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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대륙에 부는 우경화의 새 바람, 지나가는 바람인가? 변혁의 새 물결인가? -복지포퓰리즘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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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1월11일 22시3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21분

작성자

  • 최양부
  • 전 대통령 농림해양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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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남미대륙에 불기 시작한 우경화의 바람 

 남미대륙에 우경화의 새 바람이 불고 있다. 2015년 11월 22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결선투표에서 야당인 중도우파의 ‘공화주의제안당(PRO)’ 소속의 기업가 출신 마우리시오 마크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마크리 당선자가 12월 10일 취임선서를 마치고 새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아르헨티나에는 새로운 우파정부가 들어섰다. 2002년 발생한 국가부도사태 직후인 2003년 정의당 (일명 ‘페론당’, PJ) 출신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대통령이 이끄는 좌파정부가 집권을 시작한 이후, 2011년부터는 그의 뒤를 이은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까지 키르츠네르 부부대통령의 좌파정부시대가 12년 만에 막을 내렸다. 

 

 아르헨티나에서 우파의 승리는 당장 12월 6일 치러진 베네수엘라 총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수우파의 야권연대인 민주연합회의(MUD)가 전체 의석 167석 가운데 99석을 차지한 반면 집권여당인 통합사회당(PSUV)은 46석에 그쳤다. 좌파정부의 총선 참패는 1998년 우고 차베스대통령이 이끄는 좌파정부가 집권을 시작한 이후 17년만의 일이다. 우파의 총선승리로 벌써부터 베네수엘라에서는 챠베스 대통령 사망이후 후계자로 좌파정부를 이끌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우파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노동자당 출신의 브라질 최초 여성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으로 좌파정부가 집권 12년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2003년 집권에 성공한 중도좌파의 노동운동가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집권이후 5천만 명에 달하는 절대빈곤가구를 없애기 위해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한 가구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볼사 파밀리아 정책’을 추진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복지정책과 함께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브라질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적인 원자재가격하락으로 재정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브라질은 급기야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치솟았던 좌파정부에 대한 인기도 급락했다. 특히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 브라스로부터 정치자금 수수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2011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호세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치며 좌파정부가 흔들리고 있다. 

 

칠레에서는 2000년부터 집권하기 시작한 칠레사회당(PSCh) 출신의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의 뒤를 이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집권하고 물러났다가 2014년 재집권에 성공한 온건 중도좌파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도 한때는 ‘칠레의 어머니’로 칭송받았으나 역시 국재원자재가격하락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저성장, 그리고 대통령 아들의 비리가 정치문제화 되면서 지지도가 85%대에서 20%대로 급락하는 등 좌파정부가 흔들리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을 비롯한 브라질, 칠레에 불고 있는 우경화의 바람에 대해 우리 언론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남미의 망상적 좌파 포퓰리스트 정권들의 붕괴는 애초부터 시간문제였으며 예견된 일’이라며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200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우파정부를 권좌에서 밀어내고 민주적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와 기대를 모우며 정권창출에 성공했던 좌파정부들이 물러나거나,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남미정치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왜 국민들은 사회적 약자와 빈곤계층들의 복지증진에 앞장섰던 좌파정부를 심판하고 있는 것인가. 남미 대륙에 불기 시작한 우경화는 잠시 지나가는 바람인가 아니면 새로운 변혁의 물결인가. 

 

남미를 붉게 물들여온 ‘핑크 타이드’라는 분홍물결 

 남미에 불고 있는 우경화 바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2000년 이후 지난 15년간 남미대륙을 붉게 물들여온 ‘핑크 타이드(Pink Tide)’란 남미좌경화의 ‘분홍물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남미대륙에서 혁명과 반혁명(군사 쿠데타)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민주적 선거절차를 통해 좌파정부가 집권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베네수엘라에서 혁명지도자 우고 챠베스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부터다. 이후 남미대륙에는 분홍물결이 물밀 듯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의 뒤를 이어 2000년 칠레, 2003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2005년 볼리비아, 우루과이, 2006년 에콰도르, 2008년 파라과이, 2011년 페루에서 좌파정부가 집권에 성공하면서 남미대륙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이러한 남미 죄경화의 중심에는 좌파의 정신적 지주인 쿠바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챠베스 대통령은 카스트로의 후계자를 자처하면서 남미좌경화를 주도했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뒤따르면서 남미대륙에 좌파정부시대가 열렸다.  

