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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보호법은 교권을 얼마나 보호할 수 있을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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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2월18일 22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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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년 12월 31일 교권보호를 위한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개정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내용을 보면 ‘교권보호법’의 제정이라 할 만하다. 개정법의 새 명칭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하 교권보호법)이다.

 

교권보호법은 교권침해행위의 방지에 일정 정도의 기여를 할 것이다. 법의 효과가 아주 크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이 학교폭력방지에 기여한 정도와 비교하면 작겠지만 나름 의미를 부여할 만큼은 될 것이다.

 

교권보호법이 일정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처벌규정이 엄하기 때문이 아니다. 처벌규정이라야 특별교육이 전부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 무슨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의심이 될 정도다. 그러나 엄벌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교권침해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학교와 교육청과 교육부의 의지를 학생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고, 그 의지를 일관되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조심해야겠다는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학교폭력예방법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2.

학교폭력예방법은 2012년 개정 이후 학교폭력방지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러저런 부작용도 있지만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

 

흔히들 엄한 처벌규정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법에 규정된 처벌규정은 그리 엄하지 않다. 고등학교의 경우 흡연 횟수 3-5회이면 퇴학인 학칙을 가진 학교가 대부분인데 퇴학이란 처벌은 학교폭력행위의 경우에도 죄가 아주 무거운 경우에만 내려지는 벌이다. 악질적인 학교폭력행위와 흡연행위 중 어떤 행위가 더 큰 잘못인가? 악질적인 학교폭력 행위는 학생이 사회에 나가 저지르면 구속을 당할 수도 있는 큰 잘못이다. 하지만 흡연은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조금도 문제되지 않은 행위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제일 큰 이유는 법이 제정되어 실제로 시행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의 지속적 시행으로 말미암아 학생들은 이제 자신이 학교폭력의 위험에 처했을 때 그 사실을 교사나 경찰에 신고하면 반드시 보호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상당히 강하게 갖게 되었다. 그래서 과거처럼 숨기지 않고 과감히 신고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심지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신고하는 학생들마저 생겨났을 정도다. 이로써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학생들은 자신의 행위가 발각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단 발각이 되면 교사는 물론 경찰의 지속적인 개입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학교폭력예방법의 효력은 여기서 발생했다.

 

교권보호법이 효력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주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교권보호법의 처벌규정이 비록 매우 약하다고 하지만 교권보호법이 실제로 일관되게 시행되면 처벌규정이 약하다고 해서 학생들이 무작정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교사 뒤에 국가(학교, 교육청, 교육부)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인식하게 되면 학생들은 이전에 비해 한결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교사들에게는 상당한 힘이 될 것이다.

 

3.

그러나 교권보호법의 효력은 학교폭력예방법의 효력에 비해 상당히 약할 것이다. 교권보호법은 결국 미봉책이다. 그것은 근원적인 대책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 학교폭력예방법 또한 그렇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학교폭력예방법과는 경우가 현저히 다르다.

 

사실 2012년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되어 본격적으로 시행될 때 이에 대한 비판 의견이 많았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을 그냥 둔 상태에서는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주장이다. 사회적 문제가 될 만큼 극심했던 학교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이 아니었다. 생각해보자. 획일적 입시교육에서 어떤 학생이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그 학생이 다른 어떤 학생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게 된다는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 상당한 논리의 비약이 있지 않은가? 그 둘 사이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둘 사이에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사회문제로 비화된 학교폭력문제의 일차적 원인은 입시교육이 아니라 엉터리 학교규율체제에 있었다. 2012년 이전에 우리나라 학교에는 학교폭력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체계적 규율체제가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엉성하게 존재했던 규율체제마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었다. 학교의 규율체제는 두발단속이라든가 복장단속이라든가 하는 시대착오적인 일을 위주로 작동되고 있었고 여기에 학교의 상당한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었다. 사회 또한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고, 정부 또한 이런 규율체제를 방관하거나 조장했다.

