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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 함부로 찬성하면 안 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9월18일 13시09분

작성자

  • 김병준
  • 국민대 명예교수, 前 대통령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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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기업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감시받고 통제되어야 한다. 또 처벌 받을 일이 있으면 처벌받아야 한다.

 

문제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느냐 인데 때로는 국가가, 때로는 소비자와 투자자 그리고 채권자 등의 시장주체들이, 또 때로는 기업 스스로 하기도 한다. 처벌 또한 마찬가지이다. 국가가 법으로 할 수도 있고, 시장 주체들이 불매운동과 채권이나 투자지분의 회수 등을 통해 할 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는 어떤 방식에 의존해 왔나? 이것저것 다 있지만,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역시 국가에 의한 감시와 통제, 그리고 처벌이었다. 국가권력이 기업을 죽이고 살리고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배임죄만 해도 그렇다. 손실을 끼친 경우만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경우까지 처벌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넓게 적용되고 있다. 또 모호한 부분이 많아 유무죄의 예측가능성도 매우 낮다. 검찰 등 국가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기업이나 기업주도 잡아넣을 수 있고, 그래서 기업 하는 것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까지 나도는 정도이다.

 

이러니기업들이 검사 한 두 사람 스폰서 하고, 유력 정치인하고 악수하는 사진 하나라도 있어야 안심이 된다는 자조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배임죄의 발원지인 독일조차도 배임죄의 적용을 엄격히 해, 이로 인한 처벌이 매우 어려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기업과 기업인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국가권력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당연히 국가의 자의적 통제를 약화시키고, 시민사회와 시장에 의한 감시·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야 기업이 기업답게 활동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의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시장의 자정기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 긍정적인 면을 담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도,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이 그러하다. 또 사익편취 규제대상 강화, 전속고발권 폐지 등도 시장의 역할과 질서를 바로 잡는데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국가권력이 강한 가운데, 또 그 자의적 행사의 가능성이 큰 가운데 이루어진다는데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시장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궁극적으로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귀결된다. 또 종국에는 시장의 자율성과 자정능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를테면 배임죄와 횡령죄에 대한 국가의 자의적 권력이 강한 가운데, 다중대표소송제도가 도입되면 어떻게 되겠나. 배임과 횡령을 둘러싼 고소와 고발의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기업은 그 만큼 더 검찰 등 국가권력의 눈치를 보게 된다. 기업의 기(氣)는 그만큼 떨어지고, 경제도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집권세력은 아니라고 변명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기업인이라 생각해 봐라. 검찰 등 권력기구의 눈치를 더 보겠나, 안 보겠나. 권한과 권력의 자의적 행사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의 개정안에 대한 제1야당의 모호한 태도와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지발언은 매우 유감스럽다. 심의과정에서 일부 수정요구를 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법 자체의 내용에만 치중한 나머지, 국가와 정권의 자의성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회에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정당답게 시장과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 주었으면 한다. 배임죄 등 국가의 자의적 권한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부분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 등, 진짜 할 일을 먼저 하거나, 아니면 조건으로 걸기라도 하라는 뜻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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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9월18일 13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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