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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규제개혁 <3> 10가지 제언 ①칸막이 규제와 칸막이 행정을 개선해야 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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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0월30일 16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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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 그대로 혁명이라면 과거의 연장선상이 아닌데, 과연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준비가 되어있느냐가 문제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산업을 개선하는 존속적 혁신이 아니고 기존 산업을 해체하고 새로운 산업의 출현을 가져오는 파괴적 혁신이므로, 융합의 진행이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다. 2, 3차 산업혁명은 단일 기술, 단일 산업에 기반을 두었지만, 4차 산업혁명은 융・복합 기술과 산업이 주도하므로 규제혁신 방향도 여기에 근거해야 마땅하다. 결국 융합의 진행이 자연스럽고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우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를 앞두고 긴요하고도 시급한 규제개혁 과제를 다음 열 가지로 추려서 정리해 보고, 그 대안을 제시해 보기로 하겠다.

 

 (1) 칸막이 규제와 칸막이 행정을 개선해야 한다

(2) 규제 운용의 패러다임적 변화가 요구된다

(3) 융합 특별법의 제정보다 개별법의 정비가 더 절실하다

(4) 진입규제를 일괄적으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5) 공정경쟁 못지않게 시장경합성 제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6) 네거티브 시스템을 도입하되, 사후 감독과 규율은 제대로 해야 한다

(7) 칸막이식 연구개발(R&D) 지원제도를 대폭 정비해야 한다

(8) 도전적인 융합 촉진을 위해 ‘실패 성과’를 체계적으로 축적해 나가자

(9) 경험 학습(Learning by Doing)의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10) 융합 신기술 제품의 품목분류체계 미비는 또 다른 형태의 규제다​

 

 

(1) 칸막이 규제와 칸막이 행정을 개선해야 한다

먼저 기술 및 산업 융합의 걸림돌인 칸막이 규제와 칸막이 행정을 개선해야 한다. 산업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단일 기술, 단일 산업 시대에 만들어진 정부 부처의 칸막이 행정 구획과 칸막이 규제가 혁신을 막고 있어서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정부 부처가 개별적으로 양산하는 규제는 ‘그리드락(gridlock)’ 현상을 초래하는 ‘죽은 규제’가 되기 십상이다. 규제로 인해 피규제자들이 교차점에서 교통정체에 막힌 것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규제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디바이스+데이터+서비스 결합이 대세인데, 각 분야마다 소관 규제가 작동하면 장애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알파고나 포켓몬고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지식재산이 출현하는 시대에는 특허, 상표권, 저작권 같은 전통적 개념의 지식재산들이 융합되도록 경계를 허물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 사례를 든 것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정부부처 간 정책의 조화로운 연계와 협업이 이루어지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왜 이런 문제가 4차 산업혁명 시기의 도래와 더불어 불거지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가 구축하고 있는 제도와 규제의 대부분은 단일 기술, 단일 산업을 전제로 한 것들이다. 이러한 제도와 규제들은 정부의 칸막이 행정과 맞물려 큰 탈 없이 산업의 고도화와 경제성장을 뒷받침해 왔다. 정부의 각 부처마다, 부처 내의 각 부서마다 소관 업무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담당자들이 진력하였고, 나름대로 결실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철옹성처럼 구축된 정부의 칸막이 행정은 융합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경제와 사회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로 작용하기 시작하였고, 그 폐해가 점점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칸막이 규제의 폐해는 소관 규제에 대한 강한 집착과 소관이 아닌 규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부처 간에, 심지어는 같은 부처 내에서조차 부서 간에 칸막이를 치고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런 칸막이 규제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지 간에 상관하지 않고 소관하는 업무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는 융합 시대에 금물이다. 게다가 정부 부처마다 칸막이 영역의 구축과 영역 확장의 본능을 지니고 있어서 부처나 부서를 넘나드는 규제의 운용보다는 부처 간의 이해관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칸막이 행정으로 인한 다원화된 규제 체계의 폐해를 벗어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종종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컨트롤타워를 지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만일 가능하다 하더라도 컨트롤타워에 의한 규제 운용이 반드시 바람직한 일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정부 내에서 부처 간에 부서 간에 협업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의 칸만이 행정은 오랫동안 고착되어 이미 구조화되었기 때문에 난공불락의 성을 공략할 만한 특단의 의지와 새로운 접근을 통해 칸막이의 핵심을 꿰뚫어나가야 한다. 그것도 오랜 기간의 노력과 개개의 사안별 접근이 아니라 전면적인 정책패러다임 변화를 추진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몇 가지의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중앙정부의 각 부처 내에 협업조정관이나 융합규제조정관의 고위공무원 직책을 신설하는 일이다. 이들은 부처를 넘어서는 정책 이슈의 규제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규제 및 제도의 설계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규제 코디네이터가 곧 정책 코디네이터가 되는 셈이다. 기술 및 산업 융합과 관련하여 부서 간에 걸쳐지는 규제 이슈를 주로 다루되, 처음부터 원스톱 처리를 기대하기보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채널로 이용하면서 점점 그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방형 직위나 고위공무원단의 부처 간 교류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분권형, 네트워크형, 개방형, 소통형, 공유형, 참여형, 자율형 등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특징과 부합되며 무엇보다도 수평적 협력에 익숙한 인물이면 금상첨화다. 피규제자의 입장에서는 협업조정관이나 융합규제조정관을 융합 관련 이슈의 단일 창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직책을 설치하는 취지에 부합된다. 이들의 활동은 주기적으로 국무총리실(정부업무평가실)과 규제개혁위원회를 통해 국무회의에 보고되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다. 

 

정부 부처 간 협업 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신설되는 협업조정관이나 융합규제조정관의 역할은 긴요하다. 정부의 협업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협업 성과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각 부처별로 협업 우위(Cooperative Advantage)인가 협업 열위(Cooperative Disadvantage)인지를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부처 간 협업의 필요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는가, 협업의 과정에서 소통은 원활히 이루어지는가, 협의된 사항은 잘 이행되고 있는가 하는 것 등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협업의 성과와 함께, 협업이 이루어진 과정도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주연이 아닌 조연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고자 하는가도 중요한 평가 항목 중의 하나다. 협업의 성과를 평가할 때 주연의 역할을 하는 부처 못지않게 조연의 역할을 하는 부처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를 부여해야 마땅하다고 보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연의 역할만 고집하고 조연의 역할은 소홀히 하거나 외면하는 부처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감점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 

이렇게 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결국 정부 부처 간 경계가 불분명하고 정체성이 모호한 정부 조직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의 규제개혁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의 분과위원회 조정이 필요하다. 현재는 경제분과위원회와 행정사회분과위원회로 구분하여 각 분과의 소관 부처와 관련된 사안만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소관을 넘나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융합 시대에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가 없으므로, (가칭)신분야분과위원회 또는 신산업분과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2016년 3월부터 운영해 온 비상설기구인 신산업투자위원회의 기능을 제도화하여 규제개혁 차원에서 뒷받침한다는 의미도 있다. 

 

입법기관인 국회의 경우도 소관 부처 별로 구성된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의원입법에 의한 규제의 품질관리뿐 아니라, 현재와 같이 소관 부처에 따른 상임위원회 중심인 경우는 융합 시대에 걸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소관을 넘나드는 기능을 수행하는 규제개혁 권고기구를 산하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한 번 논의해 볼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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