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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5C) 포악한 군주 부생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2월28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2월22일 15시27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5

본문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   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   (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   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끝으로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14) 포학한 부생의 고명대신 처단 I (AD356)

 

중서령 왕어와 중서감 호문이 불길한 별자리 징조를 부생에게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 최근 패성(꼬리 없는 혜성)이 대각성(북쪽 하늘의 천왕상징 별)쪽으로 들어가고
  형혹성(화성)이 동정(별자리)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앞으로 3년  이내에 큰 변고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서둘러 덕정을 펼치시어 악운을 물리치십시오.“

 

부생은 코웃음 쳤다.

 

“ 나와 황후가 대좌에 오른 것 자체가 악운을 물리치는 일이요.
  태부 모귀, 상서령 양릉 및 좌복야 양안이 정치를 잘못해서
  그런 별자리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요.“

 

부생은 이들 조정 고명대신을 죽여 버렸다. 모귀는 황후의 외삼촌이었다. 부생은 우복야 조소와 중호군 조회 형제를 특별히 총애했다. 부생은 조소와 조회의 사촌형인 조구에게 상서령 자리를 주었다. 조구가 병이 있다며 극구 사양했다. 그리고 걱정으로 병을 얻고 죽었다.조소와 조회 형제는 아첨으로 부생의 총애를 얻은 사람들이다. 우복야 동영도 아첨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생 곁에는 강직한 뇌약아를 제외하면 거의 다 부화뇌동하는 아첨꾼 밖에 없는 셈이었다.

 

뇌약아는 정치를 어지럽히며 국정을 농단하는 좌복야 조소 무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조소와 동영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즉각 뇌약아를 참소했다. 부생은 눈엣가시 같은 뇌약아와 그 일족 36명을 죽였다. 여덟 명의 고명대신 중 다섯 명이 참살 당한 셈이었고 이 외에도 수 백 명의 신하들이 참혹하게 처형되었다. 뇌약아는 강족의 추장이었으므로 그의 일족이 참살 당하자 강족 무리들은 부생에 대한 지지를 거두었다.
   

(15) 포학한 부생의 고명대신 처단 II (AD357)

 

전진 사공 왕타는 고명대신으로써 강직하고 엄하였다. 우복야 동영과 시중 강국은 아첨으로 총애를 받은 사람들이라서 왕타는 그들을 원수처럼 적대시하였다. 조정에 등청하더라도 한 마디 말도 동영과 섞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걱정이 되어 왕타에게 이렇게 말했다.

 

“ 동영은 주군 부생의 총애를 한 몸으로 받는 사람 아닙니까.
  공께서는 의당 뜻을 좀 내리셔서 그와 접촉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왕타가 내뱉듯 말했다.

 

“ 동영이란 놈은 개나 돼지 보다 못한 놈인데
  한 나라의 선비가 그와 더불어 말을 섞는단 말이요?
  
마침 하늘 천기에 이상한 움직임이 나타나자 동영과 강국이 부생에게 일러바쳤다.

 

“ 오늘 하늘이 심하게 견책하는 것은
  귀한 신하 중에 응징 받아야 할 사람이 있음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부생이 이렇게 말했다.

 

“ 귀한 신하란 오직 대사마 부안과 사공 왕타 뿐이지 않소”

 

동영이 말했다.

 

“ 주군의 숙부이신 부안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왕타 한 명만 없애도 하늘은 감응 할 것입니다.“

 

마침내 왕타에게 죽음을 내렸다. 왕타가 죽는 자리에 나타난 동영이 이렇게 꾸짖었다.

 

“ 아직도 나를 개와 돼지에 비교하려느냐?”

 

왕타는 죽는 순간까지 눈을 부릅뜨고 동영 무리를 꾸짖으며 질타하였다. 왕타의 생질 낙주자사 두욱도 조소에게 미움을 사서 참소당해 죽었다. 

 

(16) 포학한 부생의 고명대신 처단 III (AD357)

 

부생이 태극전에서 연회를 열었다. 상서령 신뢰는 주감이 되어서 연회의 술자리를 감독하고 있었다. 부생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 어찌 사람들에게 술을 제대로 먹이지 않아
  취하지도 않고 앉아만 있는 사람들이 있는거냐! “

 

곁의 시종이 들고 있는 활을 쏘아 그 자리에서 신뢰를 죽였다. 이 광경을 본 신하들은 다투어 술을 들이켜 억지로 취했다. 취한 신하들은 비틀거리며 쓰러지기도 하고 관을 잃어버리거나 옷을 찢기도 했는데 부생은 이런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였다.

 

어느 날 부생은 큰 물고기가 창포 풀을 뜯는 꿈을 꾸었다. 원래 부씨는 창포 포씨 였으므로 큰 물고기가 창포를 뜯는 꿈은 길조라고 볼 수는 없었다. 항간에는 이상한 요언이 돌았다.

 

 ‘ 동해 큰 물고기가 용이 되었는데
  남자는 왕(王)이 되고
  여자는 공(公)이 되었다.‘    

 

부생은 이 꿈과 요언은 분명히 어(魚)씨 성을 가진 사람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부생은 태사이자 녹상서사이며 고명대신인 어준과 일곱 아들 및 열 명의 그 손자들을 몰살시켰다.(AD357) 이로써 고명대신 8인은 모두 제거되었다.

 

부생은 술을 마시면 밤낮이 없었고 한 달 내내 나오지를 않기도 했다. 국정을 외면하기를 밥 먹듯 했고 그 사이 간특한 간신들이 상벌을 농단했다. 자신이 애꾸눈이어서 다음과 같은 단어를 쓰다가 죽은 사람이 수를 셀 수 없었다.

