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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대외 여건 변화와 대응 방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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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3월13일 16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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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내용 요약>

 ► 향후 탄소중립,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 그리고 각국의 경쟁적인 공급망 전략 자산화 흐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공급망 충격 그리고 구조 변화는 다분히 ‘의도된’ 충격·변화일 가능성이 높으며, 통상적 인 시장 기능을 통해 해소되는 수준을 벗어난다. 

 

► 그리고 우리의 현 산업·무역 구조가 이들이 초래하는 변화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변화 요인이 특정국과의 일시적 갈등 혹은 팬데믹에 따른 일회성 현상이 아닌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산업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기조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제는 단·장기 정책 설계를 통해 현 상황을 안정시키면서도 중장기 글로벌 산업 질서재편 흐름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 단기적으로는 상황 관리 및 조기 회복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는 공급망 리스크 민감 품목, 즉 경제안보 품목의 관리체계를 고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산업 질서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내 지렛대, 즉 첨단기술·산업의 경쟁력을 변화된 공급 망 체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할 필요가 있다. 

 

► 따라서 첨단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국내 생산·입지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국내 산업 부문의 전략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공급망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1. 국가적 의제가 된 공급망 문제

 

작년 하반기를 강타한 ‘요소수’ 사태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인 지난 1월 초, 인도네시아 정부는 1월 한 달 동안 석탄 수출을 중단하는 조치를 전격 단행하였다. 석탄뿐 만이 아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당장 올해 알루미늄의 원재료인 보크사이트 수출을, 내년부터는 구리 원광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겨준 이번 조치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곧바로 수출 통제를 완화 하면서 다행히 글로벌 공급망에 큰 혼란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 2019년 이후, 일본 수출 규제,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마스크 및 와이어하네스 공급 차질, 최 근 차량용 반도체, 요소수 대란 등의 연이은 공급 충격으로 공급망 민감도가 부쩍 높 아진 우리에게 금번 인도네시아 정부의 급작스러운 석탄 수출 통제 조치는 다시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최근 ‘산업’의 최대 화두는 단연 ‘공급망(Supply Chain)’이다. 공급망은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재료(Raw Material)부터 완제품(Final Product)이 최종 소비자에게 전 달되기까지의 재화, 서비스 및 정보의 흐름이 이뤄지는 연결망을 의미한다.1) 

그간 공 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SCM)는 개별 기업 차원의 이슈였다. 사실 기업 차원에서 크고 작은 공급망 교란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데, 대부분은 시장 (가격) 기능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2)

 

 그러나 최근 팬데믹, 대규모 자연재해 등 에 따라 공급망 교란 범위가 글로벌 수준으로 확산되고, 주요국의 공급망 전략 자산 화에 따른 ‘의도된 단절’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이제 특정 산업·품목의 공급망 문제는 개별 기업의 대응 역량과 범위를 벗어나는 이슈가 되었다. 특히, 국가적으로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필수재화나 전략 물자에 대한 공급망 리스크 관리가 산업경쟁력 유지, 사회 안정, 외교·안보상의 지렛대 확보와 직결되면서 공급망 충격에 대한 대 응 체계 및 회복력(resilience) 확보는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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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따라 주요국은 공급망 문제 대응을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마스크, 인공호흡기 등 개인보호장비(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공급 부족으로 큰 혼란을 겪은 바 있는 미국은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대란 해소를 위해 두 차례3) 국방물자생산법(De- fense Production Act)4)을 발동하여 조기에 수급을 안정화하였다.

또한 현재 미국 내 공급망 대란의 원인 중 하나인 물류 병목 해소를 위해 항구 및 내륙 수로의 수용력을 확대하는 데 2억 5,0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5) 

 

일본 역시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파격적인 공급망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2020년 4월 7일 내각부 주 도로 발표한 “신형 코로나 감염병 긴급 경제 대책”은 생산 거점의 국내 이전 혹은 동 남아시아 국가로 이전하는 기업에게 비용의 1/2~2/3를 보조하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6) 뿐만 아니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국내 투자 촉진 사업비 보조금, 해외 공급망 다변화 등의 지원사업, 공급망 강인화 및 리스크 관리 지원, 희소금속 비축 대 책, 중소·소규모 사업자의 사업연속성계획(Business Continuity Plan) 수립을 지원 하는 등 공급망 관리를 위한 다양한 지원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겪었던 마스크 및 손소독제 대란과 최근 요소수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두 차례 “긴급수급조정조치”7)를 발동해서 수급을 안정시킨 바 있다.

