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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sociopath)가 세상을 이끈다-트럼프 기소를 통해 본 위기의 민주주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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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4월11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4월10일 13시31분

작성자

  • 황희만
  •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 前 MBC 부사장,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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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현상들’

 

“얼굴은 철판처럼 두껍고 속마음은 흑심을 품고 있어야 한다.”

중국 청나라 말기에 기인(奇人) 이종오(李宗吾)라는 사람이 내놓은 후흑학(厚黑學)의 요체다. 이종오는 중국 역사에 등장한 영웅호걸들의 특징을 연구해 보니 이러했다는 것이다. 서양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있다면 동양에는 이종오의 후흑학이 이에 대비되곤 했다. 정권을 잡기 위해 또는 어느 직장이든 출세를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고 한때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후흑학이 회자(膾炙) 되기도 했다.

 

이 후흑론이 이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처세술로 관통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치판에 이것이 눈에 띄게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모습이다.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 기소됐다. 전직 포르노배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입막음을 위해 13만 달러를 주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트럼프는 기소되자 자신을 형사 기소한 검사를 인간  쓰레기로, 담당 재판관을 당파적 인사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이렇게 좌표가 찍히자 담당 판사와 검사가 트럼프 지지자들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모습이기도 하다. 

 

정치인은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다반사 아닌가 여겨진다. 지지자들은 후안무치한 정치인의 변명을 믿고 설혹 잘못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며 더욱 열심히 지지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열심히 트럼프를 옹호하며 검찰 기소에 항의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트럼프는 위대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지지자들은 굳게 믿고 있다. 트럼프 역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겠다며 내년에 또 대선후보로 나설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후흑학의 견지에서 보면 트럼프가 성공하면 후흑구국(厚黑救國)으로 국가를 위한 헌신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중우(衆愚)들을 이용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는 ‘섹스 스캔들’ 뿐만 아니라 ‘대선 불복종난동의 배후 인물’로도 지목받고 있다.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국회의사당을 쳐들어가는 난동을 부추긴 것 아닌가 하는 의혹도 받고 

있는 것이다. 집단 망상에 빠지면 자기들만이 정의이고 이에 따라 이들은 민주주의를 완전히 뒤엎는 일도 서슴치않는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민주주의가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는 모습이다. 언제부터인가 민주사회가 집단 패거리들의 싸움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전체주의 집단독재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게 된다. 유럽에 파시스트 정당이 있었다. 집단 편싸움이 시작되면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다. 이런 편 가름이 되다 보니 합리적 토론이 사라지고 진실이 누구 편이냐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상이 어지러워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헷갈리는 현상이 일고 있다. 각자 ‘내로 남불’이다. 오죽하면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하고 절규하는 노래가 등장하기도 했을까.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음은 사실이다. 대중을 선동해 그럴듯한 신천지를 약속하며 권력을 잡으려는 시도가 정치는 물론 종교에까지 번지고 있다. 이들은 범죄도 잘못이라 의식하지 않는다.

 

본(本)을 보이는 리더가 아니고 이제는 후흑(厚黑)을 넘어 소시오패스(sociopath)가 되어야 세상을 이끄는 리더가 되는 형국이다. 후흑(厚黑)은 흑심을 속에 감추고 행동하지만 소시오패스는 본인이 하는 짓이 죄라고 의식하지도 않고 자기가 잘못해도 그게 죄인지도 모른다. 

범죄혐의로 기소된 트럼프의 변명과 지지자들의 반응을 보면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현상이 아닌가 싶다. 우리 정치인들 중에는 자기가 죄를 지어도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발 더 나가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치인은 또 끼리끼리 뭉쳐서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와도 이를 부결시킨다. 도대체 죄의식이 없다. 

 

후흑은 구국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변명이라도 한다. 소시오패스는 자기만 잘되면 그것이 최선(最善)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소시오패스가 판치면 그 사회는 어찌 될 것인가.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는 지식인들의 성찰과 적극적인 사회 현안 참여가 요청되는 시대가 아닌가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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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4월11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4월10일 13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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