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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 이전 : 국가 백년대계 아젠다로 다뤄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8월03일 17시10분

작성자

  • 한영수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前 전주비전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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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0일 여당 원내대표가 해묵은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다시 꺼내든지 불과 열흘 남짓 지났는데 이제 이 주제는 코로나19 및 다른 큰 경제, 사회 이슈들을 능가하는 수퍼 아젠다로 정국을 압도하고 있다. 그간 재(災) 속에 살짝 파묻혀 있었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다시 이글이글 타오를 수 있는 잉걸불이요, 수면 아래 잠겨 있었지만 언제고 다시 떠오를 수 있는 거대한 빙산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폭발력이 있는 주제인 것이다. 여당은 ’행정수도 완성 추진단‘을 꾸리고, 연내로 그 방법을 결정하여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이 거대한 사업을 마무리할 태세인데 야당은 이를 정략적 시도라고 비난하면서도 무조건 반대만을 할 수 없는지 아직 확실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해묵은 초대형 국가 아젠다로서 행정수도 이전

 

 행정수도 이전은 2002년 대선(大選) 당시 노무현 후보의 공약이었는데, 노무현 정부 는 이를 구체화하고 법(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까지 제정하였으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2004) 후, ’행정수도‘는 ’행정 중심 복합도시‘(’행복도시‘)로 대체되어 세종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인 1977년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가 안보 차원에서 행정수도 이전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실제로 추진단이 만들어져 구체화 되다가 박대통령의 급서로 중단된 바 있다. 

 

 전두환 정부나 노태우 정부는 88올림픽 개최를 위한 강남권 개발과 수도권 과밀 해소를 위한 위성도시 개발 등에 집중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은 더 이상 추진되지 않았다. 그 후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 극복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위한 수도권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는 수면 아래 가라앉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행정수도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 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는데 이는 참여, 분권,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중요시한 국정철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찬반론이 치열하고 자칫 국론 분열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사안

 

 행정수도 이전은 치열한 찬·반 논란을 야기하고 자칫하면 심각하게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찬성과 반대의 이유는 일견 명확해 보이지만, 깊이 파고 들어가면 그 논거가 생각만큼 명확하지도 않고, 검증하기도 매우 어렵다. 행정수도 이전을 새롭게 꺼낸 여당 측이나 찬성하는 측은 수도권 과밀화로 인한 비효율의 해소, 비합리적인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안정화,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논거로 삼는다.

 

 과거 박정희 정부가 수도 이전을 추진했던 이유 중에는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의 균형 발전 외에도 국가 안보를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미사일이나 방어망 등에서 엄청난 기술 개발이 이루어졌고 여건이 많이 달라진 오늘날에도 그 이유가 전략적 차원에서 여전히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반면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수도로서 600년을 넘긴 서울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점 (헌재의 위헌 결정에서 거론했듯이 수도로서 서울의 위상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불문 헌법적 요소라는 점)을 주장한다. 다음으로 글로벌 시대에 국토가 좁은 대한민국의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특히 동북아에서 베이징, 상하이나 도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서울 및 수도권의 경쟁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 행정수도 이전이 수도권 과밀화 억제나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미치는 효과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 등을 거론한다. 

 

 또한 통일에 대비한다면 충청권으로의 수도 이전은 적합지 않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 시 수도권의 위축은 물론 충청권 이외의 지역의 상대적 위축을 초래할 수 있으며, 수도권에서의 부동산 투기가 세종시와 그 인근으로 옮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한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이 수도권 과밀화 억제와 부동산 가격안정을 목적으로 한다면 일정 부분의 수도권 위축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 셈이기도 하고, 충청권 이외의 지역을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추가 이전과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다각적인 보완 정책이 후속된다면 수도 이전을 반대할 명분이 약해지는 측면도 있다. 

 