 

각국의 선제적이고 파격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는 현재까지도 제조와 물류 부문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국제정세 불안도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공급망 불확실성 요인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글로벌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충격이 발생했을 때 조기에 회복시키는 것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특히 소재·부품 등 중간재 교역 비중이 높은 우리 산업에 최선결 사안이다.

 

본고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면서, 공급망 충격에 대한 단기 수급 대책을 넘어 향후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 요인, 그리고 새롭게 형성되는 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이를 위해 우선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인 요인을 점검하고, 우리 산업에 주는 함의를 고찰한다. 그런 다음, 우리 공급망의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면서 향후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방안을 제시한다.


2. 글로벌 공급망의 잠재적 변화 요인

 

(1)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의 한 축: 탄소중립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한 축은 ‘탄소중립’이다. 탄소중립 기조 의 글로벌 확산은 제품을 만드는 방식과 제품 자체를 변화시키며 ‘탄소’에 기반한 전통적 공급망의 퇴조를 촉진한다. 이는 기존 탄소집약적 원료, 소재, 부품 및 최종 제 품 등이 제조 공급망에서 점진적으로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탄소중립은 2050년까지 진행되는 장기간의 산업·에너지 전환 계획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전 환에 따른 공급망상의 문제 발생 가능성은 다소 제한적이다. 다만, 전환이 진행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금번 요소수 사태와 같이 일시적인 ‘공급망 발작’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국내외 주요 국가의 전방위적 탄소중립 추진은 다양한 요인과 경로를 따라 우리 산업이 연결된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첫 번째로 대표적인 탄소집약적 에너지 인 석탄의 급격한 감축 과정에서 공급망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중국 및 신남방지역 국가 등을 포함하여 아직까지 대다수 개도국은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인 석탄을 활용한 발전 비중이 높은데 단기적인 탄소중립 목표를 맞추기 위해 석탄 사용을 과격하게 축소할 경우,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전력난과 함께 이들 국가에서 생산하는 에너 지다소비 품목에 단기 공급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하반기, 중국에 서 생산되는 상당수의 에너지다소비 제품이 석탄 수급 차질로 시작된 전력난으로 생 산 차질을 겪은 바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그네슘 잉곳이다. 자동차 및 항공기 등의 경량화 추세로 수요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마그네슘은 대표적인 에너지다소비 제품 인데8), 전력난과 탄소배출 감소 등을 이유로 글로벌 생산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에서 마그네슘 생산설비 가동률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자동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 큰 영향을 초래한 바 있다. 

 

두 번째로는 탄소 성분을 원료(feedstock)로 하는 제품의 공급 감소이다. 탄소중립 기조 확산은 필연적으로 석탄, 석유 등을 원료로 하는 제품의 공급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높다. 예기치 못한 공급 충격이 발생할 때 공급 국가에서 자국의 수요를 우선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자국 중심으로 물량 확보에 나설 수 있으며 이 경우 수출을 통 제할 가능성이 높다. 금번 요소수 대란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중국-호주 간 갈등으로 중국의 호주산 석탄 수입 통제가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중국 내 석탄 부족 사태가 발생했는데, 그 여파는 석탄 가격 급등, 전력난 그리고 요소 생산량 감소로 이어졌다. 