 

 2000년대 남미대륙에 좌파의 분홍물결이 넘치게 된 직접적인 동인은 1980-90년대 남미의 좌경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독재정부와 보수우파정부에 의한 인권탄압과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실험의 실패가 있고 이에 반대하던 민주화운동이 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스페인 300년 식민통치가 남긴 유산인 1:99%의 불평등 사회가 있으며, 남미를 자신의 앞마당으로 만들기 위해 남미정치경제에 개입해온 미국에 저항하는 반미주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남미우파정부들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처방에 따라 균형재정을 위해 복지예산삭감 등 재정지출을 줄이고, 전력, 가스와 같은 공기업을 매각 민영화하고, 자본자유화와 시장개방 등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빈곤과 계층 간 불평등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가진 것 없는 대다수 국민들은 희망을 잃고 절대빈곤의 악순환에 시달리게 되었다. 국민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도한 우파정부를 심판하고 이를 지원한 미국에 저항하는 반미주의적 좌파정부를 선택하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희망을 걸었다.

 

 2000년대에 등장한 신좌파는 과거의 이념적 평등을 주장하며 혁명을 외쳤던 투쟁적 좌파와는 달리 대의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장개방 등 세계화의 조류를 수용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저소득 빈곤층을 지원하는 유럽식의 온건한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채택했다. 남미의 좌경화는 이처럼 스페인식민시대 이후 세습화하고 있는 불평등 사회구조를 혁파하고 미국의 식민주의적 남미지배에서 벗어나 남미공동체 결성을 통해 남미를 통합하고 국제사회에서 남미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남미사회에 뿌리 깊은 좌파 지식인과 노동자, 그리고 절대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하는 서민들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이 바탕에 깔려있다. 남미는 역사적으로 스페인식민지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부와 권력을 독식하고 있는 대토지와 부를 장악한 권문세가와 이들과 결탁된 자본가과 기업가, 공무원과 관료집단, 정치권력의 유착이라는 식민지적 권문세가의 정치와 종속경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고 불평등 사회를 혁신하려는 남미좌파들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우파간의 정치적 긴장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미 좌파정부의 성공과 실패   

  2000년 이후 좌파정부들이 집권을 시작한지 15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남미대륙에 다시 우경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남미좌파의 3대축을 형성해온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브라질에서 좌파정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상 남미대륙 전체에서 좌파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잃고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왜 남미좌파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었는가. 

  아르헨티나는 키르츠네르 대통령부부가 집권한 12년 동안 국제곡물가격과 원자재가격의 상승으로 확보한 재정을 기반으로 절대빈곤층 감소를 위한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했다. 원자재가격이 하락하자 좌파정부는 복지재정확보를 위해 밀, 옥수수, 콩, 쇠고기, 수산물 등 주요 수출 농축수산물에 대해 수출세 세율을 인상하거나 신설했고, 서민생활안정을 위해 주요 생필품인 빵과 옥수수, 쇠고기, 우유 등의 국내가격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수출제한조치를 취했다. 주요 수출농산물에 대한 수출세 부과는 이렇다 할 공산품 수출이 많지 않고 산업 활동 제약으로 세원이 다양하지 않은 아르헨티나 경제에서 세수확보를 위한 오래된 관행으로 정부재정의 25%이상을 점하고 있다. 수출세는 1862년에 처음 도입된 이후 우파정부집권 시에는 폐지되었다가 좌파정부에 의해 실시되는 등 실시와 폐지를 반복해왔다. 2003년 키르츠네르 대통령집권이후 다시 실시되고 있는 수출세는 특히 세습화된 대지주에 대한 세금부과라는 측면에서 소득재분배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수출세의 과도한 부과는 농업생산 활동의 위축을 가져왔고 아르헨티나 최대의 수출산업인 농산물수출보다는 오히려 국내비축을 촉발하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방만한 재정운용은 외화부족을 가져왔고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좌파정부는 페소화 방어를 위해 2011년부터 달러화 구매한도와 공식 환율을 일정 선에서 통제하는 등 달러화 거래에 족쇄를 채운 이른바 ‘족쇄환율(CEPO)’제도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 공식 환율(9∼10페소)과 비공식환율(14∼15페소)간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암달러시장이 활성화되고 주요 생활필수품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수입물가 폭등은 서민경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제곡물가격의 하락과 중국경제의 침체 등이 더해지면서 그동안 중국에 경도되어온 아르헨티나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경기침체를 맞게 되었고, 경제 불황과 저성장속에 수출세 인하를 요구하는 농업계의 반정부 시위와 생활고에 처한 서민들마저 여기에 합세하면서 좌파정부는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을 좌파정부에 등 돌리게 한 또 하나의 결정적인 요인은 키르츠네르 정부의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대통령과  아들 등 대통령 가족과 측근 실력자들 사이에 만연된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등 좌파정부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를 타고 마크리 대통령이 내건 ‘바꾸자(Cambiemos)’라는 선거구호가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표심을 움직였다. 

