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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뉴딜 발표를 보고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7월15일 17시30분
  • 최종수정 2020년07월15일 17시45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12

본문

1. 미국판 뉴딜이란 무엇인가? 

 

1932년 대공황 최악의 경제상황을 바탕으로 FDR(Franklin Delano Roosevelt)과 민주당은 압승을 거두었다. FDR은 57.4%를 득표해서 공화당 후버의 39.7%를 압도했고 상원에서는 47석에서 58석으로, 하원에서는 216석에서 313석으로 늘어났다. FDR은 선거기간 동안 뉴딜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그 당시의 구체적인 내용은 재정지출 축소, 실업구조지원과 복구(restoration)정책이었다. 어느 것 하나 후버의 정책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어느 정치평론가 말대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거부(win by default)’였다. 

 

집권 당시 FDR지지 세력은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어있었다. 하나는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남부와 서부 민주당 의원들이고, 다른 하나는 공업 중심인 북부 및 중서부 출신 진보주의 공화당 의원들이다. 이들은 FDR에게 서로 다른 정책을 주문했는데, 서부와 남부의 민주당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물가상승, 즉 인플레 정책을 강력히 요구한 반면 북부 및 중서부 공화당의원들은 실업자의 구제나 노동자의 권익보호조치를 더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런 상충되는 상황에서 나온 제1차 뉴딜은 농업생산을 줄이는 일과 임시일자리 만들기가 주류였다.

  

이 정도의 밋밋한 정책으로 미국 경제가 살아날 리 만무했다. 1933년 3월 집권하고 2년이 흐르는 동안 연방정부 지출은 거의 두 배로 늘어났지만 경제실적은 미미했다. 1934년 불변 GDP는 1929년의 63.9%에 불과했고, 투자는 더 침체하여 53.0%에 불과했다. 당연히 고용상황이 나아질 리가 없었고, 노동현장의 불만은 쌓여갔다. 특히 북부 자동차 공업지역과 서부 농장지역 노동자들의 반발이 극심했다. 이들은 길거리로 나서서 폭동에 가까운 파업을 단행했다. 1933년과 1934년에 걸쳐 심각한 파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1930년대 초반까지 놀라우리만치 잠잠하던 미국 대중은 침묵을 깨고 정치적 불만을 폭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길거리로 나서서 강력한 파업을 일으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켜 줄 인물을 찾았다. 그 민중의 불만을 지적하고 해법을 제시한 사람들이 휴이 롱이나 코글린이나 타운샌드였다. FDR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민에게 지난 몇 년 사이에 얼마나 잘 살게 되었는지를 비교해 보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FDR 정책의 경제적 성과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1934년까지 뉴딜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명백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도 FDR이 주도하는 새로운 좌파(new lefts)는 실패했으며 그 공백을 누가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불만과 공백을 FDR이 모를 이유가 없었다. 보다 전격적이고 보다 강력한 개혁정책이 필요했다. 1936년 대선을 앞둔 FDR은 전에 볼 수 없었던 개혁을 통하여 미국국민들이 스스로 본인이 행복하다고 느낄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FDR은 그것을 ’안전(security)을 통한 사회 안정‘으로 보았다. 가정에서의 안전, 직장에서의 안전, 그리고  재난으로부터의 안전을 3대 안전으로 규정하고, 이를 정부가 역점을 두고 지켜야 할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라고 설정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사회영역에서의 개혁, 경제영역에서의 규제, 그리고  실물영역에서의 계획경제를 성취하기 위해 그동안의 회복(Recover)과 구제(Relief) 중심의 정책방향에서 개혁(Reform) 중심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제2차 뉴딜이다. 

 