그런데 중국 당국이 요소에 대한 중국 내수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출을 통 제하면서 금번 요소수 대란이 발생했다. 문제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많은 품목이 석 탄, 석유 등을 원료로 사용하는 제품들이며, 이들 품목의 대부분이 중국 및 신남방지 역 국가 등 개도국에서 생산된다는 점이다. 이는 요소수 대란과 같은 일시적 공급망 충격이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세 번째로는 탄소집약산업이 탈탄소 공정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전환기 공정에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중간재 품귀로 인해 공급망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철강산업이 탈탄소 공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철스크랩’과 ‘전극봉’ 품귀 현상이다. 철강산업의 궁극적인 탈탄소 공정이라 할 수 있는 수소환원제철 방식이 기술적 문제로 인해 아직까지 도입 시점이 불분명한 상황 에서 전환 과정에서 탄소배출 감축을 실현하는 길은 사실상 전기로 활용을 확대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 고로를 활용한 방식과 달리 전기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철스 크랩’과 ‘전극봉’이 반드시 필요한데, 각국이 경쟁적으로 전기로 공정을 확대할 경우 이와 같은 관련 원부자재의 단기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공급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기는 하지만 수요 급증, 공급국의 전략 자 산화 등이 겹칠 경우, 충분히 공급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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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는 탄소중립 시대 유망 제품의 수요 급증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중간재 공급 충격이다. 각국의 경쟁적인 탄소중립 추진으로 태양광,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 지 시스템과 전기·수소차, LNG추진선, 수소·암모니아 선박, 수소드론 등 미래형 모빌리티에 대한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탄소중립 유망 신제품에 핵심적으로 필요한 광물 및 소재·부품의 수요 급증을 초래 한다. 당장 전기자동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모터 등과 관련한 리튬, 네오디늄 등이 최 근 수요 급증에 따라 가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급 불균형 상황은 향후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러한 핵심 광물 및 소재·부품이 특정국에 쏠려있다는 점이다. 자원의 편재성, 공정 과정의 환경오염 문제, 제조 경제성 등으로 인해 이들 제품의 공급망이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는데, 경우에 따라 앞으로 이를 전략 무기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9)

 

(2) 공급망 불확실성의 다른 한 축: 미·중 간 패권경쟁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다른 한 축은 첨단 전략 기술·산업에 대해 미·중 간 펼쳐지고 있는 패권경쟁이다. 반도체, 통신, 인공지능 등 국가 핵심 전략기 술에 대해 과거 미·소 냉전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미·중 간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동 아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공급 구조와 질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은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 전략 기술·산업 공급망 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공급망의 진영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데10), 이는 글로벌 첨단 소재, 부품 및 장비의 공급 경로를 크게 변화시키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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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단적인 예가 트럼프 행정부 이후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는 SMIC, 화웨이 등과 같은 중국 테크기업에 대한 거래제한 기업 리스트(Entity List) 등재이다. 실제로 SMIC와 화웨이에 대한 제재로 인해 글로벌 기업과 이들 기업 간 거래 구 조가 크게 변화했는데, 이 같은 변화가 축적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구조가 재편된다.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제재로 부터 파생되는 일차적인 영향은 제재 대상이 되는 기업과 이와 관련한 공급망에 국한된다. 따라서 파급 범위와 경로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가 확대·강화되고 중국이 응전할 경우, 특히 미국의 기술·산업 동맹국을 상대로 중국이 보복에 나설 경우, 이로 인한 공급망 충격은 언제든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11) 

희토류 등 전략 원료 광물·소재12)는 물론이고 중국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글로 벌 공급망에서 공급 독점력을 확보하고 있는 상당수의 소재·부품 또한 공급의 경직적 특성을 고려할 때 단기적으로 충분히 무기화될 수 있다. 공급뿐만이 아니다. 중국 은 시장의 힘을 활용해서 글로벌 공급망에 큰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 의 패착으로 귀결되고 있지만, 중국이 호주에 취한 보복 조치도 바로 시장의 힘을 활용한 수입 통제였다.