 

학교폭력예방법이 강하게 실행된 2012년 이후에도 획일적 입시교육의 현실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은 상당히 감소되었다. 무엇 때문일까? 학교폭력예방법의 시행으로 학교폭력과 관련된 규율체제가 보완되었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2012년 이전 심각했던 학교폭력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엉터리 학교규율체제에 있었다.

 

하지만 교권침해행위의 가장 큰 원인은 이와 관련된 규율체제의 미약함이 아니다. 규율체제의 미약함도 중요한 원인이겠지만 제일 큰 원인은 우리의 교육현실이다. 흔히들 하는 표현을 빌려 얘기하자면 획일적인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이 제일 큰 원인이다.

 

수업시간에 빈번하게 엎드려 잠을 자고 깨어나서는 떠들고 장난치는 학생들은 교실마다 한두 명이 아니다. 지역과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의 학교에는 교실에는 이런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 물론 그들의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어찌됐건 그 학생들에게 대부분의 학교 수업은 너무나 지루하고 무의미한 수업이다. 잠자거나 떠들지 않고 조용히 한 시간을 인내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다 한두 번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서 매일매일 6-7시간을 그렇게 지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 상당수 학생은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떠들게 되어있다.

 

그런데 학생이 잠을 자다가 교사의 질책을 받으면 학생의 스트레스가 어디로 향할까? 잠을 깨운 교사에게로 향할 것이다. 수업시간에 장난치고 떠들다가 교사의 제지를 당하면 학생의 스트레스가 어디로 향할까? 꾸중을 한 교사에게로 향할 것이다. 매일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학생을 담임교사가 야단을 치면 학생의 분노가 어디로 갈까? 곧바로 담임교사에게로 갈 것이다.

 

물론 어떤 교사들은 노련하기에 지도하면서 학생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모든 교사에게 항상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 우리의 교육현실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권보호법이 큰 효과를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의 교육현실을 그대로 두고 학생들을 옛날처럼 강하게 억압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사회와 학교의 전반적 분위기가 다시 예전의 억압적 분위기로 돌아가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학교와 사회는 오히려 한결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의 교육현실이 변해야 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결국 당분간 교권침해행위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교권보호법이 증가추세를 약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추세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4.

교권보호법의 시행으로 학교에는 이로 인한 업무가 상당히 늘어날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도 그랬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지 않아도 법의 시행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행정적 업무가 상당하다. 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고, 의무적으로 부과된 회의를 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실태조사를 해야 하고, 교육청에 이런저런 보고를 해야 하는, 이런 일들은 학교폭력이 발생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처리로 인한 업무가 폭증한다. 그리고 그것은 수업을 비롯한 다른 교육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사람의 혼을 빼놓는 어려운 일이다. 사건을 법이 정한 엄한 규정에 맞추어 해결하는 일이 과연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교권보호법도 마찬가지로 학교에 꽤 많은 행정업무를 발생시킬 것이다. 교권침해행위가 발생하지 않아도 법의 시행으로 인해 저절로 발생하는 일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관료시스템은 결코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교권보호법의 제정으로 말미암아 사안을 다루는 절차가 복잡해지고 엄밀해져서 사안 하나하나가 이전에 비해 현저히 많은 업무를 발생시킬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상당수 교사들로 하여금 교권침해 사실을 공론화하지 않고 그냥 개인적으로 해결하게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지도 모른다. 자기 혼자 그냥 감당하면 많은 사람이 편할 것인데 괜히 공론화해서 여러 사람을 고생시킨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5.

그러나 이런 사실이 법의 제정 의미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교권보호법의 제정은 바람직하다.

 

물론 시행하다보면 개선해야 할 점도 생길 것이다. 사실 학교폭력예방법만 해도 이제 학교에 더 많은 자율권을 주는 방향으로 법의 개정을 고려할 때가 되었다. 당시에는 학교폭력의 은폐를 막기 위해 학교에 아무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타당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 교육적으로 해결 가능한 것까지 법으로 해결하다보니 부작용이 적지 않다.

 

그리고 ‘교권보호법’이 생겼으니 이제 ‘학생인권법’의 제정 또한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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