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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승리를 보면서 윤대통령이 가야할 길을 짚어 본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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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5월15일 17시10분

작성자

  • 손병해
  •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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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지난달 24일 프랑스 대선 투표에서는 중도주의를 지향하는 현 마크롱 대통령이 극우파 르펜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볼 때 영웅적 지도자를 갈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당대의 지도자에 대한 불만이 높은 국민성을 가진 나라이다. 그런 만큼 프랑스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흔하지도 않은 일이였다. 

실제 이번 마크롱의 재선은 20년 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이후 처음 있는 일이고 1958년 제5 공화국 출범 이후 네 번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 준다. 이렇듯 재선이 쉽지 않은 프랑스의 정치 풍토에서 44세 젊은 나이의 마크롱이 드골, 미테랑, 시리크와 같은 역대 원로 정치 지도자들과 나란히 재선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된 배경은 무엇일가? 


재선(再選) 성공의 배경 

 

언론에서는 이번 재선 성공의 배경으로 외교적 역할, 상대 정당의 실패 그리고 노동개혁과 친 기업 정책으로 인한 경제회복을 들고 있다. 

외교적으로 마크롱은 EU 통합을 강조해 왔고 EU를 통해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는데 주력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서방의 대 러시아 제재에 대해서도 EU국가들의 동참을 앞장서서 주도하기도 하였다. 미국 주도의 서방세계와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반미 연대 사이에는 중재자 역할을 해 왔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유럽을 대표하는 창구 역할을 해 왔다. 프랑스는 NATO, EU, G7의 주요 멤버이면서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마크롱의 이러한 역할은 프랑스의 위상에 맞는 외교적 행보로 보고 있다. 

 

상대 정당의 실책으로는 극우파 르펜 후보의 반 이슬람, 반 이민정책이 오히려 시위를 촉발하고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등의 역(逆)기능을 가져 왔으며, 인기 영합적 가계지원금 약속도 재원 확보 계획의 비현실성이 드러나면서 유권자들의 신뢰를 잃게 되었던 사례를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르펜 후보의 친 러시아, 반 EU 성향도 EU를 통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희망하는 프랑스 유권자들에게는 우호적이지 못했다. 

 

마크롱 혁명: 노동개혁과 친기업 정책

 

그러나 이러한 정치 외교적 요인들 보다 마크롱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재신임은 지난 5년간의 개혁정책과 그로인한 실업 감소, 성장률 상승과 같은 경제적 성과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5년간 “마크롱 혁명”으로 불릴 만큼 과감한 개혁정책을 추진해 왔던 바, 그 개혁 정책의 중심은 노동개혁과 친기업 정책에 두고 있다. 

 

마크롱 취임 이전부터 내려오는 프랑스 경제의 고질적 문제점은 첫째로  역대 정부로부터 누적 되어 온 만성적 실업 문제이고 둘째는 근로자 천국, 파업의 나라로 낙인찍힐 만큼 강성 노조의 독주로 인한 폐해가 크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마크롱은 취임 초기부터 노동개혁과 친기업 정책을 통한 프랑스 경제의 활성화에 목표를 두고 법제, 세제 개혁과 함께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 지원정책을 강력히 추진해 왔다. 

 

노동개혁

 

노동개혁은 강성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노동개혁법을 의회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 법률명령(ordonnance)으로 통과시켜 정책 실행에 대한 행정권한을 강화하였다(2018.9). 이를 통해 임금협상 등 노사 교섭의 대상을 산별 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로 전환시켜 강성 노조의 세력을 축소시키고 기업 측의 협상 부담을 경감시켰다. 

 

노조 측의 협조를 위해 노동법 개혁안의 실무 작업에 노동계 인사를 포함시켜 양측 의견을 조율하도록 하였다. 노동자에 대한 실업 급여 요건을 강화하여 적극적인 근로자세를 촉구하였다. 즉 적극적으로 구직 노력을 하지 않는 실직자에게는 실업급여를 축소하였고 실업급여 요건도 최근 28개월 동안 4개월 이상 근로에서 6개월 이상 근로로 강화하였다.

  

이러한 노동개혁이 이뤄지기 전에는  주당 35시간 근무제 덕분에 프랑스 노동자들은 OECD 평균보다 20% 적게 근무하고 40%나 더 높은 시간당 임금을 받아 왔다. 기업 입장에서는 한번 채용한 사람은 웬만해서 해고할 수 없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감내해야만 했다. 프랑스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경영환경이었다. 이러한 고비용의 경직적 노동시장 구조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렸고  프랑스병의 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마크롱의 노동개혁 이후 강성 노조의 교섭력은 축소되었고 기업의 해고와 채용 권한은 확대됨으로써 실업률이 줄고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해고 부담이 줄고 노사협상이 용이해 지자 기업은 불필요한 고용을 조정하는 대신 청년 신규 고용을 늘림으로써 청년 실업률은 줄어들었고(2017년 2분기 23%에서 2019년 2분기 19%로 감소) 비정규직 고용이 추가로 늘어남으로써 경제 전체의 활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친(親)기업 정책 

 

친기업 정책에서는 보다 다양한 조치가 취해 졌다. 부유세 폐지, 법인세 인하, 부가가치세 면세 기업 확대 등의 조세제도 개혁 외에도 제조업 및 스타트업 지원, 과학기술분야 지원 및 투자 확대, 해외 기술인력 유치 등을 통해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조치를 취해 왔다.  