 

3. 우리가 겪고 있는 공급망 충격과 구조적 문제

 

우리는 지난 2019년 일본 수출 규제를 겪은 이후 계속해서 공급망과 관련된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대응해야 하는 범위도 계속 확산되고 있다. 지난 일본 수출 규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같은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핵심 소부장이 국가의 전략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현실화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산업화 이후 우리가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첨단 소부장의 일본 의존이 산업 안보 차원에서 전략적 레버리지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을 자각시켜 준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 반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촉발된 공급망 충격과 이에 따른 여파는 특정 전략산업에 국한된 공급망 이슈를 전 산업을 대상으로 한 범용 소재·부품, 원료소재 뿐만 아니라 최종 소비재까지 문제 범위를 확산시켰으며, 우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시작된 교란도 예상치 못한 파급 경로를 거쳐 단기 간에 우리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자각시켜 주었다.

탄소중립과 미·중 간 패권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글로벌 산업 지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우리 산업·무역 구조가 이들 요인이 초래하는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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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근저에는 중국과 높은 수준으로 형성된 국제분업 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중간재 중심의 교역 구조로 인해 글로벌 최상위 수준의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 참여 수준13)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 산업은 특히 중국과 교역에서 그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한·중 간의 상품 교역은 철저하게 소재·부품·장비로 대 표되는 중간재 및 자본재가 중심인데, 2020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이들의 비중은 무려 94%에 육박한다. 그런데 중국의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이제 중국은 한국의 첨단 소재·부품을 수요하는 최대 시장이자 동시에 우리에 게 주요 중간재를 공급하는 핵심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그 비중이 점차 높아지면서 우리 산업의 중국산 중간재에 대한 의존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입에서 중간재 및 자본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對)세계 평균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이는 다른 국가에 비해 중간재 중심의 교역 구조와 상호보완적인 국제분업 관계가 형성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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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전 산업에 걸쳐 깊숙하게 형성된 분업구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 용하면서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중국이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고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영향이 크며, 우리의 대중국 투자가 확대되면서 이에 따른 역수입 물량이 증가한 것도 한 요인이다. 한·중 간 분업구조 의 고도화가 한·중 산업 발전에 상호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높아진 수급 집중도, 특히 우리가 중국에 과도 의존하고 있는 중간재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공급망 리스크의 핵심 근원이다. 

 

우리 무역 구조에 그 위험성이 잘 드러나 있다. 2020년 무역통계를 기준으로 우 리 공급망의 취약 구조를 분해해 보면, 특정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품목은 대 부분 중간재다. 그 중에서도 중국발 중간재의 비중이 상당히 높고, 환경적·경제적 요 인 그리고 자원 부재 등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 기반을 갖추기가 어려운 업종에 취약 품목이 대거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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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준, 순수입 품목으로서 특정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70%가 넘는 품 목은 전체 1만 1,133개(HS 10기준, 100만 달러 이상) 중 1,789개(16.1%) 이며 수 입금액 기준으로는 21.7%에 달한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수산물, 비금속광물제품, 정밀화학산업에 취약 품목이 다수 분포되어 있는데, 이들 업종은 우리나라의 해당 업종 전체 수입액의 40% 이상이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품목에서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망 취약 품목을 성질별로 살펴보면, 취약 품목 수입액의 56%가 중간재이며 업 종은 비금속광물, 석유화학, 정밀화학, 철강·비철금속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우리 주 력산업인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의 경우 취약 품목이 소재·부품과 같은 중간재보다는 자본재(장비)에 집중되어 있는 구조이다.14)

 

한편, 공급망 취약 품목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취약 품목 수입액의 32%, 품목 수의 53%가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전체 우리 대중국 수입액의 29.8%, 품목 수를 기준으로 보면 10.1%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특히, 비금속광물제품, 생활용품, 섬유, 철 강, 전기전자 업종의 중국발 공급망 리스크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들 산업의 대중국 수입에서 취약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수입액을 기준으로 50%를 상회 한다. 반면, 반도체, 조선, 자동차, 디스플레이산업의 대중국 수입에서 취약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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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공급망 취약 품목 중 일본 비중이 높은 업종은 디스플레이 및 반도체산업으로 나타났는데, 디스플레이는 장비, 반도체는 장비 및 소재에 취약 품목이 분포되어 있다.