 

 “残(나머지)、缺(모자람)、偏(삐뚬)、只(한짝)、少(적음)、无(없슴)、不具(갖추지 못함)”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즐겼고 부생을 칭찬하면 아부한다고 신하를 죽였고 정치가 혼란스럽다고 비판하면 비방한다고 사람을 죽였다. 부왕 때 공훈을 세운 공신들의 가족은 거의 몰살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하루를 보내기를 마치 십년 보내는 것과 같이 어렵고 힘들었다고 했다.  

 

(17) 부생의 제거 : 부법-부견의 쿠테타(AD357)

 

천문담당 태사령 강권이 부생에게 불길한 말을 했다.

 

“ 어제 밤 세 개의 달(아마 화성과 목성과 달이었을 것)이 함께 나타났으며
  패성이 태미자리에 들어가 동정에 이르렀고
  음침한 비구름에도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장차 시역의 징조가 보입니다.“

 

부생은 이런 따위의 싫은 소리를 가장 증오했다. 그 자리에서 태사령 강권을 박살했다.소문은 금새 밖으로 퍼져 나갔다. 이렇게 계속되다가는 살아남는 자가 없을 것이다. 영어사중승 양평로 및 몇몇 무리들이 급히 부견을 찾아가 부생을 제거할 것을 재촉했다. 부견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부생은 힘도 세고 또 혈기가 왕성한 자라 감히 발동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촌 형제지간인 부법과 부견의 총명함을 부생도 질시하고 있었다. 늦은 밤 부생은 시녀에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 아법(부법, 부견의 친형)은 비록 사촌 형제지만 믿을 수가 없으니
  내일 아침에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시녀는 황급히 사람을 청하왕 부법과 동해왕 부견에게 보내 알렸다. 부법은 양평로와 강왕 및 수백 명의 무사를 이끌고 즉시 낙양궁 운용문으로 쳐들어갔고 부견과 여파루는 무사 삼백을 데리고 뒤를 따랐다. 숙위 장수와 군사들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 왔다. 술에 취해 누워있던 부생은 부법과 부견의 군사들이 다가오자 주변에 누구냐고 물었다. 시종들은 도적들이라고 대답했다. 부생이 그 ‘도적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 왜 황제에게 인사를 하지 않느냐?”

 

부견의 군사들이 모두 웃었다. 부생은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누워서는 절을 하지 않으면 목을 벨 것이라고 호통을 쳤다. 

부견의 군사들이 술 취한 부생을 묶어 별실에 가두었다가 월왕으로 폐위시킨 후 곧 죽였다.
부견은 형 부법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부법은 사양했다.

 

“ 네가 적자이고
  또한 나보다 훨씬 똑똑하니
  사직은 네가 맡아야 할 것이다.“

 

부견이 양보하며 말했다.

 

“ 형님이 저보다 연장이십니다.
  응당 즉위 하셔야 합니다.“ 

 

부견의 생모 구(苟)씨가 울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요청했다.

 

“ 사직의 일은 중대하고
  어린 아이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선택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할 것이니
  여러 분들이 잘 결정하셔야 합니다.“

 

중신들은 망설이지 않고 부견을 선택했다. 부생은 황제라고 칭했지만 부견은 스스로 대진천왕이라고 격을 낮추었다. 친형 청하왕 부법도 격을 낮추어 동해공이라고 불렀지만 승상 및 도독중외제군사라는 직을 내렸는데 이는 모든 정권 및 군권을 그에게 내려 준 것이다. 연호는 영흥(永興)이라고 정했고 부생에게 붙었던 간신배 중서감 동영과 좌복야 조소 등 20여 명을 즉시 주살했다. 친동생 양평공 부융 또한 형 부견만큼이나 영명하고 무예와 기억력이 뛰었으므로 항상 부견이 곁에 두고 의논을 하며 국사를 처리해 나갔다. 부생 때문에 꺼져 가던 전진의 국운이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사실 부견이 왕위에 오르기까지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두 살 위 사촌 형인 부생이 부견을 죽이려고 군사를 움직일 때마다 부견의 어머니 구씨의 고모 아들 위왕 이위가 군대 안으로 부견을 끌어들여 보호해 주었었다. 구태후는 그런 도움을 준 고종사촌 이위가 한 없이 고마웠고 부견은 이위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이위는 좌복야가 되었다. 이위는 왕맹의 총명함에 감탄한 나머지 기회 있을 때마다 부견에게 왕맹을 칭찬했다. 부견이 왕맹에게 말했다.

 

“ 이공(이위)이 그대를 아는 것이 마치 포숙아가 관중을 아는 것과도 같소“

중서시랑 왕맹은 이위를 형님으로 섬겼다. 쿠테타를 권한 설찬도 중서시랑이 되었고 권익은 급사황문시랑이 되었다.


(18) 부견의 부법 제거(AD357)

 

왕위에는 부견이 올랐지만 정치(승상)와 군권(도독중외제군사)은 부법이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부법에게로 쏠렸다. 어느 날 부견의 생모 구태후가 선명대를 유람하다가 부법의 집에 사람들과 가마가 구름같이 몰려 있는 것을 보았다. 깜짝 놀란 구태후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이위를 불렀다. 부법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사직에 큰 혼란이 올 것이 분명했다. 구태후와 이위는 부법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결론 지었다. 구태후는 군사를 매복시킨 다음 부법을 집으로 불렀다. 아무런 의심을 않고 부름에 응했던 부법은 그렇게 피살되었다. 스무 살 부견은 형님 부법을 영결하는 날 피를 토하며 울었다. 부법의 아들 부양에게 동해공이라는 작위를 잇게 해주었으며 그의 동생 부부는 청하공으로 삼았다.(AD357년 11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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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2월28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2월22일 15시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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