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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혁신학교는 어디 갔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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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3월06일 17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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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가 무척 많았던 것처럼 제목을 붙였지만 실제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는 일부였다. 그중 성공한 혁신학교는 또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일부의 일부에 불과했던 학교가 준 희망은 대단했다.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일들이 실현됐다. 성공한 혁신학교는 주입식·암기식·강의식 수업에서 벗어나 선진국에서나 가능하다고 보았던 토론과 발표 위주의 수업을 학교 차원에서 실현했다. 강압적 생활지도에서 벗어나 학생을 존중하는 새로운 생활지도를 학교 차원에서 실현했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학교에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보았다. 그중의 한 명이 조정래 작가다. 그의 교육소설 <풀꽃도 꽃이다>에는 “여긴 지옥, 거긴 천국”이란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여기서 지옥은 일반학교, 천국은 혁신학교다. 물론 과장과 일반화가 좀 지나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래의 소설은 어떤 사실 하나를 진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학교에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보았다는 그 사실 말이다.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린 2014년 지자체 선거를 기억하는가? 당시 많은 사람들은 혁신학교가 우리 교육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혁신학교를 ‘전교조 공작소’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인식체계를 갖고 있던 보수언론(조선일보 2014년 6월10일자 류근일 칼럼)이 진보교육감 시대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혁신학교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제목을 붙였지만 지금도 혁신학교는 여전히 존재한다.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학교가 사라진 것처럼 표현한 것은 혁신학교다운 혁신학교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별처럼 빛나는 성과를 낸 혁신학교들이 점차 평범한 학교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별들을 대신하여 새로 빛나는 별들이 등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혁신학교라는 말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교사들이 많아졌어요.” “사람들은 다 여기저기 흩어져 버리고 잔해와 잔상만 남았지요.” “여기서 전근 갈 때 또다시 혁신학교를 지원하는 교사들이 없어요.” 혁신학교 교사들과 교장이 한 말이다. 

 

나는 혁신학교를 높이 평가했지만 그 미래까지 밝게 보지는 않았다. 혁신학교의 성공은 제도와 법령의 혁신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다. 교육의 제도와 법령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 혁신학교가 처한 기본적인 교육환경은 거의 그대로였다. 진보교육감이 왜 제도와 법령을 그래도 두느냐고 질책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런 면도 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는 차원의 제도와 법령 혁신은 대부분 교육감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결국 혁신학교가 처한 기본적 조건은 일반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 학교의 큰 병폐 중 하나는 교육(수업)보다 교무행정업무(행정업무를 비롯한 교육 이외의 잡다한 업무)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교의 운영체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학교의 운영체제가 교육이 아닌 교무행정업무를 토대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에서도 국어교사가 국어과, 영어교사가 영어과, 수학교사가 수학과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교무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각각의 부서에서 근무한다. 교사의 승진을 결정하는 것도 교육이 아니라 이러한 교무행정업무다. 승진하고 싶으면 싶을수록 교사는 교육이 아닌 교무행정업무에 더 열정을 쏟아야 한다. 백퍼센트 공정한 승진이 이루어질 때도 교육에서의 능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교무행정업무가 더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교육이 교사들의 삶과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교무행정업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운영체제 속에서는 교사가 교육에 더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으려 하면할수록 학교의 조직체계(그리고 여기서 형성된 교원문화, 승진제도)와 자꾸 갈등을 빚고 충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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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혁신학교의 학교조직체계는 일반 학교와 크게 달랐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혁신학교의 조직체계도 또한 교무행정업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나름의 개혁조치를 취했고 그것 또한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이긴 했다. 하지만 그 한계가 뚜렷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의 학교운영체제에서는 교사가 학생 교육에만 전념하는 것이 어렵다. 교사의 존재이유가 교육에 있고, 교사가 학생 교육에만 전념해야 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혁신학교라고 해서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사들이 차원 높은 수업을 마음껏 실행하는 것이 어렵다. 차원 높은 수업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교사에게 주어지는 온전한 평가권이다. 교사별 평가권은 차원 높은 수업을 위한 기본적인 요건 중 하나다. 그것은 교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차원 높은 수업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교사가 토론과 발표 위주로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수업을 전개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평가 또한 그 수업에 맞추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사별 평가권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핀란드를 비롯한 선진국 학교에서는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이 이러한 교사별 평가권을 왜 보장하겠는가? 교사의 이익을 위해서? 아니다.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수업을 위해서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진국 교사들이 갖는 교사별 평가권에는 절대평가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된다. 이름만 절대평가가 아니라 실제적 의미의 절대평가를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된다. 이 또한 선진국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가진 보편적 권한이다. 

 

그런데 혁신학교 교사들에게는 이러한 평가권이 주어졌는가? 그들에게도 그러한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 점에서 그들이 처한 환경은 다른 학교와 동일했다. 

 

이것 외에도 혁신학교가 처한 근본적인 조건은 일반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혁신학교 성공의 제일 중요한 요인은 교사들의 헌신과 열정이었다. 변화를 열망하는 교사들이 혁신학교에 모여 엄청난 에너지를 동시에 투입했기에 혁신학교의 성공이 가능했던 것이다. 교사들의 헌신과 열정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이러한 성공사례가 오래 지속되거나 다른 학교로 널리 확산된다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이다. 

 

나는 우리나라 학교를 네모난 바퀴가 달린 수레에 비유하곤 한다. 누가 끌어도 멀리 갈 수 없는 수레다. 혁신학교 교사라고 해서 둥근 바퀴 수레를 끌었던 게 아니다. 그들 또한 네모난 바퀴의 수레를 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법 먼 거리를 나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것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혁신학교다운 혁신학교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라지고 있으니 담담하게 생각하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그 많던 혁신학교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고 있는가?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했던 글에 내용을 추가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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