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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무(無) 정치’로 몰락하는 민주당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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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5월25일 18시43분
  • 최종수정 2023년05월26일 06시55분

작성자

  • 김형준
  • 배제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석좌교수(정치학),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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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진영의 논리와 이념이 지배하는 정치 양극화 시대에 특정 정당에 대해 평가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자기 진영 사람의 주장이 아니면 무조건 거부하고 진정성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진정 변화의 동력을 얻으려면 새로운 시각에서 개방적인 자세로 자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1987년 민주화이후 한국 정당 정치에서 민주당은 전국 선거에서 4번 연속 승리(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한 최초의 정당이다. 특히, 2020년 총선에선 180석(60.0%)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웠다. 결과적으로 초유의 진보우위의 정당 체제가 구축됐다. 

 

그런데, 민주당은 2021년 4·7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 선거, 지난 해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했다. ’20년 집권‘을 부르짖던 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잃었다는 사실만으로 지금 민주당에겐 ’어둠의 시간‘이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송영길 전 대표의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김남국 전 민주당 의원의 수십억원대 코인 거래․보유 논란,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의 잇따른 성 추행 사건 등으로 민주당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 정치에서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역대 최악의 야당이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덩달아 민주당에 대한 민심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의혹 이후 민주당의 20·30대 MZ 세대 지지율이 10%p가량 떨어졌다. 한국갤럽 5월 2째 주 조사 결과,  김 의원에 대한 코인 의혹이 터지기 전인 직전 조사에서 31%였던 18∼29세 지지율은 19%로 12%p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30대 지지율도 42%에서 33%로 9%p 내렸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무당(無黨)층 중 18∼29세는 직전 조사 40%에서 이번 조사 51%로, 30대는 24%에서 30%로 각각 크게 늘었다. 한국갤럽의 5월 첫째 주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꼽히는 40대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일주일 전 58%에서 36%로 급락했다.22%포인트의 지지율 급락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민주당이 왜 이렇게 됐을까? 지난 대선 패배이후 ‘4무(無) 정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반성과 성찰은 없고 투쟁만 있다.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는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허황된 믿음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통렬한 참회는 없고, 오로지 이재명 방탄과 대여 투쟁에만 집중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무능과 위선, 편가르기와 내로남불, 거짓과 꼼수, 굴종 외교 등 자신의 잘못으로 정권을 빼앗겼는데 반성은 커녕 한가하게 책방을 내고 현재의 정치 상황을 즐기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들이 시도 때도 없이 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알현'함으로써 민주당 상왕 노릇을 하고 있다. 

 

둘째, 민생이 없고 방탄만 있다. 민생 살리기 법안엔 관심이 없고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워 오직 특정 세력의 표심을 잡기 위해 편 가르기와 포퓰리즘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검찰 수사에 대해 ’정치보복, 야당 탄압’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대장동, 성남FC 후원금, 대북 송금 등 이재명 대표와 연루된 각종 의혹은 민주당과는 관련이 없는 사항이다. 이 대표가 성남 시장과 경기도 도지사 재임 당시 발생한 사건들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막기 위해 ‘방탄 정당’으로 전락했다. KBS·한국리서치 조사(3월 5~7일) 결과,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정당한 범죄 수사'라는 응답(53.9%)이 '정치 보복 수사'(40.7%)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 수치는 지난 1월 조사 때보다 6.2%p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이 어떻게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겠는가?

 

셋째, 도덕은 없고 꼼수만 있다. 이재명 대표는 대규모 배임·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송영길 전 대표는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 의혹에 연루되고 있으며, 최대 60억원대 코인 의혹에 싸인 김남국 의원은 입법권을 이용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법을 발의해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개인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 무조건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 프레임으로 접근한다. 더구나 비리의혹이 제기된 민주당 인사들이 잇따른 탈당으로 징계를 회피하고 있다.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은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 우리 당은 너무 도덕주의가 강하다”고 말할 정도로 민주당의 도덕은 파탄 났다. 

 

퇴임 전 "잊혀지고 싶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퇴임 후에 만들어질 자신을 소재로 하는 영화까지 협의하고 있었다는 도덕 상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꼼수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5월 4주 전국 지표조사 결과(22-24일), 김남국 의원 가상화폐 투자 논란에 대해 “의원직 사퇴해야 한다”(60%)가 "의원직 사퇴는 섣부르다"(31%)를 압도했다. 여론이 이렇다면 최소한의 도덕성이 있다면 민주당은 국회 윤리위원회를 통해 김 의원 제명을 관철시켜야 한다. 

 

넷째, 상호 존중과 제도적 자제(自制)가 없고 입법 폭주만 있다. 결국, 의회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1년간 개혁 입법안으로 298건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야당의 벽에 막혀 이 중 103건(34.5%)만이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당은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토록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 가운데 간호사의 요구 사항만 담은 간호법 강행 처리, 불법 파업 조장법으로 불리는 ‘노란 봉투법’의 국회 본회의 직회부 등을 강행했다. 민주당은 막대한 재정과 사회적 갈등은 외면하고 입법 폭주를 통해 국민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르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단언하건대, 민주당이 ‘4무 정치’의 늪에서 벗어나 ‘신뢰받는 정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회복하고 ‘부활의 길’을 걷기 위해선 어떤 노력과 처방이 필요할까. 

첫째, 누구나 알고 있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방 안의 코끼리’에서 벗어나 ‘민주당다움’을 회복해야 한다. 핵심은 가치의 대전환이다. 반성·민주·민생·책임·실용·서민의 가치로 거듭나는 게 급선무다. 말로만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앞세우지 말고 그 정신이 진정 살아 숨 쉬는 정당임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그동안 진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진보 참회록’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 반성 없는 개혁은 공허하기 때문이다. 

 

둘째, 민주당만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프레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인식의 틀이다.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전쟁: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 전략』에서 미국의 진보 세력이 선거에서 번번이 패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주장을 설파할 프레임을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젠 민주당도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정치 보복 프레임을 과감히 걷어내고 가치와 도덕성을 중심으로 프레임을 재정비할 때다. 중도층까지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세대교체와 정치개혁 이슈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셋째, ‘도덕적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왜 도덕인가”라는 책에서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세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현직 대표가 사법리스크에 몰려있는 민주당은 ‘도덕’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혁신이 도덕성 회복의 시작이다. 그런데, 민주당 혁신의 핵심은 ‘이재명의 강’을 건너는 것이다. 이 대표 스스로의 결단과 판단이 중요하다. 이 대표가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민주당의 그 어떠한 혁신도 허구에 불과하다.

 

넷째, 악성 팬덤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열성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서로 혐오하고, 좌표 찍고, 문자 폭탄 보내고, 욕설을 퍼붓는 악성 팬덤은 혐오의 대상이다. 이재명 강성 지지자인 '개딸'은 진영 내 어떠한 이견과 비판도 허용하지 않으며 민주당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 적폐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민주당이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제 한국 정당들은 국민들의 ‘보다 더 나은 삶’(the better life)을 만들기 위한 경쟁에 나서야 한다. 민주당이 이런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심의 눈높이에 맞는 정당, 실력과 성과로 인정받는 대안 정당, 나의 삶을 책임지는 민생 정당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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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3년05월26일 06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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