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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학기제와 2015년 경제정책 방향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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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1월24일 07시5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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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학기제와 2015년 경제정책 방향
1.
정부가 지난해 12월22일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가을학기제(9월 신학기제)를 비중 있게 다룸으로써 가을학기제가 교육의 최고 화두로 부상했다. 
정부는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해 추진하려는 노동, 교육, 금융 등의 구조개혁에서 가을학기제의 도입을 교육부문 구조개혁의 핵심 방안으로 판단한 듯하다.
 
경제정책으로 제시된 것이지만 교육개혁에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니 경제와 교육 두 측면에서 가을학기제의 타당성을 살펴보자.
 
2.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3월학기제를 운영해왔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발전이 3월학기제가 시행되는 기간에 이루어졌다. 이 점을 생각하면 3월학기제를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물론 이전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어도 상황이 변해 이제는 경제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는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2015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는 가을학기제 도입의 근거로 ‘학령기 인구 감소에 대한 대비’와 ‘인력의 국제이동 가속화 감안’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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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기 위한 방책으로 가을학기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너무나 황당해서 정책입안자들이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다. 가을학기제는 학령인구 감소의 그 어떤 대비책도 될 수 없다. 지금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가을학기제가 도입되면 아이를 많이 낳기라도 한단 말인가? 황당한 생각이다. 3월학기제는 학령인구가 많을 때 적합하고, 가을학기제는 학령인구가 적을 때 적합한 제도라는 얘기인가? 이 역시 황당하다. 
 
인력의 국제이동이 증가하는 상황을 감안하는 것은 옳지만 그 방안으로 가을학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3월학기제로 인한 유학생들의 불편을 경제노동인력 전체의 불편으로 일반화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가을학기제가 도입되면 유학생이나 교환교수들의 편익이 증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외의 경제노동인력에게 주는 편익까지 크게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가을학기제를 통해 외국유학을 장려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학생의 외국 유학은 인구비율을 고려하지 않아도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학생의 수가 적어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최근 과도하게 많았던 외국유학생의 숫자가 줄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는데, 그것은 3월학기제로 인한 불편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미국 유학생을 이전처럼 우대하지 않는 한국 기업의 고용 태도 변화 등과 오히려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 방향> 그 어느 곳에서도 경제발전과 가을학기제의 연관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긴 시간과 엄청난 자원이 소모될 정책이 이렇게 허술한 논거에 의해 추진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가을학기제가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이니 정책입안자들은 경제학의 핵심개념인 ‘기회비용’이란 말을 잠시 떠올려 보면 좋겠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고 노동인력의 국제이동을 감안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정부는 가을학기제에 투여할 노력과 예산을 다른 곳에 돌리는 것이 옳다. 가을학기제에 투여되는 정도의 노력과 예산이라면 큰 효과를 낼 방안을 많이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3. 
가을학기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려면 우리사회와 정부가 가진 역량의 상당 부분이 투여되어야 한다.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학교는 상당 기간 동안 혼란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가을학기제는 그럴만한 교육적 가치가 있는 제도인가?
 
그동안 우리들이 우리교육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라 여겼던 것들을 다시 떠올려보자.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치열한 입시경쟁, 입시 위주 교육 (창의력을 기르지 못하는 주입식 암기식 교육), 교실(학교) 붕괴현상 등이 있다. 
이 문제들과 가을학기제의 반대 개념인 3월학기제를 비교해 보자. 과연 3월학기제가 우리 교육의 심각한 문제였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교육의 핵심문제들과 3월학기제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가? 즉 앞서 언급한 우리교육의 핵심문제들이 3월학기제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3월학기제가 가을학기제로 바뀌어도 우리교육의 핵심문제들은 개선되지 않는다. 가을학기제는 우리교육의 핵심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물론 가을학기제의 교육적 장점은 여럿이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장점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가을학기제를 시행하고 있기에 가을학기제를 도입하면 우리나라 학생의 외국 유학, 외국학생의 우리나라 유학, 해외 교수 초빙, 교환학생의 파견과 유치…… 등이 더 활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방학을 길게 하고 겨울방학을 단축하여 학사운영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도 흔히 언급되는 중요한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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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정도의 장점을 수십 개 언급했다고 해서 가을학기제의 시행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설사 그런 자잘한 편익 수십 개를 합한다 해도 가을학기제의 편익은 기회비용을 넘지 못한다. 
2012년 대선기간 중 온갖 교육정책들이 발표됐었다. 가을학기제는 새누리당(박근혜)의 대선교육정책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정책이다. 당시 새누리당이 내놓았던 대선교육정책에는 주옥같은 정책이 많았다. 2012년 7월 17일에 발표했던 공약 중 맨 앞의 공약인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운영’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 공약을 선진국 수준으로 시행하려면 사회와 정부의 엄청난 관심과 노력이 바쳐져야 한다. 학교는 몇 년의 과도기적 혼란을 감수해야 한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도 가을학기제의 시행보다 특별히 더 어려운 일은 아니다.    
 
( 물론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3월학기제와 가을학기제 중 어느 하나를 도입해야 한다면 고민의 여지없이 9월학기제가 바람직하다. 사실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5년으로 단축하는 것과 중고등학교를 통합하여 5년제로 하는 학제개편도 바람직하다. 학제개편은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 
 
4. 
 시야를 좁혀 가을학기제만 바라보면 가을학기제는 교육과 경제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되는 정책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우리의 시선을 오직 가을학기제로 향했을 때만 타당한 얘기다. 
우리는 가을학기제의 막대한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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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1월24일 07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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