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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55) 이름 값하는 층층나무와 산딸나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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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5월07일 17시0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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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박사를 자칭하고 있는 필자에게 나무들 이름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궁금해하며 질문해 오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자작나무, 때죽나무, 노린재나무, 물푸레나무 등등 독특한 이름들은 옛날 우리 서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지어졌지만, 지금은 그런 옛 생활의 특징을 찾아보기 힘들어지면서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어서, 그런 이름들의 유래에 대한 필자의 설명이 길어지기 일쑤이고 조금 길어지는 설명에 곧바로 흥미를 잃어버리는 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소개하려는 나무들은 나무의 특징을 제대로 살려 지어졌기 때문에 그 이름에 참으로 쉽게 공감이 갑니다. 특히 층층나무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필자는 층층나무 이름이야말로 우리 조상들이 나무들에 지어준 이름 중 가장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 나무는 10-15m 높이로 죽 벋어 올린 원줄기의 중간중간에서 가지들을 사방으로 벋는데, 그렇게 가지를 벋는 지점들 사이의 간격도 꽤 벌어져 있고 그 지점들에서 벋는 가지들은 거의 지면과 평행을 이룰 정도로 옆으로 향하는 데다가 그렇게 길게 벋은 가지들의 수도 상당히 많아서, 마치 그 지점들을 중심으로 해서 한 층의 넓은 평면을 만들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층층나무는 그런 평면들을 몇 층씩 만들어 내면서 우아한 수형을 이루고 있어서 그 이름을 얻은 것이지요. 보통 이런 정도의 기하학적인 수형은 공원이나 정원 등에 심은 나무들을 사람들이 잘 재단해서 (전지작업을 통해)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층층나무는 자연 속에서도 이런 기하학적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필자는 층층나무의 그런 이미지의 대표적인 모습을 오대산 선재길 근처의 숲속에서 발견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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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9일 강원도 선재길 숲속의 층층나무: 층이 져서 가지를 벋은 전형적인 모습 

 

‘궁궐의 우리 나무’라는 책 속에서 박상진 선생은 이런 층층나무 모습 때문에 이 나무가 계단나무라고도 불리고 있지만, 숲에서 이런 모습으로 빨리 자라 햇빛을 독식하려 하기 때문에 ‘숲속의 무법자’ 또는 暴木(폭목)이라 불리기도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나무 세계에서는 햇빛을 독식하려 하는 것은 미움을 받기 쉽지요. 

 

층층나무는 잎 역시 매우 강한 개성을 가진 모습으로 내밉니다. 매우 정돈된 잎들이 가지 끝에 함께 모여 나는 모습을 보이는데 층층나무 잎의 강한 개성은 그 엽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상상하는 엽맥은 잎의 위아래를 가로지르는 긴 중심 엽맥을 가운데 두고 거기로부터 잎의 가장자리로 향해 몇 개의 직선 모양의 가지 엽맥을 만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층층나무는 그 중심 엽맥으로부터 만든 가지 엽맥들이 곡선을 그리면서 잎의 꼭지점을 향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필자에게는 이 또한 매우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런 모습의 엽맥은 층층나무과의 모든 식물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이번에 소개하는 또 다른 나무 산딸나무도 그렇고, 이른 봄 피는 노란 꽃 덕분에 인기를 끄는 산수유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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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층층나무가 지금 한창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요즘 어디서나 인기를 끌고 있는 이팝나무 비슷하게 잎들 위로 수북한 모습의 꽃다발을 만들어냅니다. 그 꽃다발을 자세히 보면 수많은 작은 하얀 꽃들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작은 꽃들의 꽃잎 네 장이 딱 십자가 모습을 이루고 피어나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장미과의 꽃들은 대체로 5개의 꽃잎을 가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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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30일 분당 탄천변의 층층나무 개화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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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14일 KIST 정문 근처 층층나무: 층층나무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꽃을 피웠다. 

