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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와 기독교 어느 쪽이 미개한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2월29일 21시13분
  • 최종수정 2016년03월01일 18시39분

작성자

  •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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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착각과 세계의 기독교 신자수 추세

한국에서 종교는 참으로 특수합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해선 그렇습니다.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역저에서, 20세가 후반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아프리카에서 크게 세력을 넓혔음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우를 따로 들어, 한국에서 기독교로의 대거 이동이 일어났음([A] major shift toward Christianity occurred in South Korea.)이 세계 기독교 신자수 증가의 주된 요인이라 지적합니다(p.65). 하지만 한국에서의 기독교 신자수 증가는 세계적 추세와는 그 궤를 달리합니다.

밤하늘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가 여기저기 빛나다보니, 기독교 세상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착각에 불과합니다. 행여 앞으로 기독교인이 크게 늘어날 거라 본다면 세계적 추세를 잘못 본 것입니다. 세계인구 중 기독교(가톨릭 포함) 신자수는 1900년 34.5%에서 한 세기가 지난 2000년 33.0%로 1.5%p 줄어들었는데 비해, 같은 기간 이슬람교 신자수는 12.3%에서 19.6%로 7.3%p나 늘어났습니다(Harrison(2006)). 2030년이 되면 이슬람교 신자수가 30% 정도(29.5%)로 늘어나 기독교 신자수(31.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Pew Research Center).

 

종교에서 참 특이한 한국

이미 정착되어 있는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로 옮겨가는 데는 엄청난 진통이 요구됩니다. 사람들은 보통 쉽사리 바뀌지 않는 종교, 언어, 역사, 가치관, 관습, 제도, 조상 등과 관련시켜 자신을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한국이 근대화 과정에서 기독교인이 크게 늘어난 데는, 지정학적 위치와 관련이 깊은 플로(flow, 흐름) 사회라는 특성에 기인합니다. 한국은 미국•중국•소련•일본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실리를 찾으며 그들의 사상이나 종교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고려시대엔 송(宋)의 불교, 조선시대엔 명(明)의 유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미국의 기독교가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강대국의 종교를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전통이나 문화는 금방 변하지 않는 까닭에, 한국에는 그 이전의 종교나 사상도 엄연히 공존합니다. 비빔밥 문화의 종교나 사상입니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면 사고(思考)가 다양해지고 그 폭도 넓어지겠지만, 자칫 잘못되면 갈등과 분열로 불거져나올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품 안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신교(一神敎)인지라, 누구라도 불성(佛性)이 있어 부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불교와는 부대낄 여지를 내포합입니다.

 

서구의 영향에 대한 다양한 반응

근대화(modernization)와 서구화(westernization)는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무역이 성해지고 큰 건물과 시설이 들어서고 첨단컴퓨터가 작동되고 하는 경제발전이 근대화라 할 것입니다. 이에 비해 서구화는 헌팅턴의 견해를 참고하면, 가톨릭이나 개신교, 언어의 다양성, 성(聖)과 속(聖)의 권위 분리, 법의 지배, 대의제(代議制) 기관, 개인주의(개인의 선택, 권리와 자유의 전통)라는 특징이 나타남을 말합니다. 헌팅턴은 서구의 영향이 있게 될 때 근대화와 서구화를 두 축으로 하여 국가나 문화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네 유형(패턴)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림1]은 헌팅턴이 제시한 그림에 한국불교와 한국기독교를 넣어 표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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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화와 비(非)근대화 상태인 A점에서 출발하였을 때, 서구의 영향에 대한 반응 유형으로서, 우선 근대화가 제대로 이루지지 않은 채 ‘문화적 서구화’를 고통스럽게 겪어가는 D점(이집트 등 아프리카 국가)이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서구화의 진전 없이 개혁을 통해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R점(개혁주의)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서구화와 근대화가 동시에 계속하여 진행되는 K점으로의 길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케말리즘(Kemalism)이라 하는데, 헌팅턴은 케말리즘의 길은 증명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구화의 영향에 대한 일반적 패턴은, 어느 정도까지는 서구화와 근대화가 동시에 진행되지만, 근대화가 성숙되면서 서구화에서 벗어나 토착화의 길을 걷는 G의 궤적입니다.   

 


시험받는 한국종교

언제까지라도 서구화와 근대화가 동시에 지속되는 K의 길(즉, 케말리즘)은 증명되지 않았고, 그런 케말리즘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볼 수도 없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서구화도 내포하지 않은 한국불교는 B점에 위치한다고 하겠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기독교는 근대화와 서구화가 어느 정도 함께 진척된 C점에 자리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기독교가 성하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크게 다릅니다. 근대화의 물결을 개화라 보고 근대화 진전과 함께 기독교가 퍼져갔다는 입장에서 보면, 한국불교는 얼핏 미개(未開)한 듯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한국 종교가 과연 토착화와 근대화라는 G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시험받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근대화의 진전과 함께 한국이 G점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불교와 기독교는 그 방향이 다릅니다. 한국기독교는 서구화를 극복하여 C에서 G로 나아가는 토착화의 길을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가 큰 숙제입니다. 불교는 서구화와는 사상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다릅니다. 한국불교가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불교에 깃들인 자비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그저 수수방관하다가는사람들한테 자비심이 전달되지 못하고 묻혀져 갈 수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불교는 B에서 G로 나아가야 하는 개혁을 요합니다.

 


우문현답

헌팅턴은 문화적 정체성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자리잡는다고 합니다. 종교가 문화의 핵심에 있다는 점에서 보면, 종교는 문화(문명)권을 형성하여 꽃피워 가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한국이 성숙사회로 접어들면서 불교와 기독교가 고유문화를 어떻게 정착시켜 갈 것인가가 중요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국이 추구할 방향은, 불교의 깨달음과 기독교의 거듭남이 공존하는 독특한 토착화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부처님과 하나님에 비하면 인간이 미개한 것이지, 깨달음의 종교, 거듭남의 종교에 미개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히려 인간 내면의 성정이 거칠어졌음을 경계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연질서를 파괴하는 인간이 난폭한 것이지, 자연이 미개한 것은 아닙니다. 종교에 우열을 가릴 수 없음에도 저는 ‘한국 불교와 기독교 어느 쪽이 미개한가?’ 라는 물음을 제기하였습니다. 그 물음 자체가 미개함을 면치 못하는 우문(愚問)입니다. 비록 우문이었다 하더라도 현명한 답을 찾아 나서는 우문현답(愚問賢答)이고자 발버둥치고 싶었습니다. 그 발버둥이 어땠는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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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3월01일 18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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