 행동한 적 있는가? 스스로 범법을 했거나 법질서를 가볍게 보는 특권을 누리려 하면서 어떻게 “평등”과 “통합”을 외칠 수 있는가?
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의 시민사회는 법치 규범에 의해서 평화로운 질서가 유지된다. 경제적 번영도 법질서를 준수하는 거래계약이 성립될 때 이루어진다. 기존 법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면 고쳐야 한다. 그 고치는 방법이 혁명이라는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존속하는 현행법은 악법이라도 준수되어야 한다.
법치 규범을 무시하는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하여 정치 활동 과정에서 난세를 조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조장한 “난세의 난기류” 때문에 서민 생활은 더 어려워지고 국력은 약해지게 된다. 그들의 정치적 성공 책략이 국가와 국민에겐 큰 상처와 고통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22대 총선 후보 3명 중 1명은 전과자”(2024.3.22. 이데일리)
현재의 유력 정치 지도자 두 사람에 더해서 미래의 정치 지도자를 지향하는 국회의원 후보들까지 이 정도의 법 준수의식을 가지고 있다니…….
국제 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현 시대에 한국은 일부 유력 정치인들이 조성하고 있는 “난세의 늪”에 빠져 아무 것도 못하고 헤매고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날 국력 약화와 민생 악화의 역사적 책임은 그들의 “난세 조장”을 도와준 일부 시민들이 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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