 

  베네수엘라도 국제원유가하락이란 직격탄을 맞으면서 재정이 고갈되고 외화부족으로 볼리바르화의 가치가 폭락하고 수입에 의존해온 생활물자의 품귀와 가격폭등으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 경제파탄을 맞게 되었다. 베네수엘라는 원유가 수출의 95%를 차지하고 있으며, 재정수입의 60%를 원유에 의존하고 있는 남미 산유국으로 유가하락은 곧바로 재정압박과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1998년 차베스 좌파정부가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베네수엘라는 고유가속에 석유를 비롯한 광산, 전력, 통신, 은행 등을 기간산업을 국영화하고 국영 석유공사(PDVSA)를 통해 복지재원을 조달했다. 챠베스 정부는 빈민층에게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휘발유와 생활필수품 등을 무료로 보급하는 등 강력한 사회복지정책을 펴 서민생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고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챠베스는 더 나아가 쿠바의 카스트로를 ‘형님’으로 모시고 남미 좌경화와 반미운동을 주도하고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좌경화와 반미운동을 지원했다. 미국도 베네수엘라를 안보위협국으로 지정하는 등 양국 간의 갈등이 지속되었다. 챠베스는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일당독재국가로 만들어 갔으며 반정부세력에 대한 인권탄압문제로 미국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2014년 차베스 사망 후 국제적인 유가하락으로 재정압박을 받게 되었고 외화고갈로 수입생필품 공급부족과 년 간 60∼70%대의 물가폭등에 시달리며 서민들의 불만은 증폭되었고 국가는 부도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물가불안 속에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세력이 충돌하는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치안불안 상태 속에서 좌우파간 대립과 갈등이 격렬해지고 있다. 반정부 우파세력은 베네수엘라를 17년간 지배해온 ‘차비스모(Chavismo)’라는 ‘챠베스식 포퓰리스트 사회주의’로 과도한 복지가 재정을 탕진시키고 나라경제를 파탄 나게 했다며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베네수엘라에게 쿠바가 미국과 54년간의 국교단절을 마감하고 국교정상화를 추진하고, 아르헨티나에서 우파정부가 등장하고 브라질, 칠레 등에서 좌파정부가 퇴조하고 있다는 소식은 베네주엘라를 더욱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내 몰고 있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베네수엘라, 브라질, 칠레 등의 남미국가들은 대부분 농산물, 석유, 광산등 원자재수출에 의존하여 국가재정을 꾸리며, 생활물자 등 공산품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식민지형 종속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 신민지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사회적 불평등구조로 대다수 국민들은 낮은 소득과 고물가로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해왔다. 더욱이 1980-90년대 우파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실험은 경제를 파탄상태로 이끌었다. 아르헨티나의 2002년의 국가부도는 1940-50년대 집권한 후안 페론 정부의 복지정책 때문이라기보다는 1960년대 군사쿠데타로 집권을 시작한 이후 나라를 파국으로 이끈 군사독재정부와 1990년대의 카를로스 메넘 정부의 정책실패가 남긴 결과였다. 

 

 경제적으로 파탄에 빠진 나라를 인수 받은 2000년대 남미의 좌파정부들은 높은 국제원자재 가격에 힘입어 혁신과 변화를 통해 경제를 정상화 시키고 특히 절대빈곤의 악순환에 빠진 서민경제의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복지정책과 고용정책 등을 통해 경제사회를 쇄신시키면서 경제성장을 만들어냈다. 2000년대 집권한 좌파정부들이 대부분 10년 넘게 장기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공한 복지정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남미를 좌파 복지포퓰리즘의 나라로 치부한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불평등이 구조화되어 있는 1:99%의 나라에서 대의민주주가 정착되면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서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좌우파를 떠나 모든 정치인들에게 표를 의식한 포퓰리스트적 복지정책공약은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복지는 돈’이기 때문에 어떻게 그 비용을 조달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국가재정의 주 수입원인 토지 등 자원의 대부분을 대지주등 소수의 권문세가들이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복지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기득권층에  대한 소득 재분배적 조세부담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수용 가능한 조세부담이 어디까지인가이며, 서민들에 대한 복지지원의 수준과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인 정치적 타협점을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평등사회에서 경제성장과 부의 재분배에 대한 합의된 사회적 게임 룰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국가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정치적 타협을 이루지 못할 경우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간의 정치경제적, 사회적 갈등은 나라경제를 언제라도 파국으로 내 몰 수 있다. 우파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좌파정부의 ‘무제한의 퍼주기 식 복지정책’을 비판하고 좌파는 부를 점유하고 있는 우파의 국가공동체 유지에 대한 도덕적 무책임성을 비판하면서 부의 재분배를 요구한다. 원자재가격 상승 등으로 외부 경제 환경이 좋아지고 정부재정이 넉넉해지면 문제가 없지만 원자재가격의 폭락과 기득권세력의 저항으로 정부재원이 제대로 조달하지 않으면 복지정책도   파국을 면치 못하게 된다. 경제가 휘청이고 서민의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나타난 좌파정부의 부패와 비리로 인한 도덕적 타락은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면서 좌파정부가 위기를 맡게 되었다. 우파정부의 무책임과 도덕적 타락을 비판해온 좌파정부의 도덕적 타락은 국민들에게는 더 큰 배신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남미에 부는 우경화, 바람인가 물결인가 

