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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타당성조사 제도의 개편 방향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4월16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04월14일 14시15분

작성자

  •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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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99년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제도를 도입할 때 의도했던 취지는 대략 이런 것으로 추측된다. 첫째, 공공사업의 타당성 평가가 임의적이고도 자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과학적이고도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둘째, 창출되는 사회적 편익이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보다 더 큰 공공사업만을 선택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사회적 비용(C) 대비 사회적 편익(B)의 비율(B/C)이 최소한 1을 넘는 사업에 대해서만 정부예산을 편성하자는 것이었다. B/C 비율이 1을 넘지 않는다면 당연히 낭비적이기에 그러한 사업은 시행하지 않고 그 재원을 다른 용도에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예타에서는 서구 선진국들에서 널리 사용되는 비용편익분석 방법을 도입하였다. 비용편익분석은 개인의 후생(효용)에 기초하여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후생경제학(welfare economics)의 평가 방법이다. 개인들의 지불용의(willingness to pay)를 기준으로 편익과 비용을 평가하고, 지불용의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시장가격으로 표현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를 반영하는 잠재가격(shadow price)을 따로 계산하여 사용한다. 예타제도의 도입으로 한국은 비로소 서구 선진국들이 1930년대부터 사용하던 비용편익분석의 방법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1) 

 

그런데 현실적으로 비용편익분석만으로 개별 공공사업의 채택 여부를 판단하기는 곤란하였다. B/C 비율이 지역균형개발 효과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또 사업계획이 구체화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예타가 의뢰되는 경우도 다수 존재하였다. 따라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공공투자관리센터는 개별 공공사업에 대한 예타보고서에서 B/C 비율과 함께 ‘정책성’이라는 항목을 추가하여 지역균형개발 효과와 사업계획 등 준비내용들을 수록하였다. 정책당국자들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정성적 서술도 가능한 많이 포함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1년뒤 2000년 12월 공공투자관리센터는 이러한 정책성을 정성적으로 기술하기보다 경제성(B/C 비율)과 통합하여 단일의 계량적 점수로 제시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즉 “(개별 예타보고서에서) 종합결론을 경제성 분석과 정책적 분석의 결과를 종합하여 ‘주관적’으로 기술하는데 그쳤는데, 주관적으로 종합의견을 기술하면 너무 자의적인 의사결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종합평가를 보다 객관화하기 위하여 ‘단일점수화’ 하는 방안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이다.”2) 이러한 취지에 따라 공공투자관리센터는 다기준분석 방법론의 하나인 ‘분석적 계층화법(AHP, Analytic Hierarchy Process)’을 도입하여 각각의 공공사업에 대해 단일의 종합점수를 산출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예타는 비용편익분석보다 AHP 종합평가를 중심으로 발하기 시작하였다. AHP 종합평가의 영역은 제1계층으로서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으로 삼분되었다. 이들 세 영역의 가중치는 시대별로 변화가 있었는데, 주로 경제성 비중을 축소하는 방향으로(50%→35%) 조정해 왔고 지역균형발 항목은 2019년부터 수도권에는 적용하지 않았다.3) 경제성은 B/C 비율의 수치로 주어지지만,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에서는 제2계층, 제3계층의 항목들이 추가로 존재한다(다음 표 참조). 제2계층과 제3계층의 항목별 가중치와 점수는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의 평가위원들에 대한 설문조사로 결정되는데, 최종 점수는 이들을 가중합산하는 방법으로 계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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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P 중심의 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예타제도 도입 당시의 취지는 다소 퇴색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AHP 종합평가는 정량적 항목과 정성적 항목을 통합하여 단일의 점수를 제시하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상이한 성격과 척도의 항목들을 임의적으로 통합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과학적이고도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확립하자는 원래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경제성이 제1계층 세 영역 중 하나로 간주되면서 B/C 비율이 1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두 영역에서 –주로 정성적으로 구성되는- 높은 점수를 받으면 얼마든지 채택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입증하듯이 2019년 이후에는 B/C 비율이 0.5에 미달하는 사업도 AHP를 통과하는 사례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예타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방향의 개선사항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첫째,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을 계량화할 수 있도록 잠재가격들을 활용해야 한다. 특히 정책성 분석의 정책효과에 포함되는 일자리 효과, 생활여건 영향, 환경성 평가, 안성 평가 등은 서구에서도 다양한 잠재가격들을 -잠재임금율, 환경재 잠재가격, 생명 가치, 문화재 가치 등- 활용하여 계량화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노력 없이 이들의 가치를 AHP 평가위원들의 설문조사에 맡기고 있다. 후생경제학의 비용편익분석은 사적 가치가 아닌 사회적 가치를 과학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노력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둘째, 경제성 분석의 B/C 비율과 정책성 분석의 사업추진 여건에 대해서는 일정 기준의 통과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B/C 비율에 대해서는 그 임계치(예컨대, 1.0)를 제시함으로써 최소한의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업추진 여건에 대해서는 일정한 조건들의 충족 여부만을 –합격 또는 불합격-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업추진 의지가 높다고 하여 그 사업의 타당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조건들을 충족하도록 요구하면 될 일이다. 