 반대 논리가 제기하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천문학적인 재정 소요가 수반된다는 것이다. 재정 부담이 얼마나 될 것인가에 대하여는 찬·반 간에 괴리가 크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사업을 추진했을 때 약 6조원이 소요된다고 주장한 반면 당시 야당(한나라당)측 주장은 40조원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간 ‘행정 중심 복합도시’(행복도시)로 세종시를 건설하여 상당수의 중앙행정기관을 세종시로 이전하였고 주택, 도로 등 인프라를 건설하고 상당한 인구가 유입되어 행정도시로서의 면모를 어느 정도 갖춘 상태기 때문에 ‘행복도시’의 완성도를 높이는 사업에 소요되는 재정은 사업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행복도시’의 완성도 제고 차원을 넘어서 국회, 청와대의 이전을 포함한 ‘행정 수도의 완성’ 또는 ‘천도(遷都)’ 차원이라면 도시의 양적인 변화와 함께 질적인 수준이 달라져야하기 때문에 재정 소요가 생각보다 훨씬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수도권 과밀화로 인한 비효율성 발생에 대하여는 비효율성 못지않게 효율성도 크다는 반론도 무시할 수 없다. 인적, 물적 네트워크가 긴밀하게 구축되어 있고, 각종 연관 산업과 인프라, 그리고 인적 자원과 금융 등 경쟁력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수도권이야 말로 규모의 경제와 집중의 효율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반론이 그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 시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동북아 중심론’을 내건 것은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작은 나라의 경우 국가경쟁력과 수도의 국제 경쟁력이 구분되기가 어려워진 글로벌 경쟁 여건 하에서는 다소 모순되는 면도 있었다고 본다. 재정 투입의 효율성 차원에서만 보면 수도권(집중화)의 효율성이 지방(분권화)의 효율성보다 높을 수 있지만 지방의 삶의 질을 계량적으로만 접근할 수 없기에 결국 선택은 정부와 국민의 가치판단에 달려있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 추진은 국론 분열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만큼 분열의 소지를 가급적 축소시켜야 한다. 예컨대 서울대 이전이나 국립대 통합(네트워크화) 문제는 논란을 더 확대시킬 가능성이 크므로 가급적 행정수도 이전에 연계시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행정수도 이전의 최대 명분 : 수도권 과밀화와 국토의 균형 발전 

 

이렇듯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찬반양론의 논거는 여러 가지이지만 논란의 중심은 아무래도 수도권 과밀화 또는 경제력 집중에 있다고 보는데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는 비효율성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교통의 혼잡 유발, 지가(地價), 물류비, 인건비 등 생산원가의 상승과 생활비의 증가, 이산화탄소 등 각종 공해와 미세 먼지의 유발로 인한 환경오염 등이 그것이다. 

둘째로는 수도권에 지나치게 인구와 경제력이 집중되어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최근 문제 제기의 가장 직접적인 동기이기도 하지만, 수도권(특히 강남권)부동산 가격의 비정상적인 상승으로 수도권/지방 간 부동산가의 현격한 괴리를 초래하고 지역 간, 계층 간의 위화감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규제 등 각종 규제와 초과이익 환수, 재산세, 종부세, 양도소득세 등 각종 세금 인상 등 대증요법만으로는 잡히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근원적 요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도권에의 집중은 새삼스럽게 논할 필요가 없는 오래된 문제이지만 행정수도 이전을 다시 추진하는 이 시점에서 과연 그 집중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은 동경, 파리, 뉴욕 등 다른 대도시에 비해 2배 내지 3배 이상으로 과밀 정도가 심하다. 우리나라 전체가 인구 과밀 국가이지만, 전국에서 차지하는 수도권의 인구 비중(49.8%)은 면적 비중(11.8%)의 5배에 이를 정도로 수도권은 초과밀 지역이다. 수도권의 인구 비중은 1970년(30%정도)에 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10년 전(48.6%)에 비해서도 더 상승했다.

 

 지역의 경제력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지역내총생산(GRDP, 2018 기준)에서도 수도권은 51.8%를 차지한다. 사업체 수에서도 수도권의 비중은 47.2%이며 종사자(취업자) 수에서는 51.5%를 차지한다(국가통계포털 KOSIS, 2018). 주요 산업별로 수도권의 사업체 수 비중을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중요한 일자리 산업인 제조업(46.4)에서 뿐만 아니라 산업을 뒷받침하는 금융(46.4%)에서도 전국의 절반 가까운 비중을 점하고 있다. 

비교적 첨단 산업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정보통신분야에서는 수도권이 무려 71.8%에 달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유수 대기업의 대부분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지식, 기술, 정보와 함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일자리(SW산업, 고급기술인력수요)도 수도권에 몰려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문화 교육서비스(47.0%), 예술·스포츠·여가 분야(48.1%)에서도 나타난다. 수도권 집중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대학의 지역별 분포인데 특히 우리나라의 명문대 수도권 집중도는 외국에 비해 매우 심한 상황이다. 