 

프랑스의 경우 부유세는 주식, 요트, 고가 미술품 등에 대해서도 부과되며 규모에 따라 고율로 부과된다. 프랑스의 경제신문 레 제코(Les Echos)에 의하면 2001년부터 2014년 사이 부유세 등의 이유로 프랑스를 떠난 사람이 전체 자산가의 약 20%에 이른 것으로 조사, 발표되기도 했다. 마크롱은 기업가, 자산가의 국내 투자 및 국내 거주 유인을 위해 부유세 폐지를 결정하였다. 

 

기업을 활성화하고 근로자의 세금 부담을 동시에 줄여주기 위해 법인세(33%에서 31%로)와 근로자 최저 소득세율(14%에서 11%로)도 함께 낮추었다. 이는 부유세와 법인세 인하가 부유층을 위한 개혁정책이라는 노조 측의 반발을 무마하고 기업가와 서민을 모두 잡아두기 위한 조치였다. 

 

이 외에도 스타트업 기업 육성도 기업 지원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파리 13구의 화물 열차 기지를 실리콘 밸리 기지로 개조하여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입주시키고 있다. 2025년 까지 25개 이상의 유니콘 기업 창업도 계획하고 있다. 영세기업 지원 방안의 하나로 부가가치세 면세 대상인 마이크로 기업의 요건을 종업원 10인 이하 연 매출 200만 유로 이하로 낮추어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로 2018년 한해에만  69만개의 창업이 있었고 마이크로 기업인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스타트업 정책이 최근 프랑스 경제의 활성화에 일조를 담당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노동개혁과 기업 친화적 지원 정책으로 인해 마크롱 임기 5년차인 2021년에는 실업률이 최근 10년간 가장 낮은 7.4%로 떨어 졌고 경제성장률은 최근 50년간 최고 수준인 7%까지 높아 졌다. 독일을 능가하는 이러한 두드러진 경제적 성과가 마크롱 재선 성공의 실질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 직접적인 요인은 노동개혁과 정책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마크롱이 보여준  소통과 대화의 의지가 국민들에게 전달되었고 야당과 시위대의 반대 의견을 수용하는  협치(協治)의 미덕을 보여 준 점이라 할 수 있다. 

 

노동개혁의 성공 배경: 소통과 협치

 

마크롱 혁명의 핵심은 노동개혁이었다. 강성 노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노조의 힘을 줄이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는 개혁조치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마크롱의 강한 개혁의지와 소통을 통한 국민적 공감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전임 올랑드 사회당 정부에서도 주 35시간 근로제도의 유연화를 시도했으나 노조의 저항으로 실패하고 오히려 선거에서 사회당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에 마크롱은 “프랑스 인을 위하기보다 프랑스 인과 함께” 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국민 대 토론회( Le Grand Debat National)를 개최하여 소통의 길을 열었다. 

 

2018년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노란조끼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대통령 퇴진까지 요구하게 되자 마크롱은 개혁을 잠시 중단하고 2019년 초에는 3개월 간 전국을 돌며 토론회를 열고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한편 일정 부분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는 성의와 유연성을 보였다. 그 결과 21%까지 떨어졌던 국민 지지도가 50%대로 다시 상승하여 개혁정책을 재개하고 차기 재선의 기반을 닦게 되었다. 

 

마크롱 혁명이 성공을 가져 온 또 다른 이유는 야당과의 협치를 들 수 있다. 마크롱은 초기 내각 구성에서부터 야당 인사를 참여시켜 소통의 창구를 열어두고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공격해 왔던 상대 정당 인사를 재무장관에 임명하여 기업지원 정책의 일역을 담당하게 하였다. 동시에 내무장관에는 좌파 사회당 인사를, 법무장관에는 우파 공화당 인사를 등용하는 등 여야 협치를 통해 국정을 관리하고자 했다. 야당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를 열어 두었던 것이다. 노동개혁법 작업에서도 경영자의 입장뿐만 아니라 친 노동계 인사를 포함한 실무팀을 구성하여 양측의 의견을 반영한 것도 노동개혁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배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소통과 협치를 통해 마크롱은 노란조끼 시위대가 요구하는 유류세 인상을 포기하고 고급 관료 카르텔의 온상으로 지목된 국립행정학교(ENA)폐지를 결정했으며, 서민과 소·영세기업인을 위한 소득세 혜택을 늘리는 등 개혁 반대 세력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수용 조치의 반대급부로 강성 노조의 힘은 약화시키고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 개혁이 가능하게 되었다. 프랑스 전체로서는 적은 것을 내어주고 큰 것을 얻어내는 치적을 쌓게 된 것이다.  

 

마크롱의 행적 속에 윤석열 정부의 길이 보인다. 

 

마크롱 정부의 노동개혁과 친기업 정책은 지난 몇 년간의 친 노동 반 기업 정서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어 왔던 한국 경제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타산지석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기업 활성화를 통해 경제의 활로를 찾겠다는 윤석열 정부로서는 마크롱의 이러한 친기업적 노동개혁과 그것을 실현하고자하는 정책의지, 그리고 그 접근 방법까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은 근로자의 천국, 파업의 천국으로 알려져 왔던 프랑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이를 타개하고 새로운 성장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개혁과 기업육성의 좌표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소통과 협치의 지혜까지도 학습할 필요가 있다.

 

마크롱 대통령과 신임 윤대통령은 정계 입문과 당선과정에서 공통점이 많다. 압력에 저항하고 정책적 의지와 자기 소신이 강하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이 있다. 국내 기업의 성장과 국제경쟁력이 강성 노조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정권을 잡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이 있다. 

 

그런 만큼 노동개혁을 통한 경제회생이라는 마크롱식 개혁 방식은 윤대통령의 향후 정책과제에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다. 지난 정부와는 여러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윤 대통령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마크롱의 교훈을 통해 양보와 협치의 미덕을 살려간다면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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