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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한미관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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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1월23일 09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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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세종논평 No.2021-03](2021.1.22)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월 20일 취임식을 갖고 제46대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역사상 유례없는 혼란과 갈등 속에 치러진 선거로 바이든이 당선됐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의회 난입사건에서 보듯이 바이든의 앞날은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지지자들의 폭동을 선동한 혐의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 중 두 번째 탄핵 의결을 받은 불명예스런 대통령이 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시대의 부정적 레거시를 바로잡는 ‘트럼프 뒤집기’, 혹은 ‘트럼프 흔적 지우기(ABT)’부터 시작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성과로는 국내 정책에서는 기업 감세, 규제 철폐, 경제 호황 등을 꼽을 수 있다. 외교에서는 중국에 대한 현실주의적 강경 대응으로 중국의 공세를 차단하고, NAFTA(현 USMCA) 등 무역협정 개정, 러시아의 공세에 맞선 우크라이나 지원, 이스라엘-아랍 관계 정상화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에 대비해 트럼프 4년의 레거시는 중요한 실패가 더 돋보인다.

 

첫째는 민주주의의 실패다. 포퓰리즘과 대선 불복, 폭동 선동 등 트럼프는 민주주의의 모범이라는 미국의 소프트파워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향후 민주주의 정착을 지원하려는 미국 외교가 당위성과 설득력을 상실한 것은 물론 바이든이 취임 첫 해에 열겠다고 공언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명분도 크게 퇴색했다. 둘째는 COVID-19 대응 실패다.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 미국이 세계 최대 감염자 숫자를 기록하고 최고 사망자, 감염율 최대 등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기게 됐다. 셋째, 임기 내내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좌충우돌식 외교를 지속하다가 오히려 미국의 리더십을 깎아먹었다. 임기 종료 직전까지도 이란이 후원하는 예멘 후티(Houthi) 반군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미국과 대만 관리들 간의 접촉 제한을 해제하고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등 ‘불지르기 외교(fire sale diplomacy)’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이 모두가 바이든 행정부가 조심스럽게 피해가야 할 지뢰밭이다. 

 

바이든 취임사에서 가장 강조된 주제는 ‘단합(unity)’이었다. 이는 트럼프 4년이 남긴 가장 큰 레거시가 미국 정치의 분열과 갈등, 민주주의의 퇴행임을 반영한 것이다. 바이든은 선거결과를 부정하고 의회 폭동을 부추긴 트럼프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민주주의가 승리했다(Democracy has prevailed)’고 선언했다. 또한 코로나19를 비롯해 미국이 당면한 국내외의 난국에 대해 ‘저녁에는 울음이 머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편 30:5)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현재의 도전과 위기를 국민적 단합으로 극복하자고 역설했다. 미국을 주시하고 있는 세계를 향해서는 동맹을 복원하고 세계와 새롭게 협력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힘의 모범(example of power)’이 아니라 ‘모범의 힘(power of example)’으로 세계를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공언한대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17개의 행정명령 및 메모랜덤에 서명했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 WHO 재가입, COVID-19 조정관직 신설, 주거 강제퇴거 연장, 학자금 융자 상환 연장,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키스톤 파이프라인 허가 철회, 1776 위원회 폐지 및 인종평등 권고안, 1776 위원회(1776 Commission)는 반(反)인종차별 시위를 “좌파 폭동과 대혼란”으로 규정하면서 “수십년 간 좌파가 학교에서 세뇌한 직접적인 결과”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애국교육을 위한 자문기구로서 설치한 위원회이다.

 

인구센서스에 외국인 포함, DACA 유지, 특정 이슬람 국가들의 여행금지(Travel Ban) 종료, 이민과정 관리 정책 개선, 국경장벽 건설 중단, 라이베리아인 추방 유예 연장, 직장내 인종차별 금지, 정부직원 윤리준수, 규제 재검토 절차 개선 등이다. 

 

하지만 바이든이 말하는 ‘단합’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바이든은 취임사에서 미국이 갈 길은 국가적 단합이며, “블루와 레드, 도시와 농촌, 보수와 진보 간의 ‘비문명적 전쟁(uncivil war)’을 끝내야 한다”고 했지만 트럼피즘의 여파를 극복하고 공화당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의 이민정책 개선안에 대해 공화당은 이미 반대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미국의 정체성 재확립,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기업 감세 중단, 정치적 정당성(political correctness) 등은 앞으로도 민주·공화 양당 간에 지속적인 충돌이 예상되는 이슈들이다.

 

바이든 시대가 개막하면서 트럼프 시대와 어떤 차별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바이든 시대 대외정책의 두 축은 다자주의와 가치‧규범외교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다자주의는 국제제도 및 기구, 레짐에 대한 존중과 복귀, 동맹 및 우방국들과의 협력 강화를 포함한다. 바이든이 공언하고 있는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재가입 검토, 이란 JCPOA 복귀 검토 등을 포함하며, 이는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의 반전(反轉)이라 할 수 있다. 가치·규범외교는 민주주의, 인권 등 가치와 규범 중시, 규칙기반의 무역질서 강화 등을 포함하며, 이는 트럼프가 강조해온 거래적 국제관계관의 반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시대가 초래한 국제질서의 갈등과 반목,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각박한 국익전쟁은 어느 정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바이든 행정부 외교의 기조는 한미동맹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 한국은 특히 바이든 시대가 제기하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는 바이든식 규범·가치지향 외교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바이든 시대는 트럼프 시대에 비해 방위비 분담 등 동맹 현안으로 인한 갈등 소지는 줄겠지만, ‘가치지향적’ 어젠다 셋팅에 한국이 보조를 맞춰달라는 요구가 증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전단살포 금지 등 북한 관련 인권문제다. 

둘째는 미국이 중시하는 동맹과 우방의 네트워크에 한국이 얼마나 협력할지가 중요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차르(tsar)’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최근 포린어페어즈지 기고문에서 중국의 도전에 대처하려면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연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합체인 D-10 그룹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다자적 협력의 내용 못지않게 대응의 속도도 매우 중요해질 전망이다. 의사결정도 느리고 추진력도 빈약한 국제기구보다는 뜻이 맞는 소수 국가들의 ‘임무지향적 연대(mission-driven coalition)’가 중요해졌고, G-20 대신 D-10이 거론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이제 트럼프 시대가 저물고 미국의 새 날이 밝았다. 그에 따라 세계질서는 물론 한미관계에도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조성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춰 외교안보 라인을 재정비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취할 정책방향 변화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우리의 정책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때다. 워싱턴에서 조만간 시작될 변화를 외면한 채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동안도 지금처럼 중국과 북한의 눈치만 보는 외교로는 한미관계에서 어색하고 불편한 장면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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