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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시청료 폐지를 논의할 때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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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6월18일 21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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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협
  •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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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전기요금에 통합해 징수되어온 KBS 시청료 납부 방식에 변화가 예고되었다. 시청자의 납부 선택권이 침해당해온 지금의 통합징수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노웅래 의원이 수수료 위탁징수 금지법을 발의했고, 2017년 4월엔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분리 징수 법안을 추진했다. 노웅래, 박주민 의원이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니 어찌 보면 윤석열 정부가 야당 의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정파적 분열로 두 동강이 난 현실에 등장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시청료 문제는 현재 많은 나라에서 쟁점이 되고 있어 흥미롭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한국에서는 시청료납부 방식을 놓고 논쟁을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는 시청료 자체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유럽의 기류는 기본적으로 수신료를 폐지하고 대신 세금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선호하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우선 프랑스는 2022년 8월 공영 방송 수신료 폐지법이 국회를 통과해 올해부터 수신료를 폐지했다. 공영 방송의 대명사인 BBC 보유국 영국도 2022년 BBC 수신료 폐지법안을 발의하여 2028년에 이르면 수신료를 완전폐지하는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그 외에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벨기에, 루마니아, 북마케도니아 등 북유럽 중심으로 TV 수신료 폐지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는 미디어 환경의 혁명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부연하면, 이제 공룡처럼 비대해진 구시대의 공영방송 운영체제로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공영 방송의 시대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를 보면 공영방송프로그램들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TV 소유 대신 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BBC는 그동안 튼튼한 시청료의 재정지원 덕분에 방대한 조직과 엄청난 시설과 장비를 확보하여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해 왔다. 그런데 기술혁명이 가져온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작고 유연한 조직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창의적인 소수가 적은 경비로 만들어내는 우수콘텐츠가 넘쳐나면서 BBC 같은 공룡이 경쟁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BBC의 경우, 각종 제작 시설과 스튜디오들이 디지털 시대 이전에 만들어져 이제는 필요 없이 너무 크고 비효율적이라 관리비용이 많이 들고, 그에 따른 조직의 관료제화(官僚制化)는 낭비와 비능률을 가져왔다. 방대한 조직과 시설, 그리고 비효율적 장비의 유지가 사회적 짐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가 BBC 정직원 중 30%가 영국 근로자 평균 연봉인 3만8,600파운드(약 6,176만 원)의 두 배가 넘는 7만 파운드(약 1억 1,200만 원)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BBC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었다.

 참고로 한국의 KBS는 2021년 전 직원의 46.4%가 1억 원 이상을 받고 있고, 그중의 상당수가 무보직 상태에서 고액의 연봉을 누리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영국 물가가 한국보다 두 배가량 더 비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 국민의 생각은 어떨는지 궁금해진다. 여하튼 영국의 여론은 이렇게 고액 연봉 직원과 활용도가 떨어진 방대한 시설을 놓고는 BBC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는 게 주목할 만하다.

   주지하다시피 시청료는 공영 방송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이다. 공정하고 수준 높은, 그리고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는 콘텐츠의 확보를 위해 각계각층의 모든 국민이 함께 지원하자는 좋은 뜻이 담겨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수년 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 김어준 같은 인물이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방송을 일삼아도 관련 기관에서 통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KBS와 MBC가 정치색이 강한 민주노총의 영향 아래에 들어갔다는 조짐이 논쟁거리로 등장했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대한민국에는 KBS1, KBS2, MBC, EBS, TBS 등이 공영 방송으로 지상파 방송의 75%를 차지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공영 방송임을 자처하는 KBS2와 MBC는 광고 수입을 얻고 있고, BBC나 NHK와는 달리 정치적 중립이나 공공성, 그리고 세계에 내놓을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더구나 지난 5년 동안 KBS와 MBC에서는 민주노총의 조합원 출신만이 사장이나 보도국장 등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는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엄청나게 역동적이고 다양해진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10% 정도의 조직인 민노총의 조합원이 공영방송을 장악했다는 소문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런 와중에 KBS 사장은 그 자리가 정파적 전리품임을 드러내는 기자회견으로 코미디를 연출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공영 방송의 문제를 시청료납부 방식의 문제로 그칠 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토론으로 격상시켜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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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6월18일 21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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