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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규제개혁 <3> 10가지 제언 ⑦ 칸막이식 연구개발(R&D) 지원제도를 대폭 정비해야 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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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2월11일 17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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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과학기술R&D에 투자하는 규모가 큰 나라 중 몇 손가락에 꼽히는 국가이고,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OECD의 35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과연 올바른 방식으로 R&D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융・복합 기술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R&D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느냐 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수평적 협업을 통한 융합기술의 개발이나 산업융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업종 별, 분야 별로 이루어지는 샤일로식 연구개발(R&D) 지원제도가 대폭 정비되어야 한다. 기술 융합이 활발해지는 시대에 각 분야 별로 칸막이를 설정하여 연구개발(R&D) 활동을 지원한다면 이 또한 규제 장벽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행 제도에서는 업종 별, 분야 별로 구분되어 R&D 활동을 지원하는 자금의 배정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다반사다. 이러한 사일로식 지원 체계는 수직적 규제 체계와 일맥상통한다. 당연히 수평적 협업을 통한 융합기술 개발이나 산업융합을 생각하기 어렵다.

 

산업화 시대에는 분야 별로 전문화된 R&D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과학기술입국의 성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술과 산업의 융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에는 창의(Creativeness)와 더불어 개방과 협력(Openness & Cooperation)의 요소가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 강조되곤 한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용도와 한계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한데, 특히 다른 분야와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R&D에 의한 기술발전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융합은 무한대의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므로, 연구의 다양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하에 최근 국가출연연구소들은 융합기술 관련 연구조직을 구성하고 특화된 각 분야를 기반으로 연구를 추진해 오고 있다. 이를테면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로봇, 섬유, 생명공학, 나노, 바이오, 전자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사례 중의 하나다. 특정 분야에 치우치거나 공동연구체계 구축이 미흡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R&D 지원 제도 하에서는 여전히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융・복합 과제에 대한 R&D 활동의 지원을 강화하는 일은 시급하다. R&D 지원예산도 업종 별, 분야 별로 칸막이를 설정하여 지원하거나 정부 부처 별로 나누어서 서로 간에 칸막이를 인정하며 사용하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융합 신기술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지만 기술개발 자금이 부족하거나 관련 행정력이 부족한 ‘무능력자’를 발굴하여 기술개발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업종 별 또는 분야 별로 R&D 자금의 용도가 지정되지 않거나, 업종 별, 분야 별이라도 융・복합을 전제로 한 과제에 일정 비율의 R&D 지원 자금을 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칸막이식 R&D 지원금을 대폭 정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이공계를 대표하는 과학자들이 ‘정부가 지원을 하되 간섭은 줄여 달라’고 한 요청도 이런 맥락에서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 문화예술계에서 줄곧 제기되던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이제는 R&D 지원과 관련된 정책의 운영 원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양한 결합 시도가 요구되는 기술 융합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자성이 절실한 만큼 R&D 지원에 있어서도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는 비중을 높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정부가 최근 기존의 정부주도형 R&D 지원에서 벗어나 연구자 중심의 지원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의 무게중심을 옮기기로 했다는 방침은 이런 요청에 다소나마 부응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연구자 주도형 기초연구 예산을 2017년 1조 2,600억 원 규모에서 2022년까지 2조 5,000억 수준으로 2배가량 단계적으로 증액하기로 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그 첫발은 제대로 띈 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업종 별, 분야 별 R&D 지원제도를 개선하는 일과 별도로, 기초연구와 산업기술 간의 장벽을 해소하는 일도 긴요하다. 기초기술의 육성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융합 도전의 여지를 보다 활짝 열어둘 수도 있는 것이다. 산업 내에서 기술진화가 이루어지던 전통적인 주력산업의 경우에는 모방혁신이나 기술도입에 의존해서도 빠른 추격자로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룰 수 있었으나, 지식 및 아이디어 갭에 의한 시장선점 논리가 지배적인 산업융합 시대에는 핵심적인 원천기술이 경쟁력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출연연구소들을 총괄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출범을 계기로 R&D 지원을 위한 자원배분 방식을 근본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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