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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여성’리더십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7월10일 21시1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1시54분

작성자

  • 정현주
  • (사) 역사ㆍ여성ㆍ미래 상임대표

메타정보

  • 25

본문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여성’리더십

 

 

 지난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두고 여당이 내홍에 휩싸였다. 정국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고, 애초에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목적이었던 민생의 정치하고는 거리가 먼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거의 모든 신문이 헤드라인을 ‘배신의 정치’로 뽑았다. 서늘한 얘기였다. 다시 발언 내용을 읽어보니 전체적으로 공감이 가고 절절히 옳은 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메르스’ 사태로 몸도 마음도 힘든 국민으로서는 마른하늘의 날벼락만큼이나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같은 여당의 대표를 국무회의에서 그렇게 서슬 퍼런 단어를 동원해서 얘기해야 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얼굴 맞대고 설전을 벌이거나 따지거나 설득할 수는 없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희망

  이 기회에 ‘여성’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애초에 걸었던 희망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해방이후 70년 동안 민주적 절차에 따라 뽑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고 앞으로 언제 또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려운 이 시점에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4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2014년 여성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절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인재를 기른 것도 어머니이며 처진 가장의 어께에 힘을 실어준 것도 여성이었다”며 “새로운 변화의 길에 여성들 안에 잠재된 섬세함과 강인함, 인내와 저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면 변화에 부응하는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바로 여성리더십의 장점을 말한 것으로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통령이 국민에게 보여준 것은 전혀 여성(적)리더십을 가진 여성리더의 모습은 아니었다. 최근의 국무회의 발언이 단적으로 이를 보여주었다. 

  박대통령이 대통령후보였던 시절, 일부 여성계는 우려를 표명했다. 박후보에게는 ‘여성성’이 없고 ‘명예남성’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없고 단지 ‘남성성’으로 얘기되는 ‘냉정’ ‘정치적 계산’ ‘통제’ ‘군림’이 연상되는 전형적 남성적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출산과 양육,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등의 경험이 없다, 정치적 파워게임에만 익숙하다, 여성의 멘토가 될 수 있나” 등의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 박후보를 지지했던 여성들은 다른 면을 보았다. 박후보에게 보이는 소위 ‘남성성’은 가족사의 특별한 배경이 있고 정치를 오래해 왔기 때문에 기존의 정치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습득된 사고나 행동방식이 표출되는 것으로 보고, 내면에 ‘여성성’을 갖고 있어 이전의 대통령과는 다른 새로운 ‘여성’ 대통령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기대하고 지지했다. 앞에서 인용한 축사에서 보듯이 박후보는 여성으로서 여성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으며, 여성특유의 부드러움, 섬세함, 다정함, 배려, 섬김, 유연성 등 대체로 여성성이라고 표현되는 덕목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이 되면 이러한 특성이 국정에 반영되리라는 것이다. ‘여성’이 대통령이라는 사실만으로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견고한 남녀유별사회’의 벽을 깨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데 대체로 동의했다. 나아가 기본적인 여성성에 남성적 카리스마가 더해져 이상적인 ‘여성’ 대통령의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대도 했다. 

  그러나 작금의 여러 가지 사태로 보면 이러한 기대에 회의가 든다는 의견이 많다. 우선 대통령의 주변에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든다. 비록 기업현장이나 공공기관 등에서는 여성들의 약진이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이 정부가 이전의 정부에 비해 여성의 등용에 매우 인색하고 여성의 능력에 대한 인식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점이다. 여성 등용 외에 무엇보다도 정국을 운영하는 방식이 남성적 정치의 폐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여성’리더십의 전통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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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사회 ‘여성’리더십, 오늘날 여성리더십의 원형 

  인류는 시대마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역사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시대마다 고유한 역할과 사명도 있으며, 시대를 통관하는 불변의 역할도 있다. 불변의 역할은 대대로 여성의 유전인자를 통해서 개개인에게 전해오는 것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나 내외법이 엄존했던 가부장제 조선시대에도 여성들은 ‘안채문화’의 리더였다. 여성들에게 정치나 사회활동이 허용되지 않았던 그 시대, 가정과 가문이라는 틀에서 활동했던 한계는 있으나 당시 여성들은 여성 특유의 기질을 발휘하여 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조선시대 여성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선후기 여성리더십의 특징으로 네 가지를 꼽고 있다(한희숙, “조선후기 양여성의 생활과 여성리더십: 17세기 행장을 중심으로,” 『여성과 역사』 9, 2008.12). 첫째는 설득의 리더십이다. 어머니가 된 여성들은 자손들을 교육을 관리하고 성공으로 이끌며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 여성의 임무로 생각했다. 여성스스로 여훈서과 유교경전을 두루 섭렵하며 공부하고 자기 개발을 위해 책읽기와 글쓰기에 노력하였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현명하게 자녀를 설득하여 교육을 하였다.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는 두 아들이 잘못하면 회초리를 들었으나 배움을 재촉하였다. 가문을 이어갈 아들의 성공을 위해 자극을 주고 힘을 북돋아 주면서 자손의 성공을 통해 스스로 성취감도 달성하였다. 

  두 번째는 치가(治家)의 리더십이다. 아무리 당시 사회가 여성의 사회활동을 금했던 시대일지라도 집안이 위기에 처했을 때 여성들은 직접 경제활동에 나서 집안을 꾸려나갔다. 삯바느질, 길쌈, 양잠 때로는 가지고 있는 가재도구나 옷가지를 팔아 가족을 부양하였다. 어려운 살림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 검소와 절제는 기본이었다. 병자호란, 붕당정치 등으로 양반들이 귀양을 가는 등 부침이 심한 사회에서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남편이나 아들을 대신하여 토지와 노비, 가문의 식구들을 ‘법도있게, 치밀하게’ 또한 헌신적으로 집안을 이끌어 가는 치가의 리더십을 보였다. 