1935년의 제2차 뉴딜의 핵심은 실업보험과 퇴직연금보험을 규정한 사회보장법과 국가노동위원회를 설립하는 국가노동관계법의 제정이다. 노동의 권익을 획기적으로 제고시키는 법이 통과되면서 산업현장은 더욱 혼란에 빠졌고 1937년 전국적인 파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그 위에 사회보장세는 물론 소득증세까지 겹치면서 1937년과 1938년 경제는 곤두박질 쳤다. 특히 1938년의 경제는 성장률과 투자와 소비 모든 면에서 마치 1932년을 다시 보는 듯했다. 1938년부터 경제가 침체하고 또 선거에서 민주당의 기세가 꺾이면서 FDR과 뉴딜(The New Deal)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1933년 이후부터 휘몰아친 뉴딜기간 동안 대중으로부터 받은 정치적 지지나 혹은 뉴딜계획자들이 계획한 것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두었다. 소득분배 차원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1920년대나 1930년대나 1940년대까지 미국의 소득분배 구조는 거의 불변이었다. 1930년대에 다소 개선된 것 같이 보인 것도 자본가들의 자본이익률이 현저히 저하된 때문이지,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가 분배구조의 개선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정책도 일관성 없이 갈팡질팡했다는 점이다. 제1차 뉴딜에서는 긴급일자리 제공과 경기부양을 주목적으로 하다가 성과가 별로 없고 노동계를 중심으로 정치적 반발이 일어나자 제2차 뉴딜에서는 성장보다는 개혁을 방점을 두면서 정책의 중심축이 사회보장과 노동권익 보호로 바뀌었다.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을 촉구하면서도 가격통제를 일삼았고 엄청난 재정적자를 초래하면서도 균형재정을 외치며 증세를 감행했다. 트러스트를 파괴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카르텔을 공공연히 조장했다. 내수와 소비를 진작한다고 하면서 투자를 억제하는 조치들을 남발했다. 농장의 경작면적을 축소하라고 윽박지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작지를 늘려나갔다. 한편으로는 공공일자리를 만들어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력을 지역으로 옮기면서 노동력 부족현상을 유도했다. 역사학자 케네디(David Kennedy)는 뉴딜의 이런 비일관성을 빗대어 ‘거대한 기회주의(opportunistic in the grand manner)’라고 비꼬았다.   

뉴딜은 경제회복(economic recovery)을 이룬 것이라기보다는 경제개혁(economic reform)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는 적절하다. 사회보장법, 공정근로기준법, 금융개혁법 등은 모두가 높게 평가하는 개혁법 들이다. 정부의 강력한 주도로 개혁을 이루어냈다는 것은 그동안의 민간주도의 경제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때로는 정부의 주도가 매우 불가피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따라서 뉴딜이 성공했다면 그것은 뉴딜로 경제가 회복된 것이 아니라 뉴딜로 사회정치적 개혁을 이루어냈다는 점 때문이다. FDR은 뉴딜을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과도한 기업의 탐욕을 억제하고 나약한 민생의복지와 안전을 구축하기 위해 보수의 기반인 기업과 대법원과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보수라는 거대한 전통(great orthodoxy)과 새로운 사회라는 혁명(revolution)의 한 가운데 서서 그 둘을 절충하는데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2. 한국판 뉴딜, 경기회복인가 경제혁신인가 ?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저성장양극화가 심화되고 코로나19의 경제충격이 크며 위기를 극복하여 글로벌 경제 선도를 위한 국가발전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디지털경제를 통해서 똑똑한 나라를 만들고, 그린 경제를 통해서 그린 선도국가를 만들며, 양극화해소를 위한 경제사회 대전환을 통해서 더 보호받고 따뜻한 나라를 만들자고 했다. 디지털 경제를 통해서 추격형에서 선도형 국가로 탈바꿈하고, 탄소를 줄여서 그린경제로 가며,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여 포용국가로 가자는 것이다.

 

이런 한국판 뉴딜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첫 번째로 던지는 질문은 과거에 수도 없이 나온 대책들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2020년 경제정책방향(2019년 12월 19일 발표)의 내용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거기에도 DNA 및 생태계 얘기가 있었고, AI며 5G 계획이 있었으며, 인공지능국가전략이 들어있었다. 의료데이터 활용방안도 있었고, 서비스 중소기업 ICT활용방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기존 산업의 스마트화나 친환경화가 다 들어가 있었다. 스마트 공장이나 스마트 산단 계획이 다 되어있었는데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또 계획을 뒤집어 바꾸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뉴딜'이 아니라 '올드 딜'이라고 혹평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2020년 경제정책방향이나 최근에 나온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는 들어 있으나 이번 한국판 뉴딜계획에는 들어있지 않은 것은 장차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다. 2020년 계획의 첫 꼭지가 민간민자공공 100조 투자계획인데 이것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며, 주거복지 로드맵(105.2만호 공급)이나 광역교통망 투자계획은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BIG3는 어디로 갔고 유턴첨단산업유치전략이나 수출회복전략이나 지역경제활성화 정책은 어떻게 되는지 혼란이 가중된다. 별다른 언급이 없으면 계속 진행되는 것이라고 둘러대겠지만 한국판 뉴딜에 160조나 되는 자금을 끌어다 쓰는데 다른 정책계획들이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수시로 계획이 송두리째 뒤집어지거나 바뀌거나 한다면 도대체 민간기업들은 무엇을 믿고 계획을 세울 수가 있겠는가. 새롭고 더 나은 계획이 나왔으니 거기에 맞추라고 하겠지만 이전 계획을 바탕으로 투자와 자원을 쏟아 부은 기업들에게 미치는 피해나 혼선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세 번째로는 그린이나 디지털의 개념이 원래 융합적이라서 분리하기 어려운 점이 많은데 이를 억지로 보기 좋게 따로 분류하다보니 모래알 같은 정책들이 여기저기 나열식으로 널부러져 있어서 전혀 통합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운용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뉴딜 부문의 ‘SOC디지털’ 안에는 4대 부문(교통, 디지털 트윈, 수자원,재난)의 디지털 관리체계 구축계획(계획번호 10)이 있는데 이것은 DNA생태계의 프로젝트(계획번호 2)이기도 하고 또 국토도시환경의 녹색생태계회복 계획(계획번호 14)이기도 하다. 물론 일이 그렇게 된 이유는 각 부서마다 할당된 계획들을 만들어내다 보니 유사한 것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게 된 것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유사한 계획들을 유기적으로 묶어서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은 상식아닌가.   

