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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를 어찌할 것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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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9월04일 18시1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20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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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수학 포기 자’를 줄인 ‘수포자’란 신조어가 일상어가 되었다.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이 현저히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험 감독을 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학교 정규 시험이건 수능 모의고사 시험이건 시작한지 몇 분 만에 엎드려 잠을 자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은 시험이 수학시험이다. 다른 시험 시간에도 그런 학생들이 있지만 수학시험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 격차가 눈에 뜨일 만큼 큰 편이다. 

 

얼마나 많은 학생이 수학을 포기하고 있는가?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박홍근 의원실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초등생의 36%, 중학생의 46%, 고등학생의 60%가 수학을 포기하고 있다. 고교 교사인 필자의 느낌으로는 전혀 놀라운 수치가 아니다. 실제로는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교육부가 나름의 대책을 내놓았다.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이 그것이다. 지난 7월 31일 교육부가 발표한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試案)’에는 ‘수포자’를 줄이려는 의도가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 이 교육과정은 초등학교에서는 2017년에 1∼2학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는 2018년에 1학년부터 적용된다. 

 

핵심 방안의 하나는 교과 내용을 20%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과정에 평가유의사항을 삽입하여 교사들이 난이도 높은 응용문제를 출제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수학 교과 내용을 20% 정도 축소하고 시험문제를 지나치게 어렵지 않게 출제하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학습해야 하는 수학의 분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많다. 설사 20% 정도 줄인다할지라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물론 교육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분석에 의하면 예상되는 학습량 감소폭은 교육부의 주장과는 달리 8.7%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정도만이라도 줄어든다면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 바람직한 일이다. 

 

2.

그러나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설사 교육부의 주장대로 학생들의 학습 분량이 20% 줄어든다 할지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20% 정도의 학습량 감축으로 수포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응용문제의 출제를 금지한다고 해서 수포자가 사라질까? 그렇게 하면 수포자의 비율을 지금의 절반 정도로까지, 예컨대 60%에 이르는 고교생 수포자의 비율을 30% 정도까지 낮출 수 있을까? 어렵다. 교과 내용이 20% 줄어도 수포자는 여전히 높은 비율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 고등학생의 수포자 비율은 여전히 50% 이상인 상태로 남을 것이다. 

 

결국 수포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교육부의 방책은 역부족이다. 어찌해야 할까? 수학 교과 내용을 더 많이 줄이고 시험 문제를 더 현저히 쉽게 출제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수포자 비율을 지금의 절반 정도로까지 낮추려면 과연 수학 교과 내용을 얼마까지 줄여야 할까? 20%를 훨씬 넘어서는 분량, 어쩌면 지금의 절반이나 그 이상으로 줄여야 할런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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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학습량 감축에 찬성했던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많은 분량의 축소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회 발전에 해로울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더 높은 수준의 수학 지식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수포자 문제를 해결한다는 당위성 하나로 수학 학습량을 무작정 줄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위권 학생들의 공부를 무가치한 행위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학습 분량을 축소하고 문제를 쉽게 출제한다고 해서 입시경쟁의 총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학습 분량을 축소하고 시험을 쉽게 출제해도 입시경쟁의 치열함, 즉 입시경쟁의 총량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입시경쟁의 치열함은 학습량이나 시험난이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제도, 문화, 의식체계, 인센티브시스템 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변화지 않으면 입시경쟁의 총량이 변하지 않는다. 입시경쟁의 총량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학 교과 내용만 대폭 축소하고 시험을 쉽게 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생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삶의 더 가치 있는 곳에 투여할 수 있게 될까? 그렇게 되면 다행이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오로지 차원 낮은 공부에 더 많이 투여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예컨대 상위권 학생들은 시험에서 단 한 개의 문제도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결국 적절한 선을 넘어서는 지나친 학습량 축소와 쉬운 시험은 입시경쟁의 차원을 낮추어 학생들의 공부를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최상위권 학생은 물론 상위권 학생, 어쩌면 이젠 중위권 학생들까지 자신의 에너지를 높은 수준의 수학을 공부하는 일에 사용하지 않게 될 수 있다. 

 

3.

학습 분량 축소와 쉬운 시험이라는 방안이 갖는 한계는 뚜렷하다. 수포자 문제 해결을 이 방안으로만 해결하려하면 더 나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우리는 다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첫째. 단계별 학습 과정의 도입이다. 

 

수학은 낮은 단계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해야 그 보다 높은 단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과목이다. 하위 단계의 내용과 상위 단계의 내용 간에 연계성이 아주 강한 과목이다. 낮은 단계의 수학을 온전하게 습득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의 수학을 이해할 수 없다. 다른 과목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수학은 그러한 속성이 현저히 강하다. 어느 한 단계의 내용을 온전히 습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음 단계의 내용이 일방적으로 주어지게 되면 학생들은 수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 단계에 맞는 공부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학습량이 설사 20% 축소되어도 수학 포기 학생의 비율은 여전히 높은 상태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생들이 낮은 단계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한 상태에서 높은 단계의 학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된다면 수학 포기 학생 비율은 상당히 낮아질 것이다.  

 

둘째,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학 교과 내용을 20% 축소하고 단계별 학습 과정을 도입해도 현재의 고등학교에서는 여전히 상당수의 수포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상당수 학생에게 수학은 다른 과목에 비해 현저히 어려운 과목이다. 고등학교 수학 내용을 모든 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것은 결코 이성적인 생각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고등학교 수학을 왜 모든 학생이 공부해야만 하는가? 

 

50~60% 학생들이 수학 시간에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엎드려 자고 친구들과 떠들고 장난치는 것은 분명히 커다란 문제다. 하지만 그 학생들이 수학 수업을 받지 않고 그 대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다른 것을 공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학생들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수포자가 아니다. 그 학생들은 수학 대신 다른 것을 공부하는 학생들일 뿐이다. 

 

최상위권 학생이나 상위권 학생들이 학교에서 오로지 낮은 단계의 수학만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또 문제가 너무 쉬워져서 우수한 학생들 간의 입시경쟁이 차원 낮은 경쟁이 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수포자 문제에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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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절반 정도가 수학 수업을 전혀 받지 않고 그 대신 다른 수업을 받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어차피 수학을 포기한 학생인데 그 학생들이 수학 수업을 받지 않는 것이 왜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어차피 그 학생들은 수학 시간에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엎드려 자거나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을 뿐이다. 때로는 장난치고 떠들다가 교사에게 야단을 맞고 있었을 뿐이다. 이 학생들이 수학을 대신하여 다른 수업을 듣는다면 그것은 그 학생들에게 조금도 손해되는 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아무런 폐해가 없다. 

 

물론 초등학교나 중학교 단계에서 학생들이 수학을 버리게 할 수는 없다. 초중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수학 수업을 받아야 한다. 다만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 단계에 맞는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수포자를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릴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교육과정을 마련해 줘야 한다. 

 

4.

단계별 수업 과정의 도입, 고등학생들에게 수학 수업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열어주는 것, 이 방안들은 단지 수포자 문제의 해결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학교에 상당수 존재하는 다른 포기자들, 예컨대 영포자(영어 포기 학생) 문제의 해결에도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나아가서는 국포자, 사포자, 과포자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두 가지 방안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처음 개척해야 하는 미지의 일은 아니다. 상당수 선진국에서 하고 있는 것을 모방만 해도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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