  셋째는 보살핌의 리더십이다. 양반가는 대부분 종가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양반가 여성들은 가족과 가문의 화목을 위해 친인척을 관리하는데, 박하거나 너무 후하지 않고 균등하게 하고, 어려운 가족을 돌보았다. 서출과 노비, 걸인도 불쌍히 여기고 품었다. “베푸신 것이 깊어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여러 종들이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였다. 여러 친척들은 은혜로움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했다.”는 경우도 많았다.

  넷째는 섬김의 리더십이다. 양반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일은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이었다. 여성들은 효를 바탕으로 부모와 시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집안사람들을 모셨다. 이는 타인의 모범이 되었고, 가문의 유지를 위한 봉제사를 통해 나타났다. 제사를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성을 바쳤다. 또한 손님접대, 즉 접빈객은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었다. 가문을 유지하기 위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접빈객을 위해 여성들은 술과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다. 자신의 삶보다는 가정과 가문을 먼저 생각하고 이와 관련된 사람들을 배려하는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조선시대 양반여성들의 리더십은 국내정세와 경제적 궁핍 등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과 가문 공동체를 살리는 ‘살림의 리더십’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분히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것으로 여성은 삶의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다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신분제와 가부장제 사회구조 속에서 가족중심, 가문중심의 리더십으로 시대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여성독립운동가들, 살림의 리더십 실천

  조선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문호를 개방한 후 멸망의 위기를 맞게 되었고, 결국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함께 가문이나 가족의 범위를 넘어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는 사고와 행동의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여성의병장 윤희순은 구한말 첫 번째 여성리더였다.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후 가족이 모두 의병운동에 참여하였다. ‘안사람의병가’를 지어 “---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없이 소용있나, 우리도 나가, 의병하러 나가보대,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시정 받들쏘냐 ---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며, 여성들을 모집하여 의병훈련에도 적극 참여했다. 후에 일제의 식민지가 되자 만주로 가서 군자금 모금 등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남자현도 남편이 의병으로 사망하자 25세에 과부가 되어 유복자를 키우면서 양잠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북만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하며 여자교육회를 설립하고, 안창호 등 애국지사를 옥바라지하였다. “너의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너의 자손에게 똑같은 유언을 하여 내가 남긴 돈을 독립축하금을 바치도록 하라”고 유언하였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일제에 의해 사형판결을 받자 옥중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 그보다 더한 영광 없을 지어니 비굴치 말고, 왜놈 순사를 호령하며 생을 마감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자식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설득의 리더십을 볼 수 있다. 조선의 독립과 결혼한 김마리아도 일제강점기에 대한애국부인회 취지문에서 “우리부인도 국민중의 일분자이다. 국권과 인권을 회복할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고 후퇴할 수는 없다”고 했으며, “세상의 반, 여성이 같이해야 조선 독립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역사학자며 독립운동가인 신채호의 부인 박자혜는 간호사(산파)로 가정에 무심한 남편 대신 자녀를 기르고 뒷바라지했다. 심한 생활고에 둘째아들이 영양실조와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신채호에게 어려운 사정을 호소하니 “정할 수 없으면 고아원으로 보내라‘는 편지를 받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신채호가 저술에 필요한 책을 요청해오면 끼니를 굶은 한이 있더라도 구해서 보냈다. 그야말로 처절한 헌신이었다. 임시정부의 며느리 정정화도 집안이 모두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6차례나 국내에 잠입하였고, 임시정부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안살림을 맡아했으며 한국여성동맹을 조직해 “국내외 부녀는 총단결하여 전민족 해방운동과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민주주의 신공화국을 건설하자”는 강령을 선포하였다. 오광심도 “우리 여자가 없으면 세계를 구성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우리 민족을 구성하지 못할 것이다”라면 한국여성의 존재성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자식을 올바르게 기르고자 하는 설득의 리더십과 더불어 가족을 이끌어간 치가의 리더십, 임시정부 등 다른 독립운동가에 대한 보살핌과 섬김의 리더십을 실천했다. 여기에 여성도 독립운동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등 근대적 여성의식이 뚜렷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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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성’보다 ‘여성성’을 더 드러냈으면....

  광복 후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한국여성의 유전인자(DNA)에는 자녀교육에 대한 설득의 리더십, 가정을 꾸려가는 치가의 리더십, 어려운 사람 등 가족과 주변을 보살피는 보살핌의 리더십, 겸손함의 섬김의 리더십, 한마디로 ‘살림의 리더십’이 있다. 가족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전체를 살리려는 살림의 리더십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시대적 변화에 따라  ‘여성성’의 리더십에서 ‘남성성’을 더하는 리더십으로 발전했다고도 생각된다. 

  올해 인구학적으로 한국사회가 ‘여초(여초) 시대’에 들어섰고, 대졸 진학률도 남성을 능가하였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의 역할에 큰 변화가 요구된다. 여성과 남성이 사회의 모든 역할을 반씩 나누어 하자는 ‘남녀동수 운동’도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볼 때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런 기대를 해본다. 지금까지는 ‘여성성’보다는 ‘남성성’을 더 보여주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DNA에도 분명히 있는 ‘여성성’을 좀 더 드러내는 것이 시대적 변화, 국민의 눈높이에도 더 맞는 일이 되지 않을까 제안을 해본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같이 보살핌과 설득과 섬김의 리더십, 그리고 알뜰살뜰 살림을 꾸리는 치가의 리더십을 실천적으로 눈에 띄게 드러내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세계적으로도 몇 사람 안 되는 여성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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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7월10일 21시1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1시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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