 아르헨티나 마크리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12월 14일 농업인대표를 초청한 자리에서 대지주등 보수우파 기득권이 그 토록 열망하는 밀, 옥수수, 쇠고기 등에 15∼20%가량 부과돼온 '징벌적' 성격의 수출관세 폐지를 선언했다. 콩에 대한 수출세는 35%에서 30%로 낮추었다. 아르헨티나 대지주협회는 환영했다. 마크리 우파정부는 여기에 더 나아가 미 달러화 매입 규제 철폐 등 족쇄환율정책을 폐지하고 외환거래를 전면 자유화 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암거래시장가 수준으로 폭락했으며 물가는 치솟았다. 막대한 달러자산을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기득권은 환호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대처하면서 물가를 잡기 위해 15일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8%포인트 인상했다.  우파정부의 급격한 경제정책 우선회가 과연 성공할지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서 앞으로 어떠한 정책을 추진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기업친화적인 정책들로 인해 서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의 후퇴가 일어날 경우 좌파정부에 등 돌렸던 민심은 다시 좌선회할 것이고 노동자와 서민들은 다시 반정부를 외치게 될 것이며 아르헨티나는 다시 좌우파간의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남미좌파정부가 곤경에 처하게 된 원인은 방만한 복지정책 확충 때문이라고 쉽게 진단할 수도 있지만 더 직접적인 원인은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가격의 폭락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고 남미경제의 큰 손인 중국경제가 회복이 늦어질 경우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경제는 우파정부 하에서도 경상수지적자로 인한 외화부족과 자국통화가치 하락, 재정적자, 물가상승, 마이너스성장 등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민들이 좌파정부에 등을 돌린 것은 우파들의 주장처럼 좌파정부의 복지정책을 심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십 수 년 간 좌파정부의 복지정책에 의존하여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들은 우파정부의 복지정책후퇴로 그들의 삶이 다시 어려워 질 경우 언제라도 반정부를 외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미대륙에 부는 우경화의 바람은 잠시 지나가는 바람에 그치게 되고 좌경화의 물결이 다시 밀려오게 될 것이다. 

 

 이처럼 남미사회에 내재화 된 불평등구조의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파할 수 없는 상태에서 복지포퓰리즘은 현상유지를 바라는 1%의 기득권층과 변화를 바라는 99%의 서민들 간의 최소한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포퓰리즘이 좌파의 전유물만은 아니며 선거가 지속되는 한 우파도 복지포퓰리즘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특히 좌파정부가 제도적으로 확립해 논 사회복지정책을 다시 주워 담기도 어렵다. 포퓰리즘은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대의민주주의 속성상 좌우파 정치인 모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정치상품이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 한 채 남미 좌파정부에 대체로 비우호적이고 적대적이기 까지 한 (특히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온 베네수엘라의 급진좌파정부에 대하여) 미국 등 서구 언론들이 전하는 다소 왜곡된 남미소식에 의존하여 남미정세를 판단할 경우 우리는 남미정세를 오판할 수도 있다. 남미우파정부가 불평등사회라는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기고 동시에 서민들의 삶을 후퇴시키지 않는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한 우파정부는 정치적으로 지속가능할 수가 없다. 우파정부가 좌파정부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점하면서 동시 기업 친화적 정책으로 경제가 되살아나고 고용이 증대되고 물가가 안정되고 재정이 확충되어 좌파정부를 능가하는 복지정책이 추진되지 않는 다면 우파정부는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될 것이다. 

 

 우리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란 정치계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야 간의 복지 포퓰리즘 경쟁도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복지 포퓰리즘 논쟁이 건강하게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당파적 이념논쟁이 될 경우 나라는 혼란에 빠질 수가 있다. 남미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좌우파 간의 정치적 갈등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가 될 수도 있다. 벌써부터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한 아르헨티나가 어른거린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남미에 부는 정치바람에 대한 바른 성찰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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