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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 프랑스 폭동 사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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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8월05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23년08월05일 16시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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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프랑스 전국에서 발생한 폭동은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정세가 불안정한 개발도상국에서나 볼 수 있는 혼란과 약탈의 광경이 부유하고 안정적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선진국 프랑스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프랑스에서 이런 광경은 그리 드물지 않다. 올봄 프랑스 정국을 달궜던 연금 개혁 관련 시위나 몇 해 전 일명 노란 조끼 운동 때에도 폭력과 파괴, 약탈의 현상이 발생했었다.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마리안 얼굴 조각이 부서진 흉측한 모습은 지구촌에 널리 퍼졌었다. 

왜 이런 집단적 폭력 사태가 유독 프랑스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이번에 충격적으로 발생한 폭동을 단기적 요인과 구조적 요인으로 나눠 분석해 본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프랑스 사례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시사점에 대해 논의해 본다. 

 

 단기적 요인: 경찰과 청소년의 적대적 관계 

 

이번 폭동의 시발점은 지난 6월 27일 자동차 검문검색 과정에서 달아나려는 운전자를 경찰이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건이다. 벤츠 승용차에는 세 명의 소년이 타고 있었는데 운전을 하던 나엘은 17세 알제리 이민계 출신이다. 경찰측은 원래 차가 자신들을 향해 돌진해 발포했다고 둘러댔으나 사건 동영상을 통해 거짓임이 드러났고 명백한 과잉반응이었음이 발각되었다. 발포 경찰은 즉시 체포되었으나 폭동의 전국적 봉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사건이 발생하자 곧바로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경찰의 총기 사용을 수월하게 만든 2017년의 치안법이다 .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François Hollande) 대통령의 정부는 경찰 노조의 강력한 요청을 수용하여 “검문에 응하지 않고 신체적으로 경찰을 위협하는 경우”를 총기 사용 조건으로 추가했다. 그 후 프랑스에서 자동차 검문 과정의 총기 사용과 피해가 늘었다. 

목숨을 잃은 피해자가 열일곱 살의 미성년자라는 점과 북아프리카 이민계 가정의 아이라는 사 실은 프랑스에 사는 비슷한 나이와 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번 사태에서 폭동에 가담해 체포된 수천 명 폭도의 평균 연령이 공교롭게도 피해자와 똑같은 17세다. 많은 경우 열 두세 살의 아이들이 폭동에 참여하여 차를 태우고 상점을 약탈하며 관공서를 파괴하는 데 참여했다. 이처럼 어린아이들조차 국가와 사회에 반항하는 운동에 나선 사실은 충격적이며 동시에 경찰과 청소년의 관계가 평소에 얼마나 적대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파리를 비롯해 프랑스 대도시의 근교는 방리외(banlieu)라 불리는데 지리적으로 도심의 부와 근접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무척 빈곤한 동네들이다. 가난한 계층이 집중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자나 이민 출신 가정도 모여있다. 이런 동네는 마약을 거래하는 집단을 비롯해 다양한 범죄 조직이 파고들기 수월하며 그 이유로 경찰의 집중적 단속과 견제를 받는다. 

일상에서 방리외 청소년과 경찰 세력은 줄곧 부딪치는 적대적 관계다. 경찰은 범죄를 통제하기 위해 빈번한 검문검색을 일삼고, 청소년은 잦은 검문에 본능적 반감과 적대감을 키우기 마련이다. 나엘이 검문에 불복한 태도나 발포 경찰이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즉각 반응한 행태는 이런 상시적 불신이 초래한 사고라고 볼 수 있다. 

 

덧붙여 검문과 발포 장면이 동영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영상은 경찰의 거짓말을 명확하게 바로잡는 역할 뿐 아니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 및 전 세계에 퍼짐으로써 분노와 반발을 초래했다. 게다가 시위나 폭동이 진행되면서도 자신 들의 행동을 생중계하고, 이를 다시 다른 지역이나 도시의 집단이 모방하는 현상이 새롭게 등장했다. 폭도들은 특정 목표를 설정하여 신속하게 움직이는 도시 게릴라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2020년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 동영상으로 기록한 경찰의 살인이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재점화시켰듯, 프랑스에서는 나엘의 죽음이 거대한 폭동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프랑스 내에서도 과거 노란 조끼 운동이 이미 SNS를 통한 사회운동의 빠른 생성과 확산을 생생하게 증명한 적이 있었다. 이제 대규모 조직이 없더라도 작은 불씨가 즉흥적으로 거대한 운 동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조적 요인: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 

 

방리외 지역에서 청소년과 경찰의 상호불신이나 2017년 치안법 개정, 동영상을 통한 사회적 네트워크 등은 이번에 경찰 실수가 전국적 폭동으로 확산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몇 가지 중대한 구조적 요인들이 존재한다. 대 표적인 요인으로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 차별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 국가와 질서에 저항하는 전통, 식민과 이민의 역사적 연결 등을 들 수 있다. 

프랑스의 사회 불평등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다. 미국이나 중국이 프랑스보다는 훨씬 불평등한 사회다. 그러나 프랑스는 화려한 부를 과시하는 명품의 조국이다. 세계에서 최고 부호는 남자(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와 여자(로레알 가문의 프랑수아즈 베탕쿠르 메이예르)가 모두 프랑스인일 정도다. 발포 사건이 발생한 낭테르 지역은 명품거리 샹젤리제와 한 지하철 노선으로 연결된 빈곤 지역이다. 부와 빈곤이 지하철 몇 정거장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셈이고, 빈곤 지역 청소년들은 끊임없는 부의 향연에 침을 흘리는 방관자로 무기력하게 머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프랑스는 서방의 그 어느 나라보다 평등에 대한 갈망이 강한 사회다. 프랑스는 21세기 들어 유럽에서 평등을 추구하거나 불평등을 수정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이 가장 활발한 나라다. 적어도 국내 총생산 대비 공공지출을 보면 이미 스웨덴과 같은 전통적 복지국가의 수준을 초월했다. 유로스타트 통계에 의하면 2022년 프랑스의 GDP 대비 공공지출은 58%로 스웨덴(48%)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다. 

