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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한국의 스튜어드십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2월22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2월19일 17시51분

작성자

  • 박상인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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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윤석열 대통령은 1월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스튜어드십은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 구성 과정에서 모럴해저드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엔,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선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동안 ‘연금사회주의’라는 궤변으로 일관해 온 재벌들의 입장을 맹종해 왔던 국민의힘 정권에서 ‘스튜어드십’이라는 말을 긍정적 의미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일견 흥미로운 변화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스튜어드십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그리고 왜 스튜어드십이 우리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스튜어드십은 2007년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에 기관투자자들 중심으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수탁자책임원칙)를 도입함으로써 활성화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나 기업들의 자발적 행동을 통해 실현된다. 기관투자자들은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업의 재무적 요인 외에도 ESG(환경-사회적 책임-기업지배구조)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를 제고하고자 한 것이고, 이런 흐름에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자발적으로 또는 선제적으로 스튜어드십과 ESG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ESG 실천에 실질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 대외적으로 흉내만 내는 ‘ESG 워싱(washing)’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초대형 (사실상 유일한)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도입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다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된 후인 2018년 7월에 이르러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이 때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의 요체는 국민연금이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연금가입자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관투자자로서 역할을 적극적이고 충실히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기업 거버넌스의 실질적 개선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애초에도, 국민연금은 투자대상회사와의 대화를 비롯해 비교적 폭넓은 유형의 주주활동을 실시하되, 주주제안과 위임장경쟁과 같은 적극적 주주활동은 제한적으로 수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들 활동은 제반 여건이 구비된 후 이행방안을 마련하되, 그 전에라도 꼭 필요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 경우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2021년 국민연금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적극적 주주활동은 고사하고 기업과의 대화수행 내역에서도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이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이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중요 의사결정은 보건복지부와 기재부 관료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국민연금에 대한 ‘관치’ 그리고 ‘친기업’과 ‘친시장’을 구별하지 못하고 재벌에 포획되어 있는 관료와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국민연금의 ‘거버넌스’가 바뀌지 않는 이상,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워싱’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고, 한국에서 ‘스튜어드십’과 ‘ESG’는 제 길을 찾지 못 할 것이다.  

 

  스튜어드십과 ESG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은 재벌 대기업뿐만 아니라 대주주가 없는 ‘소유분산 (widely held)’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환경(E)과 기업거버넌스(G)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임에 불구하고, 기업들은 ESG 중에서 S에 해당하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ESG를 ‘퉁치는’ 워싱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ESG를 담당하는 기업의 부서가 대관업무 부서나 PR 부문임은 우리 기업의 ESG에 대한 기본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스튜어드십과 ESG라는 국제 금융의 스탠더드에 못 미치는 한국 금융과 기업의 장기적 전망은 결코 밝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근본적 문제 진단과 해결책 없이, 대통령과 금융감독원장이 나서서 소유분산 기업들에 대해만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을 외치는 것은 뜬금없다. 민영화된 소유분산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에 대한 관치의 수단으로 국민연금과 스튜어드십을 활용해, 이들 기업의 CEO를 정권의 입맛대로 바꾸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오히려 국민연금에 대한 관치, 국민연금을 통한 관치 그리고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후퇴와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정치인이나 정당의 자가당착이고, 이들의 탐욕과 제 사람 심기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오히려 해치고 있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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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3년02월19일 17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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