문화 인프라의 존재 여부도 수도권을 선호하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공공도서관수(44.4%, KOSIS, 2018 기준), 공연예술(47.0%, 2019 문예연감)에서도 나타나듯이 문화, 예술 분야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범위에서 수도권의 집중도가 매우 심하다.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 문화를 고려하여 흥미로운 수치를 하나 소개한다. 국내에서 가장 점포가 많은 특정 브랜드 카페의 수도권 점포 수를 살펴본 결과 무려 64%가 수도권에 몰려있는데 이 또한 수도권 집중을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경제적 측면에서의 효율성/비효율성 논란은 별도로 하고라도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은 매우 심한 상황이며 이로 인한 경제, 사회, 문화 부문에서 수도권/비수도권 간의 괴리와 위화감은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신행정수도의 완성’이나 ‘천도’를 통해서 시정할 수 있을지는 여기에서 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러한 상황이 신행정수도 추진에 가장 중요한 명분을 제공할 수 있음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는 데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

 

 필자는 여기에서 행정수도의 이전에 대한 심층적인 찬반 논리를 전개할 의도는 없다. 다만 적어도 이 문제를 다루는데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 전제로 삼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1) 행정수도 이전은 역사적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서울은 백제시대에 수도(위례성)로서 493년간(BC18-AD475) 그 지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건국(AD1394) 이후 지금까지 무려 626년간 중단 없이 수도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 현재 여당이 추진하고자 하는 행정수도 이전이 현행 법(‘행복법’) 테두리 내에서, 또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서 현행 ‘행복도시’의 완성도를 높이는 정도에 머문다면 몰라도, 현법 개정이나 헌재의 재결정을 통해 입법, 사법, 행정 등 국가 권력 구조 전체를 이전하는 등 명실 공히 ’천도‘를 의미한다면 이는 600년 역사(歷史)를 바꾸는 대역사(役事)가 될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천도는 나라를 세우거나 한 나라가 어떤 계기로 새롭게 재출발할 때 단행되었다. 따라서 행정수도 이전은 단순히 수도권 과밀화 억제 또는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과제의 하나로 다루거나 한 정권에서 단숨에 결정하고 끝낼 사업이 아니다. 대역사(役事)이기에 역사적 관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 각 분야를 포괄하는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검토를 거쳐야 하고, 각계각층의 여론을 종합적으로 충분히 수렴하여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결정해야 하는 사업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관점에서 많은 측면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그간 거론되었던 두 가지는 반드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는 글로벌 시대에 수도권 경쟁력의 중요성이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그간 급진전 되던 글로벌화 추세가 멈추거나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강대국들이 자국 이익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세계가 이전과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이긴 할 것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이미 수십 년 간에 걸쳐 지구촌 내에 구축된 글로벌 네트워크와 경제, 문화, 관광, 인적 교류의 추세가 멈춰 서기에는 이미 지구촌 전체 사회가 글로벌 경제, 사회, 문화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다. 

 

따라서 미래에 우리나라가 글로벌 사회, 좁게는 동북아 사회에서 경쟁해 나갈 때 행정수도 이전이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만일 행정수도를 이전 하는 경우 이러한 면에서 서울의 대외 경쟁력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미국, 브라질, 남아공, 호주 같이 국토가 넓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일본, 스위스 벨기에 같이 국토가 협소한 나라들, 심지어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나 홍콩 등의 경우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통일에 대비한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남북통일이 될 때 ’통일 한국(Korea)’의 수도를 어디로 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그간 정부 당국이나 많은 전문가의 선행 연구가 있었겠지만, 차제에 정부와 여당(’행정수도 완성추진단‘)은 이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차원에서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의 사례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본으로의 이전(1949) 배경, 이후의 본의 행정 수도로서의 기능과 서베를린 등 타 도시와의 역할 분담, 본으로의 이전에 소요된 비용과 효과, 독일 통일 후 수도를 베를린으로 다시 옮긴(1991년) 과정과 비용, 최근까지의 정착 과정과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행정수도를 이전할 경우에도 통일에 대비한다면 그 모델은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성 높은 방식과 형태를 취해야 할 것이다. 과거 서독 시절 수도로서 본의 지위는 임시적 성격을 띠었음도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2)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철저한 비용/효과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에 행정수도 이전이 다시 제기된 배경엔 주로 수도권 과밀화와 국토의 균형적 발전 문제가 작용하였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전체의 상식을 뛰어넘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거대 휴화산을 다시 폭발하게 한 셈이지만, 사실은 행정수도 이전은 부동산 가격의 안정화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대형 담론이다. 다만 부동산 가격안정을 위해 최근 쏟아낸 수많은 대책이 일종의 대증요법이라면 이번에 꺼내든 행정수도 이전 제안은 기존 요법의 효과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근본적이고 구조적으로 접근한 ‘초대형 수술’인 셈이다. 야당을 포함한 반대론자들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형국이라고 비난하지만 여당 입장에서는 차제에 “꼬리로는 안 되니 아예 몸통을 수술하는” 모양을 띠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는 부동산 가격안정에 초점을 두고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은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수도권 과밀화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 중 하나일 뿐이기도 하고, 행정 수도 이전은 부동산 가격의 안정화를 훨씬 넘어서는 국가 아젠다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해 행정수도 이전이 실행될 경우 과연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가 기대한 만큼 시정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좀 더 정교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의 타당성은 철저한 비용/효과 분석을 통해 검토되어야 한다. 효과에 비해 너무 큰 재정 부담과 사회적 비용이 수반된다면 추진을 재검토 해야 할 것이다.