 

셋째, 지역균형발 효과에 대해서는 지역낙후도 수준을 감안하여 B/C 비율 임계치를 하향조정하고 하향조정 비율만큼 암묵적인 보조금이 지급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4) 예컨대 B/C 비율의 국적 임계치가 1.0이라고 할 때 지역낙후도의 순위에 따라 그 임계치를 10%~50% 하향조정한다면 0.9~0.5의 사업들도 채택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조정에 따라 B/C 비율 0.6의 사업이 채택된다면 총비용(C)의 40%가 당해 지역에 대한 암묵적 보조금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정부가 개별 사업에서 지역균형발을 위해 얼마만큼의 재정을 암묵적으로 투입했는가를 파악하고, 또 이들 금액의 총합으로써 지역균형발 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지역균형발 효과 대신에 공공사업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공공사업의 편익과 비용이 소득계층별로 귀속되는 형태를 파악하고 이를 이용하여 소득재분배 효과를 제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낙후지역의 고소득 계층보다 도시지역의 저소득 빈곤계층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거주지역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한다면 지역낙후도는 의외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안한 이 세 가지 방향에 따라 예타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진다면 제도 도입 당시의 취지는 상당히 회복될 수 있다. 근래에 들어와 정부정책에 대한 비용편익분석의 적용이 서구 선진국들에서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이 분석이 그만큼 유용한 –그리고 유일한- 평가 수단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개별 공공사업에 대한 예타면제의 입법이 남발하는 등 오히려 그 기능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예타제도에 대한 비판적 의견의 대부분은 지역균형발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앞서 설명한 개편 방향의 세 번째 내용을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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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9년 12월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에서 발간한 「예비타당성조사 수행을 위한 일반지침 연구」는 비용편익분석 방법을 도입하였는데, 이후 한국의 학계에서도 널리 수용되었다. 

2) 김재형, 홍기석, 이승태, 「예비타당성조사 수행을 위한 일반지침 연구(개정판)」, 2000.12,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 p.ii 참조. 

3) 2005년부터 정책성에서 지역균형발이 분리되었으며 2019년 이후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구분하여 영역별 가중치가 적용되고 있다. 가중치의 시기별 변화에 대한 내용은 정동호,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의 효과 분석: 2019년 개편을 중심으로,” 워킹페이퍼 WP 24-01, 국토연구원, p.11 참조. 

4) 지역균형발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지역경제 파급효과도 분석되지만, 이는 산업연관표의 한계 그리고 재원조성에 따른 부(負)의 파급효과를 무시한다는 한계가 있다. 김민호 외, 「예비타당성조사 수행을 위한 세부지침 일반부문 연구」, 2021. 5,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 pp.130~131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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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4년04월14일 14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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