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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5-중​> 부채 누적의 부작용과 문제점 ②​ 장기적 관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12월06일 16시30분

작성자

  • 이종규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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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 경제구조의 왜곡

 

   부채 상환능력 이상으로 빚이 쌓이게 되면 빚을 진 사람 입장에서는 일할 의욕을 잃게 된다. 가계부채가 누적된다면 빚이 많은 가구가 늘어나고 일할 의지가 약화되는 가구가 점차 많아지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한탕”을 노리는 경향이 강화될 수도 있다. 많은 빚을 진 채무자는 부채를 상환하기 위하여 위험도가 높은 프로젝트를 선택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영끌” “빚투”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이러한 경향의 예로 볼 수 있다 1). 

 

   장기 투자 여력이 위축되는 것도 과다 부채로 인한 구조 왜곡 현상의 한 예이다. 부채가 많은 경우 장기차입이 여의치 않고 단기 차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단기부채로 장기 투자를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는 장기투자가 활성화되기 힘들다.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는 좀비(zombie) 경제주체가 생겨나는 문제도 있다. 특히 금융불안기에는 과다 차입 경제주체에 대해 금융기관이 부도를 내기 쉽지 않다. 금융기관은 단기적으로 손실이 많아지는 것을 경계하여 과다 차입자들에게 대출을 연장하거나 오히려 대출을 확대하게 된다. 결국 부채 상환 능력이 없는 경제 주체가 온존하고 심지어는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과다 차입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문제점을 덮기 위하여 더욱 공격적으로 투자하거나 차입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금융자원을 흡수하기도 한다(Popov et al. 2018). 

 

  * Popov, Alexander, Francesca Barbiero, and Marcin Wolski, “Debt Overhang and Investment Efficiency,” ECB, Working Paper Series, No. 2213, December 2018.

 

   결론적으로 부채가 과도하게 누적되면 과다 차입자들이 의욕을 상실하거나 비생산적 경제활동에 몰두하는 등의 경향이 심화됨으로써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저하되는 구조적 비효율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4. 장기 거시경제적 영향

 

   가계부채가 누적되면 거시경제적으로는 장기불황(secular stagnation)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장기불황은 본래 투자가 부진하여 저축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함에 따라 경제가 위축되는 상황을 지칭한다. Summers(2020)는 2010년대 미국 경제 상황에서 초저금리 상황에서도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고 경제성장세가 지체되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개념을 차용하였다. Summers(2020)는 투자가 부진한 이유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른 자본재 가격의 하락, 경제의 디지털화 등을 꼽았고 고령화의 진전, 소득분배구조 악화, 불확실성의 증대 등으로 저축이 늘고 있다는 점에 근거하여 근래 미국의 경제상황을 장기불황으로 규정하였다.

 

   * Summers, Lawrence H., “Accepting the Reality of Secular Stagnation,” IMF, Finance & Development, March 2020.

 

   가계부채가 축적되면 장기불황과 비슷한 경제 상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가계의 과다 채무가 소비를 위축시키고 결과적으로 총수요를 억제함으로써 경제성장세가 둔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반적인 경제성장세 둔화에 따라 투자도 활기를 잃게 될 것이다. 결국 수요 부진에 의한 저성장이 만연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가계부채 누증으로 장기불황이 진행된다면 그 구체적인 형태가 어떠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 경우 소비 위축이 핵심 요소가 된다고 보면 일본형 장기불황이나 미국식 저성장과는 다른 형태의 장기불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2).

 

   가계부채 누증이 잠재성장률을 잠식하게 된다는 점도 거시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가계부채가 잠재성장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부채의 누적은 경제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부채가 과중한 경제구조가 형성되면 그것이 일종의 비효율로 작용하여 성장잠재력을 제약하게 된다.

 

   그리고 가계부채로 인한 수요 감소가 잠재성장률을 하락시킬 수도 있다. 수요 요인이 잠재성장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비교적 생경한 논리이다. 통상적으로 잠재성장력은 노동, 자본, 그리고 기술 등 투입 요소에 의해 결정되고 수요 요인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수요 부족으로 경제성장이 더뎌지면 투자가 위축되고 그 결과 잠재성장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누적은 수요 부족으로 인한 장기불황을 초래하고 이 여파가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5. 거시경제정책에 미치는 영향

 

   거시경제정책은 경기진폭을 줄여 안정적인 경제 여건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기가 위축되는 경우 거시경제정책을 확장적으로 구사하고 반대로 경기가 호황이면 긴축적으로 운용한다. 그런데 부채가 누적되면 이와 같은 정통적인 거시경제정책 운용에 상당한 제약이 뒤따르게 된다.

