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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등록금 책정을 자율화하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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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9월01일 20시20분

작성자

  • 이영선
  • 前 한림대 총장, (사)코피온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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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했다. 현대 사회에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 확대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과도한 정부의 개입은 자유의 영역을 축소하여 균형된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러한 윤대통령의 시각이 특히 우리나라 교육부문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제4차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오늘 무엇보다도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창의성은 다양성에서 출발하며 다양성은 또한 자유를 통해 배양된다. 따라서 창의적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대학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일은 미래의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오늘날 세계의 학문발전을 선도하는 최고 수준의 대학들은 대부분 미국의 사립대학들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의 전통적 사립대학들은 애초에 독일의 베를린대학(훔볼트 대학)을 벤치마킹하면서 발전하였다. 그런데 21세기 지금의 독일의 대학들은 더 이상 미국 대학들의 경쟁자가 되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훔볼트는 베를린대학을 세우면서 정부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였다. 

 

독일 정부는 영국과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 대학에 많은 자원을 쏟아 붓기로 작정하였다. 이 때 훔볼트는 정부에 대하여 대학에 크게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 훔볼트의 리더십은 한동안 이 약속을 지켜내는데 유효하였다. 따라서 한 동안은 베를린대학이 세계 대학의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 정부의 대학에 대한 자율권 부여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결국 민간 자원을 기초로 발전해 온 미국의 사립대학들이 자유를 누리면서 오늘날 세계 대학의 학문적 발전을 선도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대학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도 광복 후 인재 양성을 위해 열악한 대학의 발전을 위해 정부가 앞장선 것이 사실이다. 우선 국립대학교를 세웠다. 일제에 의해 운영되어 온 각종 전문학교들을 국립대학으로 정비하여 서울대학교를 창립하기도 하였고, 또 국가의 자원을 투입하여 각 도에 국립대학교를 설립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비교적 저렴한 학비로 수학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국가가 직접 수립한 국립대학교들만으로는 대학교육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또 다양한 교육을 위해서라도 사립대학의 수립을 허용 및 장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립대학교들이 대학 정원의 거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대학 교육에서 큰 역할을 감당해 온 것이 현실이다. 물론 대학들 간의 과도한 경쟁을 막고 적절한 대학생 수의 배출을 위해 정부가 대학 정원을 통제하였으나 등록금의 책정에서는 대체로 대학의 자율권이 부여되어 왔었다. 이러한 사립대학의 자율권은 각 대학의 경쟁적 노력 여하에 따라 사립대학의 발전을 이루어 왔으며 이는 다시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0여년 전 한 대통령 후보자가 대학의 반값 등록금을 공약하고 나섰다. 사실 이 공약은 사립대를 어렵게 하겠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국립대는 등록금 수입을 그대로 전액 국고에 넣고 이 액수에 상관없이 정부가 대학이  필요로 하는 세출예산을 책정해 주어 대학은 책정된 예산대로 쓰기만 하면 되는 반면, 사립대는 기부금을 많이 받는 몇 개의 대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대학의 재정을 등록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을 공약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 지난 13년간 모든 대학들의 등록금이 동결되어 왔다. 그 기간 동안 물가상승률을 최소 연간 2%로 잡아도 복리로 계산하면 대학의 등록금 총액의 실질가치는 거의 40% 정도 줄었을 것이다. 지금 사립대학은 10여 년 전에 비해 실질적으로 40% 정도 적은 예산으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해야 하니 우리나라 대학 경쟁력의 대폭 하락은 당연할 것이다. 국제경쟁력을 평가하는 IMD의 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학경쟁력은 2011년에 전 세계에서 39위였던 것이 2021년에는 64개국 중 47위로 크게 하락하였다. 