 

3) 진영논리나 지역주의를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최근 여당 인사(행정수도 완성추진단장)가 말했듯이, 좌우의 문제도, 정쟁의 대상도 아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한 점 후회 없도록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문제인 만큼 진영논리나 지역 이기주의적 입장에 따라 찬반의 판단과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이념이나 주관적인 가치판단에 따라 입장이 다소 다를 수는 있어도 가급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국가의 미래와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며, 편 가르기를 부추기거나 국론을 심각하게 분열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 이슈화하거나 선거 공약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부 야당 국회의원들이 당론과 관계없이 행정수도 이전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일견 당파적인 입장을 초월한 긍정적인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국익 차원에서의 입장이 아니라 지역 이기적인 동기에 지배되어 있다면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다. 전술했듯이 국가 균형발전은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국정 목표 중 하나이지만 이를 행정수도 이전과 동일한 맥락에서 취급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수도권 과밀화를 지양하고 국가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를 위해 행정수도 이전이 유일하고 불가피한 선택인지, 그 타당성에 대한 검토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여론조사(한겨레신문-한국갤럽, 2020.7.31)를 살펴보면 이 문제가 이념이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보수층에서는 수도 서울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59%인 반면 진보층에서는 세종시 이전 의견이 무려 71%를 점한다. 또한 호남 지역에서는 세종시 이전 찬성 의견이 67%로서 직접적 수혜 지역인 충청·세종의 57%보다도 훨씬 높다. 이러한 현상은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정부에 대한 지지 여부 또는 이념이나 진영논리에서 독립적이지 못한, 정치 이슈화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4) 실체적,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신행정수도 건설은 2004년에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 확인’(2004.10.21.)에 의해 추진이 중단되었고, 그 대신 ’행정 중심 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세종시가 건설되는데 만족해야 했다. 헌재의 결정문에 따르면 수도 서울의 지위는 성문헌법 상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제정 헌법 이전부터 오랜 기간 헌법적 관습으로 존재해왔다고 보았다. 서울의 수도로서의 지위는 이미 오랜 기간 국민적 합의를 얻어 실효적으로 계속되어온 관행이며, 서울이 우리나라 수도라는 것은 단순한 사실을 넘어서 그 규범성에 다툼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헌재는 수도를 설정하거나 이전하는 것은 국회와 대통령 등 최고 헌법기관들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인데 이는 국가 조직의 근간을 결정하는 핵심적 헌법 사항에 속한다고 보았다. 즉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관습 헌법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법률에 대하여 효력 상 우위를 갖고 있으며 관습 헌법의 법규범은 성문헌법과 동일하게 헌법 규정에 근거한 헌법 개정 절차에 의해서만 개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행정수도 이전도 헌법전(憲法典)에 그에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 헌법 규범에) 상반하는 법규범을 첨가함 (헌법 개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단순히 중앙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을 추가적으로 이전하는 수준을 넘어서 2004년에 추진했던 수준의 행정수도 이전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헌재의 기존 결정에 따른 걸림돌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당은 여야합의를 통한 특별법 제정, 헌법 개정, 헌재의 결정을 다시 받는 방안, 국민투표 등 여러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과거 신행정 수도 건설에 대한 위헌 결정 시에 서울=수도 인식이 국민적 합의를 이룬 것으로서 관습 헌법 성립 요건을 충족하였다고 인정하였다. 만일 헌재의 위헌 결정에 언급된 ’국민적 합의성‘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국민투표를 필히 거쳐야 하겠지만 이와는 별도로 헌법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을 포함하는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념이나 정파, 지역을 초월하는 진지한 논의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수백년  간에 축적되어온 서울이 수도라는 ’국민적 합의‘는 국민 여론 이상의 역사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내용의 타당성과 함께 절차적 정당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론 분열이라는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역사적으로 작지 않은 오류로 남을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이 절차적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고려했으면 한다.

 

 첫째, 당시 헌재가 내린 위헌 결정에 대한 존중과 심층적인 이해 및 검토를 전제로 새로운 논리의 전개와 절차가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 충분한 기간에 걸쳐 객관적이고 투명한 대국민 홍보, 교육,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헌법 개정이나 국민투표를 진행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여론조사는 충분히 객관적, 중립적으로 설문이 디자인되어야 한다.

