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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63) 나무와 경제: 1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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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7월02일 17시0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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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인 필자가 나무에 빠져서 산 지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든지 필자를 ‘나무박사’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필자를 보면 모르는 나무 이름을 묻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많은 SNS 채팅방에서도 그렇고 산행 등의 모임에서도 친구, 친지들이 다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골프장에서 다른 손님들이 계속 물어오고 자신도 궁금했는데 필자 덕분에 특정 나무 이름을 알게 되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골프장 캐디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지인들은 필자가 산업연구원이 아니라 산림연구원 원장을 지낸 것이 아닌가 하며 놀리기도 합니다. 필자는 본래 보직으로 받은 것은 산림연구원장이었는데 그 임명장을 가져오다가 물을 엎질러서 그 글씨가 흐려져서 산업연구원장을 지냈다고 너스레를 떨곤 합니다. 

 

나무를 향해 깊은 사랑에 빠져서 어디서나 나무 관찰에 열중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지만, 피는 속이지 못한다고 하듯이 경제학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필자는 나무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세계 속에서 놀랍게도 ‘경제 논리’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곤 합니다. 그런 필자의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인 소회를 피력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나무와 경제’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이 글 속에서 나무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은 그 정보는 산림청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국토의 63%가 산림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이지만, (산림청에 의하면 세계 평균의 2배라고 합니다.) 그 경제적 가치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산림이 제공하는 모든 공익적 가치를 (수원함양, 대기정화까지 포함) 산림청은 126조원 (2014년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순수한 경제적 가치는 40조원 (2017년 기준) 정도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산림 관련 일자리의 수가 25만개 (2017년 기준)라고 평가하고 있으니, 2021년 5월 기준 전국 취업자수 2,755만명에 비하면 매우 작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국토의 대부분이 산림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산림자원이 가지는 경쟁력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목재 관련 수출입 통계 추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1970년대 말까지 수출입이 비슷한 수준을 보이다가 우리 경제와 산업구조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수입이 수출의 30배 가까이나 되는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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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런 재미없는(?) 숫자를 소개하는 것이 늘 나무 사랑을 입버름처럼 얘기하는 필자 같은 사람의 진정한 의도가 아닌 것은 짐작하실 것 같습니다. 나무와 식물들끼리 만들어가는 세계 속에서도 우리가 만든 경제 생태계에서 작동하는 논리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나무의 세계가 ‘평화로운 조화의 세계’ 혹은 ‘균형 잡힌 세계’는 아니라는 사실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느끼는 살벌한 ‘경쟁의 세계’ 혹은 ‘약육강식의 세계’까지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나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은 동물의 세계 못지않다고 느낍니다. 경쟁력이 우월한 나무들이 산림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군림하고 있는 모습은 ‘동물 왕국’의 지배자로 불리는 사자보다도 더 무자비하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고 치부되고 있는 대기업집단들도 그 정도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강한 경쟁력을 가지는 (키가 크고 번식력이 강한) 참나무 등의 이른바 교목(喬木)들이 숲의 성층권을 지배하며 나무의 생명줄인 햇빛을 독점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아래에서 키도 작고 연약하게 보이는 소교목(小喬木), 관목(灌木) 등도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은 경이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각자의 특성을 한껏 발휘하며 숲 중간을 지나가는 햇빛을 잡는 데 온갖 힘을 기울입니다. 노린재나무, 때죽나무 등 키 작은 녀석들은 이른 봄부터 잎을 내밉니다. 아직 큰 나무들이 잎을 달지 않아서 하늘이 훨씬 많이 열렸을 때부터 광합성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가을 늦게까지 잎을 매달고 있는 나무들도 있습니다. 쪽동백나무와 생강나무 등은 잎을 넓게 만드는 특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옻나무, 붉나무 등은 한 잎에 여러 개의 작은 잎을 매다는 복엽구조를 이용하여 넓게 잎을 펼치지요. 이들은 그렇게 해서 숲 중간으로 지나가는 햇빛을 가능한 한 많이 포착하려고 애쓰는 것이지요. 중간 크기 단풍나무, 팥배나무 등은 가지를 넓게 펼쳐서 마당에 멍석을 깔듯이 수많은 잎들을 넓게 넓게 펼치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명산이라 부르는 많은 산에서 진달래 능선, 철쭉 능선들을 만나게 되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들 키 작은 나무들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가 만들어준 열린 하늘을 잘 활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 아래 쪽 등산로에서 흔히 만나는 더 키가 작은 나무들인 국수나무, 황매화, 조팝나무 등도 이런 열린 하늘을 잘 찾아내어 자라고 있지요. 또 이들 키 작은 나무들은 잎을 무수히 내어서 마치 덤불을 이루듯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이들의 뛰어난 생활력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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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8일 판교 태봉산 교목 아래서 이르게 잎을 내민 때죽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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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4일 대지산 큰 나무 아래로 큰 잎을 넓게 펼친 쪽동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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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8일 남한산성 당단풍나무가 바닥까지 펼쳐놓은 잎들: 지나가는 햇빛은 하나도 놓치지 않을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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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10일 백운산 바라산 중간의 철쭉들이 등산로 주변에 밀집해서 자라고 있다.

 

키 큰 나무들을 이용하여 햇빛을 찾아 나서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덩굴식물들, 즉, 칡, 등나무, 청미래덩굴, 으름덩굴, 담쟁이덩굴, 머루, 인동덩굴, 노박덩굴, 마 등이 큰 나무들을 타고 오르고 있지요. 때로는 이들 덩굴식물들이 자신들이 타고 오르는 숙주 나무들을 거의 질식시켜서 생명력을 위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키와 덩치가 모두 큰 나무들은 이들이 타고 올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예 키 큰 나무들에 기생해서 사는 겨우살이, 버섯, 이끼 등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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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5일 광주 문형산의 담쟁이덩굴이 큰 아까시나무 등걸을 타고오르고 있다.

 

이들보다 더 아래에서 관목들 덤불 숲을 피해서 무수한 잎을 내밀고 광합성의 기회를 엿보는 풀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요. 산에서 자라는 풀들이 연약해 보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신축성이라는 무기를 잘 살려서 음지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산 전체가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해서 모든 나무와 풀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또 가끔은 서로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 경제 생태계에도 그대로 투영해 볼 수 있습니다. 독점적 대기업들이 경제를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이 영위하기 힘든 영역에서 혹은 이들과 협력하면서 자신들의 경쟁력을 놀랍도록 잘 발휘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작은 기업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특기나 기술을 가지고 놀라울 정도의 능력을 보이고 있지요.  

 

산의 자연 생태계에서든 경제 생태계에서든 중요한 외생변수가 있습니다. 자연 생태계에서도 사람들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개입하면서 기존 생태계 전체를 파괴해 버리기도 하고 일부를 근원적으로 변경하기도 하듯이, 경제 생태계에서는 정부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연 생태계에 사람들이 가지는 영향에 대해 적절한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하듯이, 경제 생태계에서도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 또한 생태계의 건전한 지속 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깊은 숙고를 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겠지요. 

 

놀라운 점은 큰 나무, 작은 나무, 그리고 그늘 속의 풀꽃이 만들어내는 자연 생태계를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을 선호하는 환경론자들이 경제 생태계에서는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는 어쩌면 매우 이율배반적인 자세를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환경 보호를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하는 것이 경제 생태계의 균형을 잘 만들어가는 길일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이렇게 자연 생태계를 바라보면서 우리 경제 생태계의 논리에 투영시켜 보는 것이 이 시리즈를 여는 필자의 진정한 의도라는 점을 이해하시고 기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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