 

대학의 경쟁력은 교수들의 학문적 수준에 크게 좌우된다. 미국의 사립대학들과 달리 기부금 수입이 부족한 한국의 사립대학들은 등록금으로 교수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는데 등록금이 장기간 동결되었으니 교수 인건비를 올릴 수가 없다. 결국 사립대학들이 우수한 교수를 유치하기 어려워졌으며 외국에서 수학한 인재들이 한국으로 영입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대학을 막 졸업한 신입사원의 초봉이 5천만~6천만 원에 이르는데 대학 졸업 후 5년 이상의 박사과정을 거치며 큰 비용을 지불하며 인적 자본을 축적한 조교수의 연봉이 7천만 원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니 대학의 경쟁력의 하락은 명약관화한 것이 아닌가?

 

 물론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국가장학금을 대폭 늘인 것은 잘한 일이다. 정부는 10년 전 국가예산에서 약 4조원을 대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책정하고 또 대학들로 하여금 자체 장학금을 마련하도록 강하게 유도하였다. 그 당시 대학의 총등록금 수입이 약 21조원이었는데 국가장학금과 대학자체 장학금을 합하면 대략 5조 내지 6조는 되었을 것이다. 이 경우 학생들이 직접 부담하는 등록금의 적어도 20% 이상이 장학금으로 대체된 것이다. 여기에 13년간 등록금 동결에 따른 학생 부담의 실질가치 감소를 더하면 이미 대학 등록금의 학생 부담률은 약 50% 이상 경감된 셈이다. 문자 그대로 반값 등록금이 이미 달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누구 하나 등록금을 이제는 인상해도 된다고 말하지 아니한다. 정치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자 정부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대학 의 정부지원금을 배분해 왔다. 그러나 그 지원금에는 정부의 정책의도가 담겨 있다. 정부의 의도대로 대학을 개혁하는지 심사를 통해 지원한다는 것이다. 많은 대학들이 그 지원금을 받기 위해 정부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형식적인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런 정부주도적 개혁은 정권이 바뀌거나 잦은 정책 상의 변경으로 대학 개혁의 일관성을 상실할 뿐 더러 대학들의 창의적 다양성 추구에 오히려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해 온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 지원금이 도태되어야 할 대학을 연명시키는 의도하지 않는 결과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대학의 경쟁력을 되살리는 일을 시작하여야 한다. 우선 대학의 등록금 책정의 자율권을 허용해야 한다. 재정의 자율성이 대학의 자유 실현의 기초가 될 것이다. 대학이 스스로 등록금을 정할 수 있다고 해서 무작정 불합리하게 올릴 수는 없다. 그럴 경우 학생들이 그 대학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최근의 대학 학령인구의 극감은 대학들이 학생 유치를 위한 경쟁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있으며 이는 등록금 책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소수의 경쟁력 있는 대학들이 등록금을 상당 수준 인상하는 일은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학들도 장기적으로 무조건 높은 등록금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쟁력을 유지하는데 그만큼 큰 비용이 들 것이며 또 학생 유치를 위해 큰 비중의 장학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등록금의 인상은 저소득층의 학생들을 어렵게 할 것이다. 그렇다고 등록금을 강제로 낮게 책정하여 고소득층의 학생들까지 부담을 줄여 줄 필요는 없다. 저소득층의 부담은 국가 장학금의 확대나 대학의 자체 장학금을 통해 해결하면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이 등록금 책정을 정부가 통제할 경우 전체적인 대학의 경쟁력만 저하시킬 것인데 이는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등록금의 자율적 책정은 대학들로 하여금 그만큼의 책임성을 느끼게 할 것은 물론이고 나름대로의 차별성을 갖는 노력을 경주하게 할 것이다. 이는 대학들의 다양성을 유도할 것이고 그에 따른 창의적 교육과 연구가 증진될 것이다. 이러한 경쟁을 통해 도태되는 대학들도 나타날 것이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대학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마당에 대학들 간의 경쟁을 통한 개혁과 구조조정은 한국의 대학경쟁력을 높이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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