 

네 번째로 28개의 계획, 그리고 그 중에 10대 계획이 수행된다고 해서 어떻게 양극화가 해소되고 어떻게 똑똑한 나라가 되며 어떻게 선도국가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5년 동안 겨우 2천억 원을 투입하면서 스마트의료인프라가 어떻게 구축이 되는지, 스마트물류에 고작 3천억 원을 투자하고서 어떻게 물류 선도국가가 되는지 당혹스럽다. 4조 원을 투입하고서 어떻게 스마트그린산단이 조성되는지, 1조5천억 원을 투입하고서 어떻게 디지털 SOC가 구축되는 의아하기만 하다. 그냥 시늉만 하고 마는 계획이라면 그게 선도국가를 만드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섯 번째로 대기업(재벌)에 편향적으로 지원한다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 전체 28개 계획 중에서 두 번 째로 많은 자원(13.1조원)이 전기차, 수소차 등과 관련하여 배정되어있는데 이는 특정 기업에 대한 불공평한 지원이라는 지탄을 받기 쉽다. 반면에 소상공인 온라인 교육 지원에는 5년 동안 1조원만 배정되어있을 뿐이다. 이것은 포용원칙과도 배치되고 또 미래지향적 양극화해소의 원칙에도 저촉된다. 대기업의그린화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의 ICT화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판 뉴딜은 중소기업 대신 재벌편향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여섯 번째로 재원조달에 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 언급이 없다. 최근의 세수부진이나 재정지출 폭증 추이와 국채발행 추세를 보면 향후 5년간 110조의 재원조달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책임있고 성의있는 정부의 태도가 아니다.   

 

미국판 뉴딜이 그랬듯이 한국판 뉴딜도 급조되었다는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 이것저것 깊은 생각 없이 옮겨다 놓고 재원도 밝히지 않고 널부러진 28개 계획을 보면 그런 비판을 받기 딱 좋다. 그리고 목표도 분명하지 않다. 미국판 뉴딜은 경제회복을 목표로 삼았다가 그게 안 되니까 경제혁신으로 말을 옮겨 탔다.표와 정치적 계산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 결과 노사분규는 더욱 심해졌고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미국판 뉴딜은 그나마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돌입하면서 성장과 고용과 배분의 모든 문제들이 일거에 사라졌지만 한국판은 다르다.

 

한국판 뉴딜 정책을 하면 양극화가 어떻게 개선되는지, 어떻게 선도국가로 탈바꿈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지난 번 수도 없는 정부의 정책이 그랬듯이 늘어놓은 정책이 어떻게 수행되었는지,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그것을 개선해서 어떤 최종 결과를 창출했는지 전혀 평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또 얼마가지 않아서 새로운 슬로건과 색다른 정책을 또다시 내어 놓을 것이다. 2019년에는 빅딜이라고 했고, 2020년에는 성장잠재력 제고라고 했고, 2020년 하반기는 선도형 경제기반과 한국판 뉴딜이란다. 발표 당일 대다수 언론들이 한국판 뉴딜에 대해 냉담한 것에 대해 정부는 또 뭐라고 둘러댈 것인가.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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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7월15일 17시30분
  • 최종수정 2020년07월15일 17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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