 

그런 십자가 모양의 꽃 가운데마다 열매가 열리는데 그 열매는 조금 붉은 색으로 익어가다가 완전히 익으면 까만 색으로 바뀝니다. 넓게 펼친 가지들 위에 마치 한상차림처럼 펼쳐놓은 까만 열매의 모습도 인상적이라고 느껴지지만 그 색깔 때문에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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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30일 용인 레이크사이드CC 층층나무 열매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산딸나무는 매우 사랑 받는 나무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공원을 가더라도 이 나무는 거의 반드시 심겨 있는 대표수종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이 나무가 공원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이렇게 인기를 얻는 이유는 요즈음이 되어야 잘 알 수 있습니다. 나무의 크기도 그다지 크지 않고 층층나무처럼 기하학적인 수형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나무가 5월 중하순에 개화하게 되면 그 꽃의 신기한 모습에 누구나 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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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25일 청주 한국교원대학교 캠퍼스의 산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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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5일 분당 율동공원의 산딸나무 개화 모습

 

하얀 색 꽃 잎 네 장을 잎 위로 피워내는데, 대체로 이런 꽃들을 다닥다닥 군집을 이루면서 수없이 펼치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지요. 주목할 만한 것은 산딸나무의 꽃들은 하나하나가 제법 크기 때문에 층층나무의 꽃과는 매우 다르게 보이는데, 층층나무 꽃과 마찬가지로 네 개의 잎이 딱 십자가를 이루고 있는 모습인 것을 보면 두 나무가 친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특이한 모습의 엽맥도 이 두 나무의 친척 관계를 증명해 줍니다. 

 

필자는 이런 산딸나무의 꽃 모양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색종이로 만들었던 바람개비를 연상하곤 합니다. 바람이 많은 지방에 가면 시나 군의 입구에 조성해 놓은 홍보 공원에 이런 모양의 바람개비들을 수없이 세워 놓은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 나무의 이름이 현대에 지어졌다면 ‘바람개비나무’라는 이름을 얻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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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31일 분당 율동공원

이 나무의 이름이 산딸나무라고 지어진 이유는 조금 기다려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이 이름을 들으면 곧바로 이 나무에서 ‘산딸기’가 열리는가 하고 묻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잼으로 만들어 먹는 산딸기는 가시가 많은 덤불성 작은 나무에서 열리지요. 가을이 되면 이 나무의 꽃들 한 가운데에 동그란 털뭉치 모습으로 달려 있던 부분이 열매가 되는데, 빨갛게 익은 그 모습이 산딸기를 연상하게 만들어서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이 나무의 열매도 먹을 수 있는가 하고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꽤 많이 열리는 이 나무 열매가 과일로 팔리지 않는 것을 보면 식용가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나무 열매에 어느 정도의 당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새들이 즐겨 쪼아먹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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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15일 경희대 수원캠퍼스 산딸나무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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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4일 여의도공원 산딸나무: 딸기 같은 열매를 새가 쪼아먹고 있다.

 

우리나라 토종 산딸나무보다는 훨씬 일찍 (약 2-3주전) 꽃을 피우는 산딸나무가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미국산딸나무라고 불리는데, 이 나무 꽃의 꽃잎 하나하나는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어 더욱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나무 역시 나무 전체를 덮다시피 꽃을 피우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우리 토종보다는 약간 분홍색을 머금고 있는 것도 특이합니다. 그런데 이 미국산딸나무는 가을이 되어 가운데 털뭉치 모양이 열매가 되면 산딸기 모양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열매를 매답니다. 산수유 열매와 비슷한 모양의 열매 몇 개를 그 자리에 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비슷한 모양의 꽃을 피운 나무가 이렇게 다른 모습의 열매를 매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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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3일 서울시립대 교정의 미국산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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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13일 분당 율동공원 미국산딸나무 열매: 산수유 열매를 닮았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미국산딸나무라는 이름이 상당히 못마땅합니다. 산딸나무라는 이름이 그 열매 때문에 붙여졌는데 미국산딸나무의 열매는 산딸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니까요. 열매만 본다면 미국산수유가 더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꽃의 모양을 생각해 보면 우리 산딸나무와 참으로 닮아 있으니 그렇게 지은 것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한 ‘바람개비나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면 이런 약간의 모순들이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미국바람개비나무’라 하면 너무 이름이 길어진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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