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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전형과 계층이동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5월21일 20시09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0시05분

작성자

  • 김경근
  •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메타정보

  • 37

본문

대입전형과 계층이동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개천이 한미한 집안을 가리킨다면 현상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 배경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우선 개천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우리 사회에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국민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 또한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한미한 집안 출신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으니 개천에서 용이 나는 현상을 목도하기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기능하지 못함에 따라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렵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학업성취나 상급학교 진학 결과에 대한 가정배경의 영향력이 점차 증가하면서 부와 신분의 세습이 일상화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들이 이를 실증하고 있고 국민들의 인식도 이런 현실에 조응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단순한 대입전형이 계층이동을 촉진     

교육이 부와 신분 대물림의 핵심기제로 작용하는 과정에서 대입전형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입전형은 어떤 형태로든 계층이동 가능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특히 학력이나 학벌이 신분상승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우리 사회에서 이는 단지 개연성의 문제가 아니라 엄혹한 현실의 한 단면이 되어 있다. 

 

원론적 견지에서 대입전형이 계층이동을 최대한 촉진할 수 있으려면 학교에서 교과서만 충실하게 학습하면 시험을 치르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소외계층에게 이런 매우 단순한 대입전형이 가장 유리하다는 점은 교육불평등 연구의 대가인 크리스토퍼 젠크스가 동료 학자들과 펴낸 ‘불평등(Inequality)’이라는 논저에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소외계층 학생들이 가장 유리한 대입전형을 경험했던 시기는 1980년대 후반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사교육이 금지된 상태에서 학력고사와 내신 성적만으로 모든 수험생들이 한 줄로 서서 대학에 입학하는 양상이 나타났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사교육이 다시 허용되었고 대입전형도 점차 복잡해졌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교육의 영향력이 커지고 대입전형이 복잡하게 바뀌게 되면 소외계층 출신은 그만큼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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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기 그지없는 대입전형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 대입전형은 무척 복잡하다. 한때 3000여개를 넘던 대입전형은 현 정부가 대입전형 간소화를 주요 교육정책으로 추진하면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2015학년도에도 대입전형은 892개에 달해 여전히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대입전형이 복잡해진 배경은 크게 두 가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는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기하고 지덕체를 겸비한 전인을 육성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학생부 중심 전형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입시제도의 변개를 통해 과중한 사교육비 지출을 경감하기 위해 새로운 전형방식을 도입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입학사정관제 도입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시도로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많은 요인들도 대입전형이 복잡해지는 데 일조를 했고, 그 결과 입시전문가가 아니면 그 대강마저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 초래되었다.  

 

계층이동 저해 가능성 큰 학생부 종합전형  

근자에 학생부 중심 전형은 꾸준히 확대되어 왔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부 중심 전형은 크게 학교 내신 성적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는 학생부 교과전형과 교과 성적 외에 비교과 활동까지를 전반적으로 고려하는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나뉜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과거에 입학사정관제로 불리던 것으로 대입전형 가운데 가장 복잡하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경우 대학마다 전형요소 및 반영 비율이 제각각인데, 이 같은 복잡성 때문에 선발의 공정성이나 신뢰성과 관련하여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고 컨설팅 등에 따른 사교육 유발효과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이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계층이동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소지가 상당함을 시사한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계층이동을 저해할 개연성이 있다는 점은 그 원형인 입학사정관제가 처음 미국에 등장하게 된 배경을 통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입학사정관제는 미국에서 1920년대에 처음 등장했는데, 이 제도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주류세력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에 동유럽에서 유대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전통적인 학업성취 기준 학생 선발을 고수할 경우 백인 주류집단 자녀들이 유수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이에 따라 주요 대학들이 신입생 선발 기준에 학업성취 외에 교양, 인성, 지도력 등과 같은 주관적 평가 요소를 반영하여 대학의 이익에 부합하는 계층 자녀들에게 입학을 허가하는 타개책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어떤 철학과 원칙 아래 운용되는가에 따라 계층이동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이 전형의 비중이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학교교육의 정상화와 관련하여 갖는 각별한 의미와 효과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학생부 종합전형은 그간 당연시되었던 성적에 따라 한 줄로 세우는 방식의 입시에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기계적 상대평가가 우리 교육에 끼친 엄청난 폐해를 생각할 때 학생부 종합전형은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적합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지원자가 자신의 꿈과 끼를 다듬고 구현하는 데 쏟은 노력, 열정, 결과를 대학이 평가하고 보다 나은 자기계발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암묵적 합의를 전제로 도입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학생부 종합전형이야말로 교육의 본령에 가장 충실한 전형방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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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강화 필요 

이처럼 학생부 종합전형은 분명히 미래지향적 대입전형으로서의 미덕을 갖고 있지만, 계층이동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로도 작용할 수도 있다. 교육이 부와 신분의 대물림을 고착화시키는 핵심기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마당에 학생부 종합전형이 지닌 이런 제한점은 극복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부 종합전형의 취지는 충분히 살리면서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주요 대학에서 소외계층 선발에 배전의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은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다. 주요 대학에서 이전보다 소외계층 출신을 더 많이 선발하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이들에 대한 적절한 사후관리를 통해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야 대입전형에서 이루어지는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사회의 역동성 및 활력의 제고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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