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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84) 무관심 속에서도 묵묵히 우리 산을 지키는 노간주나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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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11월26일 17시0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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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관찰하는 것을 취미 삼아 열정을 쏟다 보니 이른 새벽에 산행을 나서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시작된 이후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다니기도 했습니다. 수영으로 전환하기 전인 90년대 초에도 몇 년간 이런 식의 새벽 산행을 한 후에 출근하는 생활을 하기도 했지요. 그때 만났던 이 나무를 보고서 다음에 나무에 대한 글을 쓴다면 반드시 이 나무부터 소개하리라 마음먹었던 나무가 바로 이번에 소개하려는 노간주나무입니다. 

 

컴컴한 새벽에 산행을 하다 보면 종종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냥 생각 없이 다니다가도 갑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검은 그림자 같은 존재가 나타나면 꽤 놀라면서 그런 느낌이 들곤 하지요. 그 가운데 필자를 가장 많이 놀라게 한 나무가 바로 노간주나무였습니다. 이 나무는 그다지 크게 자라지 않아서 기껏 큰 나무가 3m 정도이고, 보통 개체들은 2m 전후입니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이 나무들은 큰 나무를 피해서 등산로 주변을 서식지로 삼은 개체들이 많습니다. 어둑어둑한 등산로를 빠르게 걷다가 갑자기 2m 정도 장신의 호리호리한 시커먼 물체가 나타나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마치 저승사자 같기도 하고, 옛 인기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야차 같기도 하고 제법 무서운 기분이 들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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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오른 수락산의 노간주나무: 
바위 위에 함께 뿌리 내린 소나무의 기상에 비해 왜소하기 짝이 없다.

 

필자에게 이런 깊은 인상을 남긴 노간주나무는 실은 우리 모두에게서 철저히 무시되며 살아온 나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침엽수라면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처럼 크게 자라든지, 혹은 구상나무, 주목처럼 높은 산 정상에 서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든지 할 것을 기대하게 되는데, 이 나무는 작게 자라는 데다가 수형도 그다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줄기 주변에 달리는 가지들은 되도록 줄기 가까이 붙어서 형성되고, 대체로 힘없이 처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요. 거기에 달리는 바늘잎들도 대체로 질서 없이 달려서 사진을 아무리 잘 찍으려 해도 그 결과가 그다지 ‘태깔이 나지 않는’ 그런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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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3일 오른 청계산의 노간주나무

 

그래서 그런지 나무 전문가들이나 원로 수목학자들도 이 나무를 이야기 소재로 삼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히 필자의 애독서인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에서 이 나무를 다루어 주어서 반가웠습니다. 이 책에서 이 나무의 이름이 한자 이름 ‘老柯子木 (노가자목)’에서 나온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 한자 이름은 늙은 가지를 가진 나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작게 자라다 보니 이 나무의 가지는 매우 질긴 특성을 가져서, 과거에는 도낏자루 (柯라는 한자의 뜻이 바로 자루라고 하네요.), 소코뚜레, 도리깨발 등과 같은 농기구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한자 이름은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말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특유의 이름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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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0일 수락산에서 만난 노간주나무: 
아마도 이 나무라면 가지를 농기구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일 것 같다.

 

노간주나무를 잘 관찰해 보면 여러모로 향나무를 닮았습니다. 크게 자라지 않는 점만 빼고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뾰족한 바늘잎이 특히 닮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나무는 향나무와 같은 가족 (향나무속)에 속합니다. 또 노간주나무는 향나무와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둥근 열매를 약간 푸른색으로 맺는데, 이 열매는 약용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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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6일 양주 불곡산에서 만난 노간주나무: 검푸른 빛의 열매를 곳곳에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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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2일 남산에서 만난 노간주나무는 가지 사이로 꽃을 피웠다. 
(소나무와 비슷한 꽃)

 

필자는 고흐가 그린 프랑스 남부의 나무들이 이 나무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해 왔는데, 흔히 고흐 그림 속의 나무를 삼나무로 번역하여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이라는 한글 제목을 붙이곤 합니다만 그 나무의 영문 이름은 ‘cypress’ (불어 이름은 cypres)이고, 그래서 이 나무는 삼나무보다는 측백나무에 가까운 나무입니다. (매우 용감한 어느 분은 그림 제목을 ‘측백나무가 있는 길’이라고 바꾸어서 소개하고 있어서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노간주나무와도 조금 더 가까워지는 셈이지요. 측백나무는 향나무와 친척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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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그린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 그림

 

노간주나무와 관련하여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필자의 고등학교 동기 한 사람이 들려주었습니다. 과거 초등학교 (국민학교라고 불릴 시절) 운동장 주변에 심을 나무를 구하기가 어려웠을 때, 선배들의 지도하에 가까운 산으로 가서 이 나무를 몇 그루 캐 와서 향나무 삼아 조경목으로 심었다는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 나무가 향나무를 닮았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라서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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