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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지는 법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12월23일 18시5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35분

작성자

  • 김낙회
  • 서강대 초빙교수, 前제일기획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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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지는 법

 

 연말이 되면 이런저런 모임이 많아진다. 그 동안 통 소식이 없던 친구들도 송년회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연락해 온다. 모이면 자연스럽게 건배사를 하고 술잔을 나눈다. 얼마 전 들었던 건배사 중에 “당신 멋져”가 인상적이었다. 당당하고 신나고 멋있게 그리고 가끔은 져주며 살자는 뜻이란다. 져주며 살자는 구호가 아주 신선하게 들렸다.그런데 솔직히 요즘  져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두가 이기지 못해 안달이다.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기를 쓰고 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어릴 적 외 할아버지께  “지는 게 이기는 거여” 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어떻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일 까 논리적으로 따져 보아도 도저히 납득이 안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사회 생활을 해가며 이 말이 어떤 뜻인지 알게 되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는 것이냐 져주는 것이냐 일뿐 의미는 같지 않을 까 싶다.

 

여기서 져준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것에 대해 타협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원치 않는 힘에 의해 비굴하게 져주는 것은 더더욱 안될 일이다. 우리가 어떤 협상을 할 때 거짓말이나 모함, 그리고 상대방이 약속을 깨거나 과도한 양보를 요구할 때도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된다. 져 주는 것은 상식이 통하고 윤리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져 준 사람이 손해보지 않고 기꺼이 져 주는 대열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동안 우리사회에서는 지는 사람, 양보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일이 더 많았다. 약한 사람에게 강하고 강한 사람에게 약한 것이 사회 정의처럼 되어 있다. 얕 보이면 가차없이 공격 당하고 힘이 없으면 짓밟힌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 중에 강한 척 해야 하고 절대 양보하지 않는 풍조가 생겨 난 것이다. 협상에서도 대화와 타협 보다는 억지 부리고 생 떼쓰고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치열하게 투쟁 하는 현상이 비일비재 하게 된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자. 입법 과정이나 국정 현안에 대해 여당이나 야당 또 같은 당 내에서 서로 다른 파벌끼리 한치 양보도 없다. 진영 논리만 있을 뿐이다. 노동개혁 이슈를 놓고도 정치권이나 노사간에 절대 양보는 없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도 마찬가지다. 첨예한 대립만 있지 타협이나 양보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들에게  한 번쯤 “쿨 하게 져주면 어때”하고 기대한다면 지나친 순진함일까?

원래 쿨 하다는 것은 “멋지다” 혹은 “세련되다”라는 의미지만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고 깔끔하게 감정을 처리하거나 감정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말하기도 한다. 즉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쿨하게 져줄 수 있을까?

 

잘 져주기 위해서는 먼저 역지사지 정신으로 상대방을 인정해야 한다.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언제나 상대가 있어야 내가 존재하는 법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 관점으로 바라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을 수도 있다. 또한 져 주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먼저 손 내밀고 가진 자가 끌어안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이기려고만 들면 이기는 것도 힘들지만 설령 이긴다 해도 후유증이 있거나 지나친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화를 입을 수 있다. 장자에 나오는 유비는 잘 지는 법, 쿨 하게 지는 법을 통해 사람과 민심을 얻었다 .이에 반해 조조는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나 이기고도 욕을 먹었다. 과연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 일까? 덕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결국에는 진정한 승자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정치는 민심을 얻는 것 이라고 여의도의 정치인들 모두가 눈만 뜨면 얘기하고 있지 않는가?

 

 

두 번째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당장 벌어지고 있는 현상만 놓고 유, 불리를 따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미래가치나 수익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 인수 합병의 예를 들어보자. 적정 인수가격을 놓고 밀고 당긴다. 그때 현재 시점에서 평가한 가치보다 얼토 당토 않게 높은 가격을 주고 인수 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주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당장 주가가 떨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인수 측의 CEO가 이런 것을 모르고 의사 결정할 리 만무하다. 미래가치, 전략적 가치가 있다면 가격을 더 주고서라도 인수 결정을 할 것이다.  레노버가 IBM을 인수 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고 그래서 결국 레노버는 IBM 인수 후 세계 3위 PC기업으로 도약을 할 수 있었다. 당장은 손해 보는 듯싶었지 만 결국 이득을 본 것이다. 파이를 키워서 이득을 키우는 것 또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의 저자 스튜어트 다이아몬드는 “나에게 집중하는 감정은 협상에 방해가 되지만 상대에게 집중하는 공감은 협상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장자에 나오는 조삼모사의 우화를 생각해보자. 저공은 식구들의 입을 덜어가며 원숭이들을 키웠으나 무척 궁핍해져 원숭이들에게 하루 동안 상수리 몇 알 밖에는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공이 하루 동안 상수리 일곱 개를 주는 것은 주인의 처지로선 최선을 다한 제안이고 원숭이들은 또한 이를 받아들이며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은 소통이다. 갈등은 머리로 푸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풀어야 한다. 

 

박노해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지는 게 이기는 거란다. 보아라 꽃이 진 자리에 눈부신 열매가 익어 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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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12월23일 18시5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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