 

   부채가 누적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경기변동의 진폭이 커진다. 일반적으로 금융부문의 크기가 커지고 그 구조가 복잡해지면 실물 경제의 상황을 금융부문에서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된다 3). 

가계부채 누적은 경기진폭을 확대시킨다는 측면에서 거시경제정책의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달리 말하면 부채 누적은 경제안정화정책의 수행 여건을 악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거시경제정책의 효과를 제약하기도 한다. 부채가 누적되면 확장적 거시경제정책(확대재정정책이나 저금리정책)을 추진하더라도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가계부채 누적으로 소비가 위축되기 때문에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부채 누적은 거시경제정책의 방향을 오도할 수도 있다. 부채가 누적되면 그에 따라 성장잠재력이 약화된다. 하지만 부채를 잠재GDP 결정 요인으로 감안하지 못하면 성장잠재력을 과대 추정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실제 경제성장경로가 잠재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을 펼치기 십상이다. 실제 경제성장률이 부채 누적으로 낮아진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는 수준이라면 이 경우의 거시경제정책은 합당한 정책과는 정반대로 집행된 것이다. 이와 같이 부채가 누적되면 거시경제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 다르게는 부채의 덫(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이는 차입자들의 부채 상환 부담이 증가하는 것을 우려하여 정책 당국이 금리를 선뜻 인상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칭한다. 즉 부채가 누적되면 정책 당국이 신축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데 특히 금리를 인상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 있다.

 

   이런 연유로 거시경제정책이 비대칭적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책 당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의사결정은 주저하거나 망설이는 반면 금리를 인하는 쪽으로는 비교적 신속히 대응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더 심한 경우에는 거시경제정책이 금융불균형의 누적을 촉진할 수도 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부채가 누적된 상황에서 거시경제정책 수단의 효과가 예상만큼 크지 않다. 예를 들면 초저금리를 구사하거나 저금리 기조를 장기간 유지하더라도 경제성장률이 과히 높아지지 않는다. 그에 따라 추가적인 조치를 강구하지만 경기는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과잉 유동성을 형성하는 부작용만을 불러오게 된다. 결론적으로 부채가 누적된 상황에서 효과가 크지 않은 거시경제정책을 과도하게 동원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것이 과잉 유동성 형성 등 금융불균형 문제가 심화시킬 수 있다.

 

   Borio and Disyatat (2014)는 선진국 경제가 2000년대 이후 이러한 악순환에 빠졌다고 본다. 이들에 따르면 선진국의 경우 2000년대 이래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하하였음에도 경제성장은 회복되지 않았고 부채가 누적되어왔다. 이 상황에서 경제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거시경제정책의 강도는 더욱 더 강화되었다. 초저금리에 더하여 양적완화 조치 등의 특별 대책까지 추진하였다. 그러나 기대한 경제성장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자산가격의 폭등 등 부작용이 더욱 심화되고 말았다 4).

 

    * Borio, Claudio, and Piti Disyatat, “Low Interest Rates and Secular Stagnation: Is Debt a Missing Link?“ VoxEU, 25 June, 2014.


6.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

 

   부채가 누적되면 예상치 못한 충격에 대한 대응 능력, 혹은 충격흡수력이 약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예컨대 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과다 차입 가계의 재무상태는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변동금리부 일시 상환 조건의 대출 계약이 대다수라는 점에서 가계대출은 구조적으로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 금리가 상승하면 소비지출 위축, 나아가 채무 상환 능력 약화 등 그 부작용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과다 차입자의 채무 상환 능력 약화는 금융기관의 수익구조 악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금융기관의 취약성 증대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치는 요인이 된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2021년 6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최근 금융취약성 지수(FVI, financial vulnerability index)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관해서는 ‘가계부채의 수준과 질에 대한 평가’편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이 높아지는 경우 투기적 공격(speculative attack)의 대상이 될 여지가 많아지게 된다. 투기적 공격이라 함은 금융거래 상대편의 신용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나면 갑자기 보유한 자산(대출)을 매각하거나 대출을 중단하는 것과 같이 행태가 급변하는 현상을 가르킨다. 이 현상은 주로 외환시장에 관찰되는데 우리나라도 가계부채의 누적으로 이와 같은 투기적 공격의 대상이 될 여지가 커지게 되었다.

