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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진흥법은 인성교육을 진흥시킬 수 있을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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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6월10일 20시5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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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진흥법은 인성교육을 진흥시킬 수 있을까?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되어 7월 21일부터 시행된다. 이제 교육부장관은 5년마다 인성교육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하여야만 하고, 교육감은 그 종합계획에 의거하여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시행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여야 한다.

 

법 조항을 검토하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런 법을 제정해야 할 정도로 학교가 인성교육에 손을 놓고만 있었나, 하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인성교육을 아주 넓은 개념으로 접근해 보자. 학교는 이미 적잖은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 사실 넓게 보면 교사들의 모든 교육활동이 인성교육과 관련이 있다. 학생들이 등교할 때부터 하교할 때까지 끊임없이 진행되는 생활지도만 해도 그것이 인성교육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은 아침의 교문지도부터 종례 후의 청소지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하루 종일 이루어지고 있다.

 

인성교육을 좁은 개념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그래도 마찬가지다. 학교는 많은 양의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 어쩌면 과도하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는 인성교육을 위한 정규 교과까지 존재한다. 초등학교 1-2학년의 바른생활, 초등학교 3-6학년과 중학교의 도덕, 고등학교의 윤리(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 과목이 그것이다. 수시로 이루어지는 교장의 훈화 말씀만 해도 아마 그 횟수가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진행되는 인성교육의 질이 높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학교가 인성교육을 하고는 있지만 제대로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가 이미 상당한 양의 인성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성교육진흥법은 그것이 인성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해야만 법 제정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교육의 양만을 늘리는 데에 그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성교육진흥법을 시행되면 인성교육의 질적 수준이 높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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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학교가 질 높은 인성교육 제대로 못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학교는 그것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인성교육진흥법은 즉각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찌 보면 학교는 그 동안 질 높은 인성교육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었다. 학교가 질 높은 인성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학교의 제도와 시스템, 교육과정, 입시 상황 등 많이 것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바뀌지 않은 채 여전히 그대로다. 

 

바뀌어야 할 것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되는 인성교육진흥법은 학교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학교는 인성교육진흥법에 어떻게 대응할까? 인성교육의 ‘양’을 늘리는 방향으로 행동할 것이 백 퍼센트 확실하다. 그것도 어떤 특정한 형식과 틀을 갖춘 인성교육의 양만을 늘릴 것이다.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않은 인성교육은 교육부와 교육청으로부터 인성교육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어쩌면 진짜 효력이 큰 인성교육, 예컨대 교사와 학생과의 인격적 관계맺음을 통해 진행되는 인성교육의 양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교육부가 파악할 수 있는 특정 형식의 인성교육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다보면 아무래도 형식을 갖추지 않은 인성교육에는 이전보다 더 적은 에너지를 쏟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인성교육의 ‘질’이란 것은 교육부나 교육청이 명료하게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교육부가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인성교육의 양이다. 그것도 어떤 특정한 형식과 틀을 갖춘 인성교육의 양만을 간신히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인성교육진흥법은 교육부가 인성교육이라고 인지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형식을 갖춘 인성교육의 양만을 대폭 늘리는 쪽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것은 학교가 아닌 제3의 기관이나 단체를 동원해도 마찬가지다. 법 조항을 살펴보니 법을 만든 사람들은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을 학교가 아닌 제3의 기관이나 단체에 맡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 점은 법 제12조(인성교육프로그램의 인증)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데 학교가 아닌 제3의 어떤 기관이 인성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설사 그들이 대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해도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교장의 훈화 말씀을 생각해보자. 내용만 보자면 교장의 훈화는 대부분 주옥같은 말씀들이다. 하지만 그 말을 제대로 귀 기울여 듣는 학생은 많지 않다. 주옥같은 내용을 교장이 단순히 학생들에게 말했다고 해서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이 주옥같은 프로그램을 단순히 학교에서 운영했다고 해서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인성교육은 지식 교육과는 성질이 많이 다른 것이다. 그 내용이 학생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제대로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상황에서 교장이 훈화 말씀을 무작정 더 길게 더 자주한다고 생각해보자. 학생들은 교장의 훈화를 이전보다 더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은 점점 더 교장의 훈화를 귀찮은 잔소리로만 생각할 것이다. 제3의 기관이 개발한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인성교육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의해 진행되는 학교폭력예방교육과도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른 것이다. 학교폭력예방교육 또한 교장의 훈화말씀처럼 학생들이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교전담경찰관에 의해 진행되는 교육만 해도 학생들이 잡담하고 떠드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꽤 많다. 하지만 학교폭력예방교육은 그런 경우에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학교폭력을 저지르면 처벌 받는다는 메시지 하나는 분명히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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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성교육은 다르다. 학생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인성교육의 항목으로 적시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 그 어느 것도 학생들의 마음에 스며들지 못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다.   

 

인성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지 못하고 그냥 인성교육의 양만 늘리고 마는 데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문제는 특정한 형식을 갖춘 인성교육의 양을 늘리는 데에 학교의 에너지를 쏟다보면 인성교육의 전체적 질이 이전에 비해 더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특히 염려되는 것은 교육부의 여러 가지 후속조치들이다. 예견되는 교육부의 후속조치들은 인성교육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육부는 즉각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 인성교육을 입시와 연결시키려 할 수 있다. 이것은 과도한 염려가 아니다. 이미 언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다. 실제로 입시와 인성교육이 연결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인성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학생들은 정말 인성이 훌륭한 학생들일까? 혹시 위선적인 행동과 말을 잘하는 학생들이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그로 인해 학교의 인성교육이 더 황폐화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는 그동안 자신들이 추진하는 사업에 교사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승진가산점제 자주 이용해왔다. 그런데 승진가산점제는 거의 모든 경우에 교육에 마이너스가 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인성교육법의 후속조치로 교육부가 승진가산점제도를 이용하면 어떻게 될까? 인성교육에 도움에 되기는커녕 해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인성교육의 범위는 더더욱 협소화되고 인성교육의 내용은 더더욱 형식에 치우칠 것이 분명하다.

 

‘인성교육진흥법’은 인성교육을 진흥시킬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부정적이다. 여러분은 생각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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