프랑스 공화국의 철학도 개인 차원의 절대적 평등을 중시한다. 미국은 흑인이나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제도나 정책을 펴나 프랑스는 인종을 통계적으로 나누는 작업 자체가 불평등한 사고라며 거부한다. 국가와 개인 사이에 인종이나 종교 등 소속집단의 개입을 피하는 구조다. 하지만 이상으로서 평등은 현실에서의 사회적 또는 인종적 불평등과 대비되며 사람들의 주관적 불만은 오히려 팽창하는 모양새다.  

 

프랑스는 또 혁명의 전통을 가진 나라로서 사회 질서나 국가 기관에 대한 도전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정당한 목표를 위한 행동은 폭력을 동반하더라도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고 여기는 셈이다. 앙시앵 레짐을 격파한 18세기의 대혁명부터 외세와 왕권세력에 저항한 19세기의 파리 꼼뮌,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부터 1968년의 반(反)자본주의 혁명까지 프랑스 역사는 저항의 반복이다. 그 때문인지 사회적 시위나 운동이 폭력으로 돌변하는 일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빈번하다. 

2005년 방리외 지역의 장기 폭동이 일어났을 때도 2023년과 비슷한 양상으로 빈곤 지역 청소 년들이 방화와 약탈을 일삼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노란 조끼 운동과 연금 개혁 반대 운동이 관공서를 불태우고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행태를 보였다. 폭력적이고 빈번한 시위와 약탈에 경찰이 지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2017년 좌파 사회당 정권조차 총기 사용의 범위를 넓혀준 정책에서 이런 구조적 고민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는 20세기에 이미 이민 국가가 되었다. 국민 가운데 외국인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 었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이민 출신까지 포함하면 국민의 상당 부분이 외국 출신이다. 특히 20세기 후반 프랑스 과거 식민지 출신인 아프리카계가 대거 이민 오면서 프랑스 사회는 다인종 다문화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다만 프랑스 이민자나 이민 출신 집단은 식민지 경험에 대한 강력한 반발심을 갖고 있으며, 프랑스에 대해 역사적 보상 심리를 갖는다. 알제리처럼 프랑스와 독립전쟁까지 치른 나라는 과거 착취와 약탈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이민 집단이 대개 보여주는 조심성이나 소극성 대신 프랑스 이민자들이 반감과 적극적 보상을 요구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다. 선진국 가운데 식민제국을 운영했던 영국이 유사한 구도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이민자 집단이 국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유럽 주요 국가 가운데 프랑스가 특별히 빈번하고 폭력적인 폭동을 경험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모두 다수의 이민자 집단을 보유하고 이에 반대하는 극우 민족주의 정치세력도 있으나 프랑스처럼 심각하고 집단적인 폭동은 드물다.   

 

한국에 시사점: 잘못된 교훈은 피해야 

 

출산율이 세계 최저를 기록하면서 인구가 줄어 가는 한국은 향후 이민을 대량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장기적 소멸 과정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앞서 이민을 경험하고 사회를 꾸려온 국가의 사례를 엄밀하게 검토하고 시사점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프랑스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 부분 편견으로 점철된 왜곡된 방향이었다. 

 

첫째, 프랑스 사회와 국가가 이민 집단에 대해 유별나게 차별적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정책적으로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을 거의 두지 않는 평등의 국가이며 사회적으로도 유색인종이 비교적 쉽게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나라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흑인 미군들이 프랑스에서 평등한 대우로 감동했다는 이야기는 전설적이다. 프랑스에 유학했던 한국인이라면 프랑스 복지국가가 얼마나 평등한지 체험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폭동 사태를 이해하려면 프랑스의 차별성보다는 앞서 지적한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특징을 주목해야 한다. 

 

둘째, 이슬람 이민자들을 절대 받아들여서는 곤란하고 이민 자체도 사회 혼란을 초래하기에 피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 또한 매우 인종·종교 차별적임과 동시에 현실을 왜곡되게 바라보는 잘못된 관점이다. 경찰에 맞서고 폭동으로까지 번지는 저항에 나서는 이유는 이들이 이민자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프랑스 문화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폭도들이 신봉하는 신은 이슬람의 “알라가 아니라 나 이키”라는 분석은 다시 한번 이들의 얼마나 깊이 자본주의 정신에 포섭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폭동은 이민이나 종교·인종의 문제이기에 앞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소외의 문제다. 

 

한국도 21세기에는 이민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운명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객관적인 이해를 추구해야 한다. 프랑스는 이민 집단에 매우 우호적인 정책과 태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이민 집단 통합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 이민 집단이 일으키는 문제는 이슬람이나 아프리카 문화, 검은 피부색 때문이 아니라 프랑스 사회의 선진 경제가 안고 있는 불평등의 현실과 평등을 향한 민주적 이상 때문이다. 프랑스의 2023년 폭동 사태는 자유·평등·박애의 공화주의 전통을 철저하게 따르는 지극히 프랑스적인 저항정신의 폭력적이고 병적인 표현인 셈이다. <끝> 

 

 ※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3년 8월호 통권 365호]​ (2023.7.31.)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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