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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은퇴와 5F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3월09일 16시41분

작성자

  • 최성환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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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은퇴 준비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은퇴연구소장이 된 이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언제나 “은퇴하지 마십시오”로 같다. 그러면 돌아오는 반응도 언제나 같다. “에이, 은퇴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우리가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수도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나이 들수록 더 절실하게 다가오면서도 피할 수 없는 3가지는 ‘은퇴, 질병, 죽음’일 것이다. 이 셋 다 피하고 싶지만 피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피하고 싶다는 점에서 부정적 의미의 단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기는 해도 은퇴와 질병, 죽음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피할 수 없으니까 그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게 선배들의 조언이다. 은퇴와 질병, 죽음 중에서 그나마 자신의 의지로 다스릴 여지가 있는 것이 은퇴일 것 같다. 

 

고령화와 저금리 시대를 맞아 은퇴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어서 “스스로 얼마나 은퇴준비가 되어 있나?, 은퇴 후 쓸 돈은 충분한가? 돈을 넘어 노후에 할 일, 건강, 가족 및 친구 관계 등도 한번 짚어보라”고 주문하면 그 때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짚어 봐야할 지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 필자가 내놓는 것이 5개의 ‘F’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로 정리한 ‘5F’이다. 바로 Finance(돈), Field(할 일), Fun(재미), Friends(친구), Fitness(건강)이다. 은퇴설계는 크게 재무적 설계와 비재무적 설계로 나눌 수 있는데, 1F(Finance)만 재무적 설계이고 나머지 4F는 모두 비재무적 설계이다. 재무적 설계는 돈으로 내 노후에 살 집을 내가 원하는 대로 설계하고 짓는 것이다. 어느 정도 돈의 여유가 있어야 설계도 하고 그에 따라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노후 설계, 은퇴 설계도 내가 어느 정도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재무적 설계에 못지않게 염두에 둬야 할 것이 건강이나 취미활동과 같은 비재무적인 면에서의 준비이다. 비재무적 설계도 재무적 설계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므로 미리 미리 준비해 둬야 할 영역들이다. 예를 들어 재무적 설계가 잘 돼 있어서 노후에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건강이 나쁘다면 편안하면서도 재미있는 노후를 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5F를 하나씩 짚어보자. 첫 번째 F는 뭐니뭐니해도 돈이다 해서 Finance이다. 은퇴할 때 몇 억 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노후 생활을 위해 부부가 생각하는 한 달 생활비는 어느 정도 돼야 하고, 그렇다면 그 생활비는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매월 국민연금에서 100만원, 개인연금 들어둔 것에서 50만원, 퇴직연금에서 50만원 해서 일단 연금으로 매월 200만 원식으로 계산을 해보는 것이다. 그 다음엔 부모님께 드릴 용돈이 매월 얼마, 자녀들 용돈으로 얼마, 이 다음에 자녀를 결혼 시킬 때 드는 목돈으로 얼마가 필요할까 등을 따져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죽고 나서 혼자 남을 배우자가 얼마 동안 더 살 걸 계산해서 어느 정도는 따로 떼 놓아야 할 부분 등도 꼼꼼하게 챙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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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F인 Field는 일을 통해 소득을 올리는 일거리 뿐 아니라 은퇴 후 남는 시간을 보람차면서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를 의미한다. 축구경기를 할 때  필드에서 열심히 뛰는 선수처럼 우리들도 내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직장에 다닐 때는 그 직장이 되겠지만 은퇴한 후에는 사진이나 글쓰기, 그림 그리기와 같은 취미활동 또는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 그도 아니면 생활비도 아끼면서 좋은 공기도 즐길 겸 귀촌하거나 귀농할 수도 있다. 이 때 강조하고 싶은 점은 꼭 소득을 얻기 위한 일자리가 아니더라도 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소소한 일거리, 즉 소일거리(Field)를 찾아야 노후의 많은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의 은퇴한 분들을 보면 적절한 소일거리를 잘 찾지 못해서 고생하는 경우를 흔히 만날 수 있다. 

 

세 번째 F는 Field에서 나와 함께 할 친구, 즉 Friends이다. 돈 있고 할 일 있어도 친구가 없으면 재미없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친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친구는 배우자와 자녀와 같은 내 가족이다. 영어로 가족을 의미하는 FAMILY는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글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평소에 배우자와 자녀, 부모형제를 포함한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거기서 재미를 얻으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은 바쁘니까 이 담에 은퇴하고 나서 하지 뭐 하다보면 살가운 정은 다 떨어지고 난 다음일 가능성이 높다. 

 

돈도, 할 일도, 소일거리도 어느 정도 있고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부러울 게 없다. 말 그대로 인생이 재미있고 즐거울 것이다. 그래서 네 번째 F는 재미를 의미하는 Fun으로 뽑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배우자와 함께 떠나라, 친구들과 함께 즐겨라”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간 2113시간씩이나 일을 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5년) 회원국 평균(1766시간)보다 300시간 이상이나 많은 시간을 직장에 쏟아 붓고 있다. 이제 그런 직장에 매이지 않게 되었으니 아쉬움이 있더라도 털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재밌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연구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F는 건강을 의미하는 Fitness이다. 비재무적 설계에서 다른 영역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제일이다. 돈 있고 배우자 있고 좋은 친구 있다고 하더라도 건강이 없다면 소일거리와 재미 등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평소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또 혹시 모를 큰 병에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상의 5F는 꼭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평소에도 5F는 우리의 행복을 지켜주는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루라도 젊어서부터 5F를 골고루 잘 준비해 놓으면 은퇴가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과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은퇴 후 남는 게 시간이라지만 돈도 친구도 할 일도 건강도 있다면 재미있게 사는 일만 남지 않았을까? 재미있으면 시간도 잘 간다. ‘5F’를 열심히 준비한 당신, 행복한 노후를 마음껏 즐겨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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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3월09일 16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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