 셋째, 시간에 쫒기거나 서두를 일이 아니며 여야와 각계각층 및 폭넓은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여 충분한 기간 잘 숙성된 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추진 시한을 못 박거나 경쟁적으로 대선 공약화하는 등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론 분열의 불씨나 국가 에너지의 블랙홀이 되지 말아야 

 

 결론적으로 행정수도 이전이 넘어야 할 장벽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과거 헌재의 위헌 심판이 있었던 상황에서 국민 정서에 바탕을 둔 국론 분열의 후유증 없이 국민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엄청난 재정 부담이다. 코로나19에서 비롯한 유례가 없이 심각한 강대국들의 경제 후퇴 (특히 미국의 2/4분기 경제 성장 -32.9%), 글로벌 가치 사슬의 비작동 및 보호주의로의 회귀 등 대외 여건이 매우 어렵고 불투명한 가운데, 국내적으로는 수출이 급감하고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2/4분기 –3.3%)을 보였다. 이러한 여건에서 재정적자와 국가 채무 급증을 감수하면서 복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막대한 재정 소요를 감당해야 하는데 이에 더하여 엄청난 재정을 행정수도 이전에 쏟아 붓는 것은 정부, 국민, 기업 모두에 큰 짐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행정수도 이전을 다시 추진하는 것이 ’국면 전환용‘이라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다. 여당의 제안이 갑작스런 면은 있지만, 이는 단순한 정책과제가 아니라 언제든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었던 (무엇보다 참여정부의 맥을 잇는 차원에서) 중대한 국가 기본 아젠다이기 때문에 단순히 국면전환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진정성과 신뢰성에 대해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내용, 방법, 절차가 정당하고 투명해야 한다. 여론 수렴 과정에서도 그렇고, 더구나 국민투표를 실시할 때에는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일방적으로 홍보, 교육을 실시할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충분한 기간을 두고 모든 면(비용/효과 면에서의 행정수도 이전의 타당성, 수도권 과밀화의 상황과 폐단뿐만 아니라 서울 및 수도권의 효율성과 글로벌 경쟁력, 미래 글로벌 시대와 통일에 대비한 서울의 비전 등)에 대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홍보하고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첨언하면 현행 헌법상 국민투표는 국회의결 후 30일 이내에 하도록 되어있는데 이 기간은 국민들이 투표에 임하기 전 제대로 파악하고 마음을 결정하기에는 결코 충분한 기간이 아니므로 훨씬 이전부터 학습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을 지금 여당의 의도대로 추진할 경우 가장 바람직한 미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려본다. 우선, 서울 및 수도권의 경제력 집중 및 과밀화가 크게 개선되고 비정상적으로 부풀려진 부동산 가격이 하향 안정된다. 지방과의 괴리가 크게 줄어들면서도,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수도권의 대외 경쟁력과 위상이 오히려 더 높아질 수 있도록 행정수도(세종)에 대응한 경제수도(서울)의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고 그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된다. 또한 ‘길거리 국장, 카톡 과장’으로 상징되는 행정의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진정한 행정 수도가 된다.

 

 반대로, 행정수도 이전이 수도권의 과밀화 억제나 부동산 가격 하락에 미미한 영향을 주고 수도의 대외적 글로벌 경쟁력만 잃으면서 정작 신행정수도는 일정규모의 중소도시로 남거나 대도시로 발전한다 하더라도 인근 중소도시나 농촌의 인구를 흡수하는데 그친다면 그것은 실패 모델로 남게 될 것이다. 행복도시를 건설하고 운영한 지난 10여년 간의 경험에서의 득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행정 수도의 완성‘의 타당성을 재점검하고 소중한 재료 및 참고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역사를 바꾸는 국가 아젠다 … 한 점 흠과 후회 없도록 신중해야

 

 시간이 가면서 그 구체적 내용이 들어나게 되면 행정중심 복합도시의 건설과 행정수도의 이전(천도)에 대해 국민은 그 차이를 더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찬반 논란은 더 뜨거워질 것이며 한동안 이 주제는 엄청난 국민적 관심과 국가 에너지의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추진 내용의 타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달려있다. 행정수도의 이전이 국토의 균형발전과 함께, 언젠가 다시 작동할 글로벌 체제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미래 통일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검토되면 좋겠다. 행정수도 이전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는 것이다. 이 중차대한 국가 아젠다를 역사에 흠을 남기지 않고 한 점 후회 없도록 신중하게 잘 다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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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8월03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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