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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출의 낭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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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2월14일 17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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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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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운용의 핵심 과제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매년도 재정총량을 어떻게 제한하여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것인가? 그리고, 개별 재정사업을 어떻게 관리할 때 재정사업 본연의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할 것인가? 근대 국가에서의 재정제도 발전은 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진화과정이었다. 

 

전자에 대한 해답은 재정총량과 재정적자에 대해 엄격한 재정준칙을 설정하고 준수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재정준칙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후자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 개별 재정사업에서의 낭비가 –태양광 등 탄소중립 사업, 한전공대 등 공기업 적자, 문케어 등 건강보험 적자- 언론에서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한 접근을 정부는 아직 고민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100억원으로 충분한 사업을 500억원으로 집행하는 정부기관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이 기관에 대해 불법적인 ‘부정과 부패’를 가장 먼저 의심하고, 그 다음으로는 신규 진입을 막는 기득권자들의 ‘비효율과 낭비’가 없는지 의심해야 한다.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는 외부의 공정한 감사와 수사를 통해 처벌하는 방법이 있지만, ‘비효율과 낭비’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방이 있어야 하는가? 문재인 정부 이래 지금까지 정부기관 곳곳에서 적폐청산과 세력교체가 있었지만, 이것이 정부사업의 ‘비효율과 낭비’를 제거하는 근본적 처방이 될 수는 없다. ‘비효율과 낭비’의 제거는 준엄한 법치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을 때 달성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효율성이란 목표 달성을 위해 원가를 절감하는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 효율성은 분명히 바람직한 가치이다. 그런데 사회 전체의 효과를 감안해야 하는 정부사업에서도 마찬가지인가? 오히려 정부사업에서는 원가를 낮추는 구조조정 노력이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또는 사회적 약자, 일자리 보호를 위해서는 500억원 이상을 투입하더라도 낭비가 아니다!’ 이러한 인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한다면 효율성은 비인간적인 가치로 전락하고 만다. 

 

효율성은 사회 전체의 시각에서도 존중되어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모든 개인들의 보편적 번영을 소중한 가치로 인식한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해야 한다.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일은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앞의 사례에서, 낭비되는 400억원을 다른 일에 투입하였더라면 사회적으로 더 많은 가치가 창출되었을 것이다. 정부사업의 구조조정은 바로 이러한 낭비를 줄여 사회적으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낭비란 이렇게 가치창출의 기회를 봉쇄하는 일이기 때문에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한 일이다. 

 

혹자는 시장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경기침체, 소득불평등을 정부가 교정해야 하기 때문에, 일견 낭비로 보이지만 실상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출은 시장경제의 기반이 되는 사업을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하라는 의미일 뿐 그 이상이 아니다. 정부지출의 승수효과란 시장기능의 작동이 원활하지 못하여 각종 자금이 퇴장(hoarding)하는 예외적인 상황을 전제로 할 뿐이다. 

 

또한 사회적 약자와 일자리에 대한 보호도 사회 전반의 보편적 수준을 제고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정한 정책목표를 추구하는 정부사업에서 경제활성화, 약자보호, 일자리 보호 등과 같은 다양한 목표를 위해 불필요한 –비효율적인- 지출을 감행하는 것은 기득권을 위한 차별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효율성의 정도와 수준은 민간과 정부부문 전반에 보편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민간부문에서는 효율성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지 못할 때 파산이라는 제재를 받는다. 낭비하는 자가 제재를 받고 근검한 자가 보상을 누리는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의 원칙은 시장경제에서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구현되고 있다. 

 

1960년대 이래로 정치철학자들은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를 주로 논의하고 있지만, 고대 사회 이래로 가장 광범한 지지를 받는 정의의 원칙은 ‘인과응보’로 불리는 응보적 정의이다. 정부부문 내에서 민간부문의 효율성에 상응하는 정도의 구조조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사회 전반의 정의가 보편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정부사업에서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업의 목표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추상적이고도 모호한 성격의 목표들을 배제하고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정부사업의 목표가 구체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면 원가절감을 위한 목표가 무의미하여 효율성을 위한 노력의 의미도 없어진다. 정부부문에서도 시장경제와 마찬가지로 각종 사업들의 분업과 전문화가 이루어져 다양한 정책목표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개별 사업에서 모든 목표들이 동시에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목표를 추구하는 개별 재정사업들이 총체적인 조화를 이룰 때 사회의 궁극적 목적이 가장 잘 달성된다. 

