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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뱀처럼 가난한 사람의 맨발부터 문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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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5월28일 17시10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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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광경은 트라우마가 되어 가끔씩 잊혀질만하면 나타난다. 나의 경우 탈주범 지강헌의 죽기 전 모습이다. 88 올림픽이 끝난 뒤 불과 열흘, 흥분과 어수선함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88년 10월 16일 일요일 새벽, 서울 서대문경찰서 숙직실에서 졸던 나는 한 무리 형사들의 뒤를 쫓아 수색역으로 달렸다. 그날 새벽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유학 가기 전 그 시절, 나는 일간지 사회부 기자였다. 

 

현장에는 탈주범 지강헌이 북가좌동 고모 씨 집에서 고 씨를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중이었다. 인질범 가운데 2명은 권총 자살했고 대치 13시간 만에 이날 오후 지강헌은 거실 유리창을 깨어 자신의 목을 찔렀다. 솟구치는 피에 놀란 인질이 비명을 질렀고 치안본부(현 경찰청) 저격수가 벼락처럼 들이닥쳤다. 나도 그들을 쫓아 뛰어 들었다. 긴박했던 순간 안방 카세트에서는 음악이 흘렀다. 당시 인기 팝송 ‘홀리데이’ 였다.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과다출혈로 곧 사망했다. 열흘간 온 국민을 경악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탈옥수 지강헌 사건은 그렇게 끝났다. 

 

지강헌 사건은 한국인에게 잊을 수 없는 비극으로 남아 있다. 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감 중이던 죄수 12명이 호송차를 탈취, 도주했다. 9일 동안 이들의 행적은 톱뉴스로 등장했고 최후 순간까지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온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던 것이다. 

 

코로나19로 연기됐던 공직자 출신들의 뇌물수수 혐의 선고 공판이 최근 들어 열리고 있다. 관심의 대상은 유재수와 이동호였다. 이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비슷한 죄였지만 한명은 집으로, 한명을 감방으로 갔다. 금융위원회 재직 시기를 전후해 금융업체 대표 등으로부터 수년간 엄청난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이에 반해 군납업자에게 1억 원에 달하는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동호 전 고등군사법원장은 1심에서 4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에 문외한인 보통 사람이 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금액은 달라도 죄질이나 뇌물 공여 관계 등을 고려했을 때 형량 차이가 크게 난 두 재판 결과를 두고 법조계에서조차 수군대고 있다. 심지어 친문매체인 한겨레신문마저 판결을 문제 삼고 나섰다. 이번 판결을 보면서 권력의 시녀가 되어버린 김명수 사법부에게 더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판결은 나에게 오랜만에 지강헌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죽기 전 나는 유선전화로 오랫동안 통화하는데 성공했다. 서너 시간 통화에서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며 거칠게 살아 온 자신의 생에 대해 연민과 혐오를 동시에 드러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간까지 내게 쏟아낸 말은 많았지만 꼭 전해 달라고 부탁한 말은 “돈 없으면 죄가 있고 돈 많으면 죄가 없다, 즉 유전무죄, 무전 유죄”였다. 사건은 훗날 <홀리데이>란 영화로 살아났다.

 

나는 이번 유재수, 이동호 재판을 보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니라 ‘유권무죄 무권유죄’로 고쳐 말하고 싶다. 정권 실세였던 유재수는 집으로 갔고 힘없는 군인은 감방으로 갔다. 권력이 있으면 죄도 가벼워지는 세태가 개탄스러운 것이다. 나는 죽어가는 지강헌을 지켜보면서 그를 마지막으로 이 땅에 더 이상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절규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를 빌었다. 

 

‘인간 노무현’의 등장을 계기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좋아진 줄 알았다. 그래서 그토록 노무현이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이 실현되어 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 재판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던 정의로운 세상은 여전히 요원함을 깨닫게 되었다. 슬프게도 정의는 뱀처럼 가난한 사람의 맨발부터 문다. 정의는 좋은 것, 바람직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인간 세상에 이렇게 약자에게 먼저 가혹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코로나로 도둑맞은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우리가 그토록 목말라 하는 정의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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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5월28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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