 

4. 시사점과 대응 방안

 

앞서 살펴본 두 가지 요인은 향후 상당 기간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되며,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산업 질서의 변형을 가져오는 핵심 동인이 다. 단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충격은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지난 동일본 대지진 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 등에 의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일정 시간이 지 나면 자연스럽게 교란이 해소되고 균형을 회복한다. 그러나 이들과 다르게 탄소중 립,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 그리고 각국의 경쟁적인 공급망 전략 자산화 흐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공급망 충격 그리고 구조 변화는 다분히 ‘의도된’ 충격·변화일 가능성이 높으며, 통상적인 시장 기능을 통해 해소되는 수준을 벗어난다. 이는 ‘시장’ 의 시각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 소위 말하는 ‘경제안보’적 시각에서 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현 구조가 이들이 초래하는 변화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탄소집약적 산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글로벌 최상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적극적이며 과감한 해외 진출로 현재의 GVC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최대 수요시장이자 글로벌 생산 거점인 중국과 효율적 인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다른 나라가 확보하지 못한 경쟁력 있는 수급 체계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강점은 거대한 변화 흐름 속에서 우리 산업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리스크이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촉진하는 요인이 모두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현 글로벌 공급 체계에 큰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며, 그 변화에 우리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번 요소수 대란을 겪으면서 이미 그 영향을 깊게 체감한 바 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다양한 원인과 범위를 갖는 공급망 충격을 연이어 겪으면서 현안 대응력을 키워왔다. 그러나 지금의 불안정한 흐름이 특정국과의 일시적 갈등 혹 은 팬데믹에 따른 일회성 현상이 아닌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산업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기조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제는 단·장기 정책 설계를 통해 현 상황을 안정시키면서도 중장기 글로벌 산업 질서 재편 흐름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즉, 상황 관리, 조기 회복, 그리고 중장기 글로벌 산업 질서 재편 대응을 위한 체계가 필요하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정부의 공급망 교란에 대한 개입 원칙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공급망 교란에 대한 관리는 기업의 몫이지만, 정부는 정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특정 ‘임계 수준’이 업종×품목에 따라 상이하기 때문에 업종 상황을 고려할 수 있도록 판단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민·관 합동 거버넌스를 토대로 대응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현재 직면하고 있거나 혹은 향후 예상되는 공급망 충격과 구조 재편은 민·관 모두 독자적 힘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대응 체계를 설계할 때부터 민·관 합동 거버넌스를 염두해 두고 각자의 역할을 설정하여 대응 실효성과 속보성을 제고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단·장기 정책 추진 로드맵을 마련하여 대응 체계의 예측성과 지속가능 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지난 3년간의 공급망 충격과 극복 경험을 토대로 단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과 중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점을 우선순위에 따라 구분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상황 관리 및 조기 회복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는 공급망 리스크 민감 품목, 즉 경제안보 품목의 관리체계를 고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급망 리스크 발생 확률을 가늠할 수 있는 공 급망 리스크 종합지표를 개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우선적으로 20대 중 점관리 품목과 200대 경제안보 품목에 대해 적용하고 공급망 리스크 원인과 발생 가능성을 기준으로 품목의 우선순위 및 대응 유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조기경보시스템(Early Warning System)을 품목별로 정교화하고 고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품목별로 리스크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선행지표를 개발 하고 이를 공급망 리스크 종합지표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문제 발생 시 조기 문제해결을 위해 민관합동위기대응반(Supply Chain Striker Force)을 조직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 

대응반의 운영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중점관리 대상 품목을 대상으로 위기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도 추진하여 대응력을 사전에 높이는 것도 고려 할만하다. 한편,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그 안에 나타나는 흐름을 분 석·전망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를 분석한다는 것 은 상당한 융·복합적 지식을 요구한다. 첨단기술·산업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지정학적·지경학적 동향을 수집하고 해석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기술 공급망과 관련한 데이터가 필요하며 데이터 민감성을 고려한 엄격한 관리체계도 필요하다. 분석 전문성 및 경험 축적을 위해, 글로벌 공급망의 동향과 변화를 분석할 수 있는 전문분석기관을 설립·운영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법·제도적 기반 하에 안정적으로 추진이 가능하다. 따라서 공급망 안정화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산업 질서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내 지렛대, 즉 첨단기술·산업의 경쟁력을 변화된 공급망 체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국내 산업구조 및 환경의 고도화가 선결되어야 한다. 지난 공급망 충격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것은 우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수요기업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현 글로벌 공급망 체계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전략 자산’이다. 