 

이러한 경험적 인식 때문에 OECD 선진국들은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재정사업 본연의 목표를 명확하고도 구체화하는 ‘성과주의 예산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이후 여러 번의 정권교체 속에서도 성과지향 예산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다. 재정성과목표관리제도, 재정사업 자율평가제도, 재정사업 심층평가제도가 바로 이들인데, 이들의 가장 큰 효과는 사업관련자들이 사업의 궁극적 목표를 인식하도록 자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노력과 비용을 투입하여 생산한 성과정보가 재정사업의 선택과 구조조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은 계속하여 제기되고 있다. OECD 국가들의 발전과정을 감안할 때, 지금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성과주의 본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재정사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이 비판적 의견을 적극 개진하여 여론을 형성할 때 비효율과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앞의 사례에서, 500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이 100억원으로 충분한지 여부를 외부에서 판단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 사업에 투입되는 원가총액이 이해가능한 차원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현재 재정사업의 원가 총액은 인건비, 소모품, 장비 등 비목명세를 중심으로 공개되기에 원가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지도 않고 또 검증가능하지도 않다. 이 때문에 OECD 국가들은 비목별 원가 대신에 활동기준으로 원가를 파악하고 있다. 직무분석에서 사용하는 직무활동별로 원가를 파악함으로써 관련 이해관계인들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1)

 

성과주의 예산제도를 위한 그 다음의 과제는, 재정사업을 일종의 계약으로 간주하여 그 대가인 예산의 지급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하는 것이다. 활동별 원가정보와 사업의 성과정보를 결합하면 재정사업에 대한 성과계약(performance contracting)이 가능하고, 예산의 집행방법은 계약에 대한 대가지급으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재정사업의 유형별로 비효율과 낭비를 줄이고 성과를 극대화하는 계약방법을 신축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사후적으로 원가를 보상할 것인지(예컨대, 원가분담, 작업요율, 고정수수료, 성과급 등), 아니면 사전적으로 가격을 확정할 것인지(총액확정, 물가조정부 등) 재정사업의 내용에 따라 관련 거버넌스를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사업에 대한 성과계약이 발전하면 이를 근거로 민간의 경쟁도입이 가능해진다. 민간위탁, 민관협력 등을 통한 구조조정은 바로 이러한 노력들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2000년대 이후 본격 도입하였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민간투자제도’는 정부사업에 시장계약과 경쟁을 도입하였던 대표적 사례가 된다. 

 

경쟁도입은 기득권에 의한 비효율과 낭비를 제거하는 유일한 방안으로서 사회 전반에 보편적인 효율성을 구현하는 핵심 수단이다. 벤치마킹을 가능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경쟁도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업내용의 표준화 및 명문화, 대가지급 방법의 다양화 등 계약화(contractorization)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재정지출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서 효율성과 능률성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성과주의 예산제도의 발전에 진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활동기준 원가정보를 발생주의 기준에 따라 공개함으로써 재정사업에 투입되는 자원의 규모가 이해관계인들에 의해 이해 및 검증 가능해야 한다. 

둘째, 정부사업의 성과목표를 구체화하고 투입되는 원가와 성과 사이의 연계를 성과계약으로 확립하여 경쟁입찰이 가능한 시장계약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계약화 과정에서는 바우처(voucher) 제도 등 소비자의 선택권과 함께 수익자 부담을 강화시켜야 하는데, 정부기관들 상호 간에도 내부계약, 내부거래제를 활성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 민간위탁, 민관협력 등 경쟁의 압력만이 결국 비효율과 낭비를 제거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들 네 가지 과제 중 그 어느 것도 아직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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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컨대 경찰서 경제팀의 원가를 비목별로 구분하는 것보다 고소장 검토, 관계자 조사, 자료분석, 수사지휘, 민원처리 등 활동별로 구분할 때 이해가능하고 또 검증가능할 것이다. 옥동석, “재정사업관리 개선을 위한 활동기준원가의 도입에 대하여,” 「재정정책논집」, 제24집 제4호, 한국재정정책학회, 2022, pp.125~153 참조.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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