 

   특히 ‘오징어게임’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국내의 경제적 어려움, 특히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최근 Japan Times가 ‘오징어게임’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심각성을 다룬 기사를 작성하였는데 이 기사는 다른 나라의 많은 언론 매체에 전제되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국제 사회의 감시와 경각심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Japan Times, “No ‘Squid Game’: South Korea’s real-life debt trap,” October 22, 2021.

 

   더욱 심각한 경우가 경제위기이다. 과다 채무 부담으로 인한 채무상환능력 악화가 금융기관의 손실로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자산가격 하락 등이 맞물려 경제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즉 과다 차입이 중핵적 요소로 작용하여 금융불안 요소들끼리 악순환적 고리(negative feedback loop)가 형성될 수 있다. 채무 상환을 목적으로 보유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고 그 결과 자산가격이 급락함에 따라 자산 보유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확대된다. 이 악순환 고리는 한 번 형성되고 나면 좀처럼 단절하기 어렵고 그 여파가 금융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줌으로써 경제위기로 진화하게 된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가계부채의 과중으로 인해 여러 가지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발생한 경제위기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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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미국의 주택부문에서는 주택가격 하락과 대출상환 능력 약화, 주택대출 부실 증대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고리가 형성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유동화한 파생금융상품의 가치가 급락하고 그로 인해 금융기관들은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손실이 확대되는 또 다른 악순환도 발생하였다. 손실이 크게 늘어난 금융기관들은 대출을 줄였고 이로 인해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었다. 경기 위축이 다시 채무자의 상환능력 축소, 자산가격 하락, 금융기관 손실 확대로 이어지는 악순환도 형성되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다양한 형태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서로 맞물리면서 진행되었는데 이 악순환을 형성시키는 단초가 가계의 과다 채무였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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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에 나타난 “영끌” 등의 현상은 투자자 자신의 부채가 많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과의 자산 격차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으로 볼 수도 있다.

2) 일본의 경우 자산가격 하락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민간 경제주체들이 부채를 조정하면서 장기불황이 초래되었다. 그에 비해 2010년대 미국에서는 금융기관들의 위험 회피, 기업들의 신용도 악화 등을 배경으로 투자가 부진하면서 금융위기로 인한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미국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 주택가격이 하락하였지만 주식가격은 상승세를 지속하였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자산가격 하락이 장기불황의 주요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3) 이 메커니즘이 소위 금융의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이다. 예를 들면 경기 상승기에는 자산가격이 상승하는데 이것이 담보 가치를 높여 대출을 활성화하고 실물 경제활동을 더욱 자극하게 된다. 반대로 경기 하강기에는 실물 활동 위축의 영향으로 금융부문에서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거나 시장 분위기가 경색되게 되는데 이러한 금융부문의 반응이 실물 경제 활동을 더욱 위축시키게 된다.

4) 이 견해는 선진국 경기 부진의 원인을 저금리라는 금융 현상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단순히 수요 부족으로 장기불황이 초래되었다는 Summers의 시각과 차이가 있다.

 

 

<연재 순서>

 

1.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1> 무엇이 문제인가?

2.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2> 얼마나 늘었나?

3.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3> 누증의 원인

4.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4> 부채 수준과 질(質)에 대한 평가​

5.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5-​상> 부채 누적의 부작용과 문제점 ① ​단기적 관점

6.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5-중​> 부채 누적의 부작용과 문제점 ​ 장기적 관점

7.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5-하> 부채 누적의 부작용과 문제점 ③​ 최악상황과 시사점

8.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6> 과거 대책의 연혁

9.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7> 현행 대책의 문제점과 한계

10.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8> 바람직한 대책의 모색 

※ 이 제목은 집필과정에서 다소 변화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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