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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회장, 현대증권을 팔 마음이 있는 건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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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10월13일 20시0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8시52분

작성자

  • 김상조
  • 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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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회장, 현대증권을 팔 마음이 있는 건가

  한국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위험요소는 과다부채 문제다. 정부도, 가계도, 기업도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있다. 국민경제의 세 경제주체 모두가 부채 압력에 시달리고 있으니, 경제에 활력이 생길 리가 없다. 원리금 상환 부담에 소비나 투자를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다부채 문제가 지급불능 사태로 비화되어 금융위기를 초래할 확률을 평가한다면, 세 주체 간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경제학자가 이런 말을 하면 무책임하다고 힐난하겠지만, 레토릭을 섞어 표현하자면, 정부 부채는 증가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렇지 절대 규모 측면에서는 아직 10년 정도의 여유는 있다고 본다. 가계 부채가 시한폭탄인 거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3년 내에 터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기업 부채는 당장 내일이라도 문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게 뭔 소리냐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결과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미국⋅일본 등 선진국 기업보다 더 건전하고, 일부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이 수백 조원에 달한다는데, 기업 부채 문제가 정부⋅가계 부채 문제보다 더 심각한 위험요소라니 어리둥절할 분들이 많을 줄 안다. 

  이게 통계의 마술이다. 평균적으로 보면, 한국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은 상당히 양호하다. 법인세 내는 기업을 전수조사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으로 전산업의 부채비율은 141.0%이고, 제조업만을 보면 92.9%에 불과하다. 1997년 당시 평균 400%에 이르던 부채비율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그러나 국민경제의 활력과 안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평균기업’이 아니라 ‘한계기업’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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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기업, 이른바 좀비기업의 비중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시장에 불확실성이 팽배하고, 결국 시장은 모든 기업을 부실기업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외부감사 대상기업을 표본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즉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하는 부실징후기업이 31.9%(대기업 28.1%, 중소기업 37.0%)나 된다. 재벌도 온전하지는 못하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재벌그룹의 연결재무제표를 만들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재벌과 그 친족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중견 내지 군소 재벌 중 상당수가 부실징후를 보이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STX, 동부, 동양, 웅진, 대한전선 그룹 등이 이미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갔거나 사실상 해체되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최근 정부도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시급한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임박 및 중국의 저성장 추세 등 국제경제 환경을 감안할 때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할 것 같지가 않다. 살아 있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보다 죽어가는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것이 열배 백배는 더 어려운 일인데, 관련 법제도와 관행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9일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한 최경환 부총리가 한국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작업에 정부가 적극적 중재자로 나서겠다.”고 밝혔다는데, 그래서 더 걱정이다. 언제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서 구조조정이 지체되었는가. 정부 개입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 문제 아니었던가.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가.

  시시콜콜 따지기보다 사례 하나만 제시하겠다. 현재 가장 심각한 부실징후 그룹 중 하나가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다. 놀라지 마시라. 경제개혁연구소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연결 부채비율이 무려 879.1%에 달한다. 2013년 말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게 이 정도다. 연결 이자보상배율은 아예 (-)다. 즉 그룹 전체가 영업적자다. 더구나 이런 부실징후 상태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즉 그룹 출자구조의 맨 꼭대기에 있는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열사를 동원한 부당지원행위를 계속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결국 작년에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MOU)을 맺고, 총 3조원에 상당하는 자구노력에 들어갔다. 그 핵심 중 하나가 현대증권을 포함한 금융계열사들을 매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3조원의 자구노력을 완전히 이행한다고 하더라도, 현대그룹의 재무구조가 정상화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부실하다. 자구노력 계획 자체가 너무 느슨하게 짜여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구노력의 진정성이다. 최근 현대증권을 일본의 금융그룹인 오릭스에 매각하기로 계약을 맺었는데, 이게 진짜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겼다가 다시 되찾아오는 것이라는, 이른바 파킹딜(parking deal)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 끝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계약상대방인 페이퍼컴퍼니의 출자자 구성이 밝혀졌는데, 인수한다는 오릭스보다 매각한다는 현대상선이 더 많은 돈을 댔다. 그것도 유일한 후순위 투자자로. 이상하지 않은가. 또한, 옵션계약을 통해 여타 투자자들에게 연 15%의 수익을 보장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 예금금리가 연 2%도 안되는 세상인데, 나도 이런 계약에 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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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4일에 증권선물위원회가 현대증권의 대주주 변경 심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서류 보완 문제로 심사 일정이 재차 연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안건 상정 여부 또는 심사 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만약 감독당국이 오릭스로의 대주주 변경을 승인한다면, 즉 파킹딜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대증권 매각을 자구노력으로 인정한다면, 이번에도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물건너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다면, 최경환 부총리가 이야기한 ‘적극적 중재자로서의 정부의 역할’은 관치금융을 은폐하는 변명에 불과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국제적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책임자에게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조속히 상향조정할 것을 기대한다.”고 당부한 최경환 부총리는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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