 

문제는 현재 미국, EU 등 주요국에서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첨단 전략산업의 공급망 역내화·진영화 흐름 속에서 우리 전략자산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우리 산업의 글로벌 위상 제고와 점유율 확대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 부문의 축소와 기술 유출로 인한 전략 자산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첨단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국내 생산·입지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국내 산업 부문의 전략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공급망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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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이버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e878b66bce8f4e9f811c3480d91b8ffd(검색일: 2022년 2 월 5일).

2) 기업은 단기 공급 교란이 발생하면 재고 조정, 대체 공급선 확보, 생산 물량 조절, 가격 전가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며, 일 시적 교란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3) 코로나 팬데믹 초기, 트럼프 대통령은 마스크 및 인공호흡기 생산 확대를 위해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하여 GM의 부품 공장에 서 인공호흡기를 생산하도록 했고 3M에는 수출 통제를 명령한바 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 역시 백신 생산 물량 확대를 위해 얀 센(Janssen)이 개발한 백신을 머크(Merck)가 생산하도록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했다.

4) 미국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전략물자 보급을 위해 제정한 법률로서, 국방, 안 보 등을 위해 대통령에게 주요 물품의 생산을 촉진하고 확대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은 동법에 근거 하여 국방에 필요한 물자 공급을 기업에 요구할 수 있고, 물자를 생산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줄 수 있으며, 물자 생산을 촉진하 기 위한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5) The White House(2021), “The Biden-Harris Action Plan for America’s Ports and Waterways”, November 09.

6) 일본 내각부(2020), 「

」, 4.7.

7) 긴급수급조정조치는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제6조에 근거하여, 물가가 급격히 오르거나 물품 공급이 부족하여 국민 생활 안정 을 해치고 국민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현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을 때, 주무부처 장관이 행할 수 있다.

8) 마그네슘 1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35~40MW의 전력이 소요된다.

9) 지난해 12월 중국 당국은 초대형 희토류 국유기업인 중국희토그룹( )의 출범을 승인했다. 중국희토그룹은 중국 내 희토 분야의 3대 국유기업인 중국우쾅( )그룹, 중국알루미늄그룹, 간저우( )희토그룹과 2개 연구기관을 통합하여 설립된 기업으로 중국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가 31.12%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국유기업이다. 이와 함께, 2022년부터 희토류에 대 한 외국인 투자도 전면 금지하면서 전략 희유금속에 대한 글로벌 장악력을 한층 높였다.

10) 미국 인공지능국가안보위원회(NSCAI)는 2021년 3월 발표된 보고서를 통해 가치(value)를 공유한 국가와 함께 “첨단기술연 맹(Emerging Technology Coalition)” 등과 같은 기술동맹체계를 창설하여 운영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또한 6월에 발표된 4대 품목(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희유금속) 공급망 분석 보고서에서도 “요주의 국가(Countries of Concern)”에 대한 수출통 제를 동맹국과 함께 연계하겠다는 계획을 분명히 하고 있다(경희권·이준, 2021).

11) 금번 요소수 사태 역시 표면적으로 중국-호주 간 갈등에서 촉발되었으나, 그 근저에는 미·중 간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12) 이미 중국은 지난 2010년 발생한 일본과의 영토 분쟁에서 희토류를 무기로 사용한 바 있다.

13) 한국무역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VC 참여 수준은 2017년 기준 55%로 독일(51%), 일본(45%), 미국(44%), 프랑 스(52%) 등 OECD 주요국 중 최상위 수준에 속한다(한국무역협회, 2020).

14)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업종의 취약 품목 수입액에서 차지하는 자본재 비중은 각각 100%와 65% 수준이다.

 

 

 ※ 이 글은 산업연구원(KIET)이 발간하는 ‘산업경제 2022.2월호’(2022.2.